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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장마] bye bye my blue_nanami

 

 

월간은해 7 / 장마

 

bye bye my blue

 

w. nanami.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했다. 짙은 먹구름 때문에 색색의 세상이 회색빛으로 변하는  좋았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우울한 표정을 짓는  좋았다. 나만 빼고 밝아 보이던 세상이 나처럼 어두워지는  좋았다. 비가 오는 날만은 혼자가 아닌 기분이었다. 세상이 나의 우울함을 끌어안아주는  같았다.  혼자만 우울한  아니라고 말해주는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장마가 좋았다. 장마가 시작되면  창문 앞에  붙어서 회색빛 거리를 거니는 우산들을 보았다. 먹구름이 가득 우울함을 뿌려대는 세상 속에서 우산들은 제각기의 색들을 가지고  속을 걸어 다녔다. 아무리 우산이 색을 뿜더라도 세상은 회색일 뿐이야. 그런 생각을 했다. 빨간색 우산 아래의 사람도, 무지개  우산 아래의 사람도 모두 회색빛이었다. 결국은 회색만 가득한 세상.  안의 세상과도 같은 모습이 좋았다.

 

 

 

 

 

 

 

 

 

 

뭐하고 있었어?

 

 

 

 

 

 

 

 

 

 

그런  세상에  번에 색을 채워버린 사람이 너였다. 너는  앞에 앉았다. 한쪽이 전면 창문인 거실에서 우리는 무릎을 세워 마주보고 앉았다.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갑작스레 눈에 들어온 색깔들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뒤쪽이 아려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 너의 발이 내게 닿는  느껴졌다. 자꾸만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에 눈을 뜨자 밝은 웃음으로 나를 마주하는 네가 보였다. 분홍빛 뺨과 귀가  눈앞을 가득 채웠다. 파란색 옷을 입은 얼굴이 웃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많은 색을 가지고 있었던  같은데, 어느 순간 파란색이, 분홍색이 가득해졌더라.

 

 

 

 

 

 

 

 

 

 

그냥.

 

뭐야.  안할거야?

 

아무것도 안했어.

 

너도  좋아해?

 

?

 

나도  좋아해.

 

 

 

 

 

 

 

 

 

 

생긋 웃는 웃음에서 다시 여러 색들이 뿜어져 나왔다. 머리가 아득해지는 기분에 다시 창문으로 눈을 돌렸다. 나를 쳐다보면서 말을 잇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눈은 아직 너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웠다.

 

 

 

 

 

 

 

 

 

 

나는 빗소리가 좋아. 너는?

 

나는.

 

 

 

 

 

 

 

 

 

 

머뭇거리는  모습에 너는 고개를 갸웃하며 쳐다보았다. 있는 그대로 말을 하면, 너도 회색빛의, 아무런 표정이 없는 사람이 될까봐, 파란빛이 뿜어 나오지 않는 사람이 될까봐 입속을 머무는  대신 다른 말을 내뱉었다.

 

 

 

 

 

 

 

 

 

 

나도.

 

대부분  오는   좋아하던데. 우리  맞는다. 그치.

 

그런가.

 

. 그런 거야. 나도  오는  창문보고 있는  좋아해. 빗방울이 창문에 떨어지는 소리가 좋아서, 귀를 대고 있던 적도 있었어.

 

 

 

 

 

 

 

 

 

 

살짝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너에게 눈을 돌리자 조금은 네게 적응했는지 아까보다는 어지럽지 않았다. 그래도  웃음을 그대로 바라보기에는 너무 벅차서 괜히 너의 발만 바라보다 힐끗 쳐다보는 것에 안주해야했다.

 

벅찼다. 너는 내게 벅찬 존재였다. 너는 나를 쳐다봐서도, 내게 말을 걸어서도  되는 존재였다. 무채색의 나에게 유채색의 너는 너무나도 벅찼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네가 창문을 바라보지 않기를 바랐다. 세상의 모습이 나와 같다는  눈치채지 않기를 바랐다. 너의 색들이 내게 벅차다는  눈치채지 않기를 바랐다. 눈을 창문에서 떼지 않은  너의 발가락들을 느꼈다. 작은 발들이 꼼지락. 차가웠다.

 

 

 

 

 

 

 

 

 

 

..

 

혁재야.

 

.

 

  봐봐.  장마 때마다 창문만 쳐다보고 있어.

 

 

 

 

 

 

 

 

 

 

차가운 너의 발에 대해 말하려는데 네가  말을 막았다.

 

너의 말처럼 나는 평소에 비가 올때는 이렇게 창문 앞에 붙어있지 않았다. 비가 그치고 세상이 환해지면, 우산을 접는 사람들의 얼굴이 싫었다. 나만 우중충한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있다는  먹구름 사이에서 고개를 빼꼼 내미는 햇빛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장마가 좋았다. 장마가 시작되면 며칠간은 마음 놓고 창밖을 바라볼  있었으니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너에게 아무 말도  수가 없었다. 너를 쳐다보는 것도 벅찬 나는 너와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다. 눈을 창문에서 떼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의식이 택한  회빛의 세상보다 색색의 빛을 뿜어내는 너의 모습이었다. 눈앞이 아릿했지만 파란 옷을 입고 있는 너를 보자 눈앞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나의 세상에서 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너뿐이었다. 베실 웃는 모습에 눈을 휘어 웃었다. 그러면 너의 색들이 내게  들어올  있었으니까. 좋아서 웃은  아니었는데.  웃음에 너는 눈에 띄게 기뻐했다.

 

 

 

 

 

 

 

 

 

 

 웃는  처음 본다.

 

 

 

 

 

 

 

 

 

 

너의 웃음에 굳어지려는  입가를 억지로 끌어올려야 했다. 네가 곁에 있으면 나는 내가 아닌  같았다.  눈앞을 가득 채우는 색들도 그렇고, 이렇게 크게   없었던  가슴도 그렇고. 기분이 이상했다. 손끝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기분도, 볼수록 눈을 아릿하게 하는 너를 계속 보게 되는 것도 이상했다.  감정을 깨닫고 싶지 않았다. 모른척하고 싶었다. 한번 인정해버린 감정은 눈덩이처럼 커져 버릴 테니까.

 

내가 감히 너를 담는다는  말도 안되는 짓이었다. 무채색의  눈에 너를 담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데,  가슴  깊이 너를 담는다는  있을  없는 일이었다.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모른척했다.  깊이 묻어만 두었다. 나는 그래서는  되는 사람이었다.

 

 

 

 

 

 

 

 

 

 

우리 밖에  맞으러 나갈래?

 

 

 

 

 

 

 

 

 

 

너의 물음에도 나는 멀뚱히 창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비를 좋아하는  아닌데.  때문에 침울해지는 세상이 좋은 건데. 웃으며 묻는 너에게 사실을 고할 수가 없어서 그저 침묵 했다. 침묵은 대답이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흐릿한 빗줄기 속에 들어가도 네가 너의 색들을 보여줄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우울 속에 파묻힌 너를  자신이 없었고, 파묻히지 않을 너를  자신도 없었다.  속에서마저 너의 색을 뿜어내며 나를 바라본다면 지금까지  기복이 없었던 감정이 마구잡이로 솟구칠  같았다.

 

 

 

 

 

 

 

 

 

 

나가자. 우리.

 

 

 

 

 

 

 

 

 

 

너는  침묵을 긍정의 대답으로 이해했는지  손목을 붙잡았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나를 붙잡고 있는 손목의 파란 소매가 서글펐다. 내가 너의 색깔들을 이렇게나 선명하게 봐도 되는 걸까. 머릿속이 파란 소매로 가득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가 없었다. 우물쭈물대고 있는  손목을 이끌어 현관 앞까지 끌고  네가 내게 물었다.

 

 

 

 

 

 

 

 

 

 

우산 없어?

 

.

 

그럼 우산부터 사야겠다.

 

 

 

 

 

 

 

 

 

 

나는 우산이 싫어. 입속에서 머무는 말들을 집어삼키고 신발을 신었다. 검정색의 신발이 장맛비에 흠뻑 젖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손에 이끌려 억지로 집을 나왔다.

 

아파트 아래 상가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얼굴에 닿아 닭살이 우수수 돋았다.

 

 

 

 

 

 

 

 

 

 

어떤  살래?

 

나는.

 

 

 

 

 

 

 

 

 

 

서글픈 소매가  눈앞에 맴돌았다. 나는 파란빛의 우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도 파란색 좋아하는데! 네가 신이  목소리로  것과  것을 동시에 꺼내들었다. 계산대에 올려놓을 때까지 너의 사랑스러운 입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랑스럽다고? 사랑스러웠다. 너는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입가에  걸려 있는 미소와 살짝 올라가있는  꼬리, 사랑이 가득 담긴 .

 

 

 

 

 

 

 

 

 

 

우리 커플 우산이네?

 

 

 

 

 

 

 

 

 

 

우산을 , 하고 펼치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잠식해버리는 푸른빛에 정신을 놓을  같았다. 우산 위로 튕겨 들어오는 빗소리마저 무채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뀌고 있는  같았다.

 

나를 가장 어지럽게 만드는  나와 같은 우산을 들고는 휘적휘적 걸어가는 너의 뒷모습이었다. 내가  따라오고 있는지 가끔씩 뒤돌아보며 사근사근 웃는 너의 모습을 나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파란 우산을 접어 비를 맞았다.

 

회빛의 빗방울들이 나를 끌어안아주었다. 눈앞을 어지럽히는 빛깔들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았다. 차갑지 않은 빗방울들을 맞자 시끄럽던 마음이 안정되었다. 이게 나였다. 너와는 같이 있을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같이해서는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온전히 혼자 회빛에 잠식되어 살아가야하는 사람이었다.

 

찰박찰박 고인 물들을 밟는 소리가 들리고  몸으로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들이 멈추었다. 너겠지. 너일거다. 네가 아니면  누구도 나를 이렇게 망쳐놓을  없었다. 눈을 뜨기를 포기하고 고개를 숙여 발만 살짝 내려다보았다. 역시나.

 

너였다. 너는 파란 우산을 내게 씌워주었다. 나는  파란 우산 아래에서 푸른빛에게, 너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혁재야.

 

 들어갈게. 미안.

 

혁재야 잠깐만.

 

 

 

 

 

 

 

 

 

 

너의 차가운 손이  손목에 닿았다. 순간 온갖 어지러운 색들이  눈앞을 가득 채워 역한 기분이 들었다. 너의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파란색에 먹히고 있을 때가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눈앞이 어지러웠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없이 많은 색들이 눈앞에서 마구잡이로 섞이며 나를 어지럽혔다.  목을 옥죄어왔다. 휘청거리는  손을 붙잡고 걱정스러운 말투로 나를 옥죄는 것도 너였다.

 

손을 뿌리쳤다. 너는 이런 나에게 옮아서는  된다. 뭐가 되었든 너는 내게서 떨어져 너의 색을 지키며 살아가야 했다. 몸을 겨우 추스리고 고개를 들자 파란색이 눈앞에 가득 찼다. 서글픈 파란색, 서러워 보이는 너의 눈이 파란 우산 밑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잡지마.

 

 

 

 

 

 

 

 

 

 

나는    너를 울려야했다.  손길에 공중에 멈춰있는 너의 손이 울어대는  같았다. 눈에 그렁그렁 맺혀있을 방울을 봐야하는  내게 고역이었기에 바닥을 향한 고개를 들지 않았다. 여전히 빗방울은 내게 떨어지지 않았다.

 

 

 

 

 

 

 

 

 

 

들어갈게.

 

혁재야.

 

  안좋아해.  맞는   안좋아하고. 그러니까,

 

 

 

 

 

 

 

 

 

 

우산을 들고 있는 네게서 떨어졌다. 빗방울들이 다시금 몸에 스며들며 나를 안정시켰다. 마음에 가득한 말들을 우수수 쏟아내야 했다.

 

 

 

 

 

 

 

 

 

 

귀찮게  하지마.

 

 

 

 

 

 

 

 

 

 

 

 

 

-

 

 

 

 

 

 

 

 

 

 

 

 

 

네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빗속에 서있는 너와 내버려두고는 집으로 들어왔다. 비에 젖은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방울들에 마음이 놓이는  같았다. 눈앞이 어지럽지 않아 다행이었다. 욕실이 습기로 가득  흐렸다. 거울에도 물기가 가득 묻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다행이지. 이렇게 보이지 않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지금 거울에 파란  얼굴이 비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뻔하니까.

 

거울에 맺힌 물방울들이 이리저리 굴절되어 제대로  상을 비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흐릿해져 보이지 않고 얼굴형만 비치는 모습이 괴물 같았다. 나는 괴물이었다.  세상을 암울함과 우울로만 바라보고  속에서 살아가는 괴물이었다. 그러면 너는 그런 나를 물리치는 히어로일까. 생각하기를 관두었다.

 

 

 

 

네가 나를 우울 속에서 억지로 꺼내려했다면 이미 내치고도 남았을 텐데. 너는 그저  옆에 앉아있거나 가끔 내게 말을  뿐이었다.  말들도 나를 이해하려 하는 조심스러운 말들이었는데. 네가 잘못한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잘못이었고  탓이었고 내가 우울한 탓이었다. 대충 물기를 닦고 욕실을 나섰다.

 

 

 

 

 

 

 

 

 

 

 

 

 

-

 

 

 

 

 

 

 

 

 

 

 

 

 

장마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쉽지 않았다.  깨야하지.  눈을 떠야하지. 어차피  세상은 어두웠다. 아무런 색이 없었다. 그저 명암만 있을 뿐인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날이 아무리 더워도 나는 푹신한 이불을 덮었다. 나를 끌어안아주는 유일한 것이었다.

 

 

 

 

 

 

 

너를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 일과가 되어버렸다. 아침  아니라 하루 종일 너를 생각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이  사람으로만 가득 차버린 적이 없었으니까.

 

너의 색을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회빛 속에서만 살던 내가 찬란한 파란색을 처음 마주하고, 점점 많은 색들을 느끼게 되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생각을 하는 , 너를 사랑하는  아니라 너의 색을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가슴이 당기는 기분이었다. 그런 심장을 붙잡고  자신에게 물었다. 색이 없는 이동해는 사랑하지 않아? 색깔이 보이지 않는 이동해는 사랑하지 않아?

 

나는 여전히  생각으로만 가득이었다. 너를 처음 만났던 그때부터 너를 거부했던 지금까지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동해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내게 웃어 보이는 너를 봐도 인정할  없었는데, 너를 거부한 지금에서야, 나는 인정할  있었다.

 

 

 

 

나는 이동해를 사랑한다. 이동해가 가진 색깔이 아니라, 이동해를 사랑했다. 심장이 부풀어 오르는  같았다. 얼굴이 뜨거웠다. 얼굴이 빨개진다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지금 네가  앞에 있었다면 손목을 잡아채  품으로 끌어안았을 거다. 너를 품속에 가두고 사랑한다 말했을 거다. 입을 맞추었을 거다. 그러나 이미 너를 거부한 내게 다시 네가 찾아올 일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내가 감정을 인정한 지금, 너를 봤다면 눈앞이 황홀해, 말로는 설명할  없는 색들의 향연에 숨이 멎어버릴  같았다. 팔을 얼굴 위에 올려 햇빛을 가렸다. 햇빛 때문에 얼굴이  뜨거워지는  같았다.

 

 

 

 

 

 

 

 

 

 

혁재야!

 

 

 

 

 

 

 

 

 

 

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너를 너무 그리워해서 헛소리가 들리는 건가 싶어 눈을 가리고 있는 팔을 치우지 않았다. 어제 그렇게 너를 버려두고 왔는데, 네가 내게  리가 없었다.

 

 

 

 

 

 

 

 

 

 

아직도  일어났어? 벌써 12시가 넘었어!

 

 

 

 

 

 

 

 

 

 

 이불을 걷어내는 손길에 깜짝 놀라 팔을 들고 눈을 뜨자 네가 보였다.

 

 

 

 

 

 

 

 

 

 

 왔어.

 

. 어제는 미안했어! 내가 억지로 끌고 나가 버린  같아서.

 

?

 

집에서 보는 것만 좋아할 수도 있는데, 내가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너는 정말로 나와 함께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는 너의 손가락 끝이 발갛게 물들어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집에 찾아오면 어떡해.

 

어제부터 종일 걱정했단 말이야. 미안해서.

 

네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야.

 

혁재야. 나는 너랑  지내고 싶어.

 

 

 

 

 

 

 

 

 

 

너의 입에서 믿기지 않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 내가 불쌍해?

 

?

 

너도 혼자있는 내가 불쌍해? 매일 혼자 창밖만 보고있는 내가 불쌍해?

 

그런  아니야.

 

그럼 이유가 뭐야. 자꾸 이렇게 찾아와서 사람 머리를 헤집어놓고 가는 이유가 뭐야.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손이 떨릴 정도였다. 주먹을 세게 쥐고 너를 쏘아붙였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같았다.

 

 

 

 

 

 

 

 

 

 

내가 너랑 닮아서. 그래서 그런 거야.

 

?

 

너를 보면 자꾸  생각이 .

 

 

 

 

 

 

 

 

 

 

너는 내가 알아들을  없는 말들만 내뱉고 있었다. 대체 어디가 닮았다는 건지. 이동해 네가 나를 알기는 하는지. 내가 사실 아무런 색도 없는 인간이라는  너는 알고 있는 건지. 머리가 아파 침대에 앉았다. 너는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대체 원하는  뭐야. 나를 어지럽히고 싶었다면 정말 성공했네. 이동해.

 

 

 

 

 

 

 

 

 

 

혁재야 나는 너랑 같이 있고싶어.

 

 

 

 

 

 

 

 

 

 

너라는 애는.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또렷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너에게서  색들이 뿜어져 나왔다. 분홍빛이 주변을 감싸고 파란 옷을 입은 네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에게 얼굴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터질 것처럼 달아오르는 얼굴에 고개를  숙이고는  말을 찾아야 했다.

 

 

 

 

 

 

 

 

 

 

동해야. 나는.

 

 

 

 

 

 

 

 

 

 

네가 좋아.  의지와는 상관없이  밖으로 튀어나온 말에 놀라 고개를 들고 너를 쳐다봤다. 너의 동그란 눈이 커졌다. 그리고 이내 너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손을 잡았다.

 

 

 

 

 

 

 

 

 

 

나도!

 

 

 

 

 

 

 

 

 

 

황홀한 색들을 보여주는  앞에서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동해야, 사실. 나는 너를 사랑해.

 

 

 

 

 

 

 

 

 

 

 

 

 

-

 

 

 

 

 

 

 

 

 

 

 

 

 

너는 매일같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런 너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밖에 놀러나가지는 않았다. 그냥 같이 있었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내가 아닌 너였지만, 너는 내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웃었다. 나에 대해 억지로 물어보지도 않았다.  눈앞은 예전보다  많은 색들로 채워졌다. 가끔 네게 오늘  색깔 예쁘네. 말하면 너는 눈에 띄게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동해야.

 

?

 

, 그러니까.

 

 말해봐. 뭔데?

 

우리 나갈까?

 

 

 

 

 

 

 

 

 

 

갑작스러운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귀여운 반응. 비를 맞은  이후로  번도 같이 밖에 나간 적이 없었다.

 

밖에 나가 너를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 속에서도  눈앞에서 너만이 색을 뿜어낼지 궁금하기도 했고, 사랑스러운 네가 밖에 나가면  많이 웃을 거라는 생각도 해서 꺼낸 말이었다. 마냥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괜찮아?

 

?

 

밖에 나가도 괜찮아?

 

 

 

 

 

 

 

 

 

 

내게  번이고 괜찮냐고 물어보는 네가 낯설었다. 살짝은 단호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하는 네게 웃어보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나가고 싶어.  말에 너는  눈을 살짝 떨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러자.

 

 

 

 

 

 

 

 

 

 

그저 걷고,  걸었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걷게 되어 주먹을 세게 쥐는 나를 차가운 손이 붙잡았다. 내게 너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손을 붙잡고 걷고  걸었다.

 

 

 

 

 

 

 

 

 

 

 사고 싶은 거라도 있어? 갑자기 나오자고 해서 놀랐어.

 

아니. 그냥 나오고 싶어서.

 

갑자기 ?

 

밖에 나오면, 니가 좋아할  같아서.

 

 

 

 

 

 

 

 

 

 

 말에 네가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손을 놓치기 싫어 얼른 잡아 올려 얼굴을 쳐다보는데  몸에서 분홍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처음 보는 너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댔다. 뜨거웠다.

 

 

 

 

 

 

 

 

 

 

동해야?

 

 

 

 

 

 

 

 

 

 

너는  말에도 붉어진 얼굴을 하고 멍하니 나를 쳐다보다 고개를 숙였다. 살짝 떨리는 어깨에 붙잡고 있던 손을  세게 쥐었다.

 

 

 

 

 

 

 

 

 

 

동해야.

 

 

 

 

 

 

 

 

 

 

 고개 밑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보였다.

 

 

 

 

 

 

 

 

 

 

 울어? 내가  잘못했어?

 

아니.

 

 울어. 고개 들어봐. ?

 

아니야. 혁재야. 그런  아니야.

 

동해야. 얼굴  보여줘.

 

안돼.

 

 그래.

 

부끄러워서 안돼.

 

 

 

 

 

 

 

 

 

 

 붙잡은  손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차가웠던 너의 손과 발을 기억해냈다. 지금 부끄럽구나. ? 궁금했지만 네가 고개를 들어 올릴 때까지 기다렸다. 너도 항상 기다려줬으니까.

 

내게 잡혀있지 않은 손으로 얼굴을 슥슥 닦고 네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붉어져 있었다. 얼굴도 여전히 붉었다.

 

 

 

 

 

 

 

 

 

 

이혁재 .

 

?

 

선수지.

 

 

 

 

 

 

 

 

 

 

너를 쳐다만 보고 있자  네가 손을 놓으려 했다. 손을  세게 쥐어  쪽으로 끌어당겼다. 예상하지 못했던   몸이  쪽으로 끌려왔다. 갑작스럽게  품속에 들어온 너에  얼굴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손에 물들었는지  손도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굳어져있던 네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숨도 쉬기 어려웠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귀에까지 들렸다. 너의 어깨를 붙잡아 밀어내려 했지만 너를 사랑하는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또다시 너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려주는  부끄러웠지만 그렇게 가만히 너를 안고만 있어야했다.

 

 

 

 

 

 

 

 

 

 

혁재야.

 

, 그게.

 

뭐야. 바보같이.

 

?

 

먼저 안아놓고.

 

, 그건 내가 그러려고 했던  아니라..

 

 심장소리 엄청 크다.

 

 

 

 

 

 

 

 

 

 

너의 말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놓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들려주고 싶었다. 가만히 너를 끌어안고 있었다. 네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붉어진 얼굴이 눈에 가득 찼다. 코와 코가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서 네가 나를 보고는  웃었다.

 

너는  손을 들어  목으로 가져갔다. 쿵쿵. 너도 나만큼 크고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싶었다. 너의 붉어진 얼굴과 붉어진 . 너의 . 이렇게나 빨리 뛰는 너의 목이.

 

 

 

 

 

 

 

 

 

 

똑같네 우리.

 

.

 

내가 말했잖아. 우리 잘맞는다고.

 

, .

 

혁재야.

 

?

 

나는 ..

 

잠깐만 동해야.

 

?

 

다음에, 다음에 이야기하자. 미안해.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너의 어깨를 붙잡고 말을 했다. 네가 자연스럽게  품에서 빠져나와 웃으며  얼굴을 만졌다.

 

 

 

 

 

 

 

 

 

 

아니야. 미안하지 않아도 . 너는 매일 뭐가 그렇게 미안해.

 

미안해.

 

 사실 밖으로 나오는  무서웠어.

 

?

 

그때처럼 네가  두고 가버릴까봐.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눈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그래서 괜찮냐고 물어봤던 거구나. 내가 너를 두고 가버릴까봐. 너를 놔버릴까봐. 너는 무서웠구나. 한번더 너를 세게 끌어안았다.

 

 

 

 

 

 

 

 

 

 

이제 안그럴게. 미안해.

 

. 미안하다고  하지마.

 

울지마.

 

안울어.

 

 

 

 

 

 

 

 

 

 

서로의 온기가 느껴질 만큼, 길다면 길었지만 떨어지기엔 아쉬운 포옹을 끝내고 우리는 떨어졌다.  어느 때보다 너와 가까워진 기분에 달아오른 손끝이 쉽게 식지 않았다. 너의 손을 잡았다. 너는 맞잡은 우리의  손을 보다 나를 올려다보고는  웃었다.

 

 

 

 

 

 

 

 

 

 

 사고 싶은  있어?

 

사줄 거야?

 

안울면 사줄게.

 

안운다니까!!

 

 

 

 

 

 

 

 

 

 

발끈하는 너를 보고 웃었다. 언젠가부터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둘다 똑같이 손가락 끝이 붉어진  손을 붙잡고 이리저리 걸었다.

 

 

 

 

 

 

 

 

 

 

  향수 좋아해!

 

이거?

 

. 냄새 좋아. 색도 예쁘기도 하고!

 

향수 고르면서도 색을 ?

 

 파란색 좋아하는  알잖아.

 

 

 

 

 

 

 

 

 

 

네가 뿜어내는 푸른빛과 똑같은 푸른색의 병에 담긴 향수였다.  웃음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너는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너를 만나고 이렇게나 변했는데, 너는 변함없이 내게 같은 색들을 보여주었다.

 

너는 내게 웃어보이고는 다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한 선물을 샀다. 파란 향수를 샀다.

 

 

 

 

 

 

 

 

 

 

포장해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파란 상자가 너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만 같아서, 포장은 하지 않았다. 상자를  주머니에 넣었다.

 

 

 

 

 

 

 

 

 

 

동해야.

 

 

 

 

 

 

 

 

 

 

사라졌다.  눈앞을 환하게 밝히던 너의 빛이 사라져있었다. 동해야. 어디갔어? 가게 안을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뛰쳐나와 달려보았지만 너를 찾을 수가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거리를 뛰어다녔다. 동해야. 동해야. 이제는 네가 없는 나를 상상도   없는데,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들이 얼굴을, 머리칼까지 가득 적시고 있었다.

 

 

 

 

 

 

 

 

 

 

혁재야!

 

 

 

 

 

 

 

 

 

 

 멀리 너의 모습이 보였다. 손을 탈탈 털고나오는 너를 붙잡고 끌어안았다. 촉촉한 손이  얼굴을 감쌌다.

 

 

 

 

 

 

 

 

 

 

 그래. 무슨  있었어?

 

없어진  알았잖아.

 

화장실 다녀왔어. 괜찮아? 얼굴이 빨개.

 

동해야. 가지마.

 

?

 

 옆에 있어. 제발. 사라지지마.

 

혁재야.

 

제발. 동해야.

 

.  옆에 있을게.

 

 

 

 

 

 

 

 

 

 

너의 목소리에 안정을 찾은 나는 그제야 너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나를 올려다보는 너를 한번  끌어안고 싶었지만 너를 보고 웃는 것으로 대신했다.

 

 

 

 

 

 

 

 

 

 

울지마.

 

 

 

 

 

 

 

 

 

 

걱정하는 얼굴의 너를 보자 목구멍이 뜨거웠다. 울음을 쏟아내고 싶었다. 차가운 손으로 나를 어루만지는 네게 안겨 울고싶었다. 겨우겨우 울음을 삼키는  입술에 따뜻한 입술이 닿았다.  앞이 파란색으로 가득 찼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는  달큰했다. 사탕을 먹은  달달한 너의 입술에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분홍색 빛들이 펑펑 터졌다. 동해야. 내가 감히 너를 사랑해. 너는  구원자야. 제발 사라지지말아줘.  옆에서 계속 빛을 보여줘.  많은 세계를 보여줘.

 

 

 

 

 

 

 

 

 

 

 

 

 

-

 

 

 

 

 

 

 

 

 

 

 

 

 

집에 와서 아까의 생각을 하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너와의  입맞춤. 예전의 나였다면 감당하기 힘들어 떨쳐내 버리고 말았을 감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랑스러운 너를 받아들이려면  사랑을 인정해야했다. 쿵쿵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아까 샀던 향수를 꺼냈다. 협탁위에 향수상자를 올려두었다. 무채색이 가득한 집에서 혼자 색을 띄는 데도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나 변했다. 앞으로는  많이 변할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빠르게 뛰어도 이제는 괜찮았다. 너를 사랑하는 나를, 조금은 사랑할  있을  같았다.   번도 사랑하려 하지 않았던  자신을 사랑할  있을  같았다.

 

전화가 울렸다. 휴대폰 액정에 떠있는 이름. 동해.

 

 

 

 

 

 

 

 

 

 

[혁재야. ?]

 

아니. 동해 너는?

 

[자는데 전화를 어떻게 . 바보야.]

 

 그렇지. 뭐하고 있어?

 

[나는  생각.]

 

 

 

 

 

 

 

 

 

 

손끝이 뜨거워졌다. 오늘 네가 하려고 했던 말을 나는 알고 있었다. 심장이 터져버릴  같아서 말을 막았지만 알고 있었다. 너의 말을 듣고도 내가 멀쩡히  얼굴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전하고 싶었다.  마음보다 훨씬 더큰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어려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전하고 싶었다.

 

좋아해. 동해야 내가 너를 좋아해. 좋아한다는 말로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내일은 말해야했다. 우리의 사이에 조금  분홍빛이 돌기를 바랐다.

 

 

 

 

 

 

 

 

 

 

[ 말이 없어. 사람 민망하게]

 

동해야. 내일 만나자.

 

[내일? 어디서?]

 

오늘 갔던 길에서.

 

[그래.  이렇게 진지해. 고백이라도  것처럼]

 

내일 말할게. 예쁘게 하고 나와.

 

[나는 원래 예쁘잖아.]

 

그렇긴 .

 

[그렇게 받아치면 내가 뭐라고 ..]

 

니가 말해놓고 부끄러워 .

 

[내일 그러면 니가 좋아하는 파란색  입고 갈게.]

 

.

 

[ 꿈꾸고. 바람피기만 해봐.]

 

동해야 예쁜  .

 

[혁재야.]

 

.

 

[잘자. .]

 

 

 

 

 

 

 

 

 

 

전화 끝에서 작게 들려오는  하는 소리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부끄러웠는지 전화를 끊어버리는 네가 귀여워서 작게 웃었다.

 

너는 어떻게  앞에 나타나서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드는지. 우울 속에 빠져있는 나를  번에 이렇게 꺼낼 수가 있는지.

 

나도  정도는 행복해도 되지 않을까. 이만큼은 사랑해도 되지않을까. 지금까지 우울했으니까 이제는 조금만 사랑해도 괜찮지 않을까.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잠을 청했다. 너에게 새카매진  밑을 보여주긴 싫었으니까. 잠을 자지 못하면 어떡하지. 너의 얼굴을 생각했다. 너의 파란 옷을 생각했고,  붉어진 얼굴을, 네게서 뿜어져 나오는 색들을 생각했다. 벌써 보고싶어. 동해야.

 

 

 

 

 

 

 

 

 

 

 

 

 

-

 

 

 

 

 

 

 

 

 

 

 

 

 

눈을 뜨니 햇빛이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다 표정을 풀고 기지개를 켰다. 너는 내가 웃는  좋아하니까. 욕실로 들어갔다. 습기가 차지 않은 거울에  얼굴이 들어찼다. 예전보다 밝아진 얼굴에 기분이 좋아졌다.  웃어보였다. 웃는 모습이 어색하긴 했지만 훨씬 보기 좋아졌다. 검정색 바지에 파란색 티셔츠를 입었다. 네가  것과 같은 것이라며 사왔던 파란색 티셔츠였다.

 

 

 

 

향수상자를 챙기기 위해서 협탁 쪽으로 걸어갔다. 파랗게 빛나던 향수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온통 회색뿐이었다. 내가 향수를 여기 올려두지 않았었나?

 

얼굴을 가까이 하고 협탁 위를 둘러보자 어제 샀던 상자가 올려져 있었다. 어제  자리에 그대로였다. 하지만 달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푸르게 빛나던 향수가 회빛으로 변해있었다. 불안했다. 손을 더듬어 향수를 겨우 붙잡았다. 다시 들여다봐도 푸른빛이 아니었다. 박스를 뜯어내고 향수병을 꺼내들었지만 파랗던 향수병도 색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우리 집에 가득 차있는 회빛을 띄고 있었다. 장마  세상을 가득 흐리게 만들었던, 명암만 가득했던 그때와 같이 우리 집에, 내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향수를 가방에 넣고 신발을 신었다. 손이 너무 떨려서 신발 끈이  묶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신발장에 기대어 놓여있던 파란 우산을 보았다. 서럽게 푸르던 빛은 어디가고 우산마저 새카매져 있었다.

 

내가 너를 마음에 담아서 네가 회빛이 되어버린 걸까. 내가 너무 분에 넘치는 행동을 하려해서 하늘이 천벌을 내린 걸까.

 

 

 

 

하늘은 이미 하늘색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회빛에 잠식되어 하늘색을 보지 못하는  아닐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우산을 붙잡고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가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보았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투둑. 얼굴에 물이 떨어졌다. 울고있었나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이 물기로 가득해져있었다. 아무렇게나 눈물을 닦고 네게로 달렸다.

 

 

 

 

제발.

 

사랑하지 말라고 하면 사랑하지 않을게요. 동해 앞에   다시 나타나지 말라고 하면 나타나지도 않을게요. 동해의 파란색을 보지 말라고 하면 눈을 감아서라도 보지 않을게요. 행복하지 말라고 하면 행복하지 않을게요. 예전처럼 회빛 속에서만 살라고 하면 그럴게요. 그러니까 제발.

 

 

 

 

전화가 왔다.

 

 

 

 

 

 

 

 

 

 

 

 

 

[혁재야. 동해가 사고가 났어.  와줘야   같다. 00병원 영안실 104호야.]

 

 

 

 

 

 

 

 

 

 

 

 

 

신은 나를 버렸다.

 

 

 

 

 

 

 

 

 

 

 

 

 

-

 

 

 

 

 

 

 

 

 

 

 

 

 

아침부터  눈에   번도 보이지 않았던, 너를 닮은 서글픈 파란 옷이 보였다. 파란 소매의 옷을 입고 있는, 회빛이 되어버리는 너를 끌어안고 울었다. 평소보다  차가워진 손과 발끝이 나를  춥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네게서 떼어내었다. 저한테 손대지마세요. 동해도  때문에 이렇게  거예요. 제게서 동해를 뺏지 말아주세요. 아니. 애초에 동해를 쳐냈어야 하는 걸까요.  의지가 강하지 못해 동해를 거절하지 못해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요. 제발 알려주세요. 알려주시면 그대로 할게요. 동해를 돌려주세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동해가 없는 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랑한다고 말해야하는데, 좋아한다고, 내가 감히 너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고 말해야하는데 너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어제 너의 말을 막았으면 안되었다. 너를 품에 안았을  말했어야 했다. 아니면 네가 내게 입맞춤을 했을때 말했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어젯밤 통화에서 말했어야 했다. 너의 색을 느꼈던  순간부터 말할 기회가 이렇게 많았는데. 용기 없는 내가 너를 밀어내버렸다.

 

 

 

 

붉어졌던 너의 눈과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있는  같았다. 생각  너의 얼굴에 붉은 빛이 띄지 않았다. 벌써 잊어버렸다. 네가 내게 수없이 보여줬던  색들을 잠시 보지않았다고 잊어버렸다. 회색만 가득한 네가 내게 웃어보였다. 동해는 이렇지 않아요. 동해는 얼마나 많은 색을 보여줬는데, 내가 아는 동해는 색이 가득했어요. 말하면서도 그게 어떤 색이었는지 말할 수가 없었다. 파란색, 분홍색. 그것들이 어땠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동해야. 제발. 내가 잘못했어. 내가 감히  옆에서 행복해지려고 했어.

 

동해야. 나같은게 너를 좋아하면 안되는 거였어.  따위가 너를 사랑하면 안되는 거였어. 이렇게 될까봐 무서웠는데, 너마저 나처럼 회빛이 되어버릴까봐 무서웠는데, 내가  감정을 이겨내지 못해서 미안해.

 

나는 이제 평생 색을  수가 없을 거야. 보고 싶지도 않아. 동해 네가 뿜어내는 색이 아니면 나는 보고 싶지가 않아.

 

동해야. 너는 이렇게 차가워져도 파란색이   어울려. 사람들은 파란색이 차가운 색이라고 하지만 나한테는  어떤 색들보다  따뜻하고 황홀한 색이었어. 내가 보는 마지막 색깔이 너라서 행복해. 내가 봤던  색깔이 너라서 행복했어. 좋아해. 말하고 싶었어. 내가 감히 너를 사랑해서 미안해.

 

동해야. 사랑해. 사랑했어. 파랗던  사랑아. 나의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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