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word: 해바라기
서늘하면서도 기분 좋은 바람이 나와 동해의 몸을 감싸며 우리의 머리칼을 살랑이던 어느 날, 햇빛을 받아 따뜻해진 잔디 위에 앉은 나는 동해에게 말했다.
"동해, 그거 알아? 해바라기는 어디에서나 잘 자란대. 그런데, 그 대신에 해가 있어야 돼. 해바라기는 해 하나만 보고 살거든."
"해 하나만?"
"응, 해 하나만. 그리고 나도 해바라기와 같아."
"왜?"
"나도 아무 데서나, 아무렇게나 지내도 잘 자라. 그런데 해가 있어야 돼. 내가 딱 하나만 바라보는 그런 나만의 해."
"너만의 해는 어디 있는데?"
동해의 물음에 잠시 숨을 들이쉰 내가 순간 우스웠다. 이 한 마디가 뭐라고 이렇게 긴장이 될까.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는 나에게 질문해오던 이동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 귀여웠고, 아름다웠으며,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나의 대답이 이어졌고,
"너야, 동해. 나만의 해는 동해 너야."
나는 동해에게 입을 맞추었다. 동해의 반응을 감히 예상할 수조차 없었던 나는 밀려오는 두려움에 잠시 얼굴을 뒤로 뺐고 그것도 잠시 동해는 나의 어깨를 당겨 제 입을 맞춰왔다. 그런 동해의 반응에 나는 그의 동그란 뒤통수와 가는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이동해는 나의 해가 되었다.
나의 해
내 인생은 이동해로 채워져 있었고 지금도 이동해로 채워져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동해로 채워져 갈 것이다. 나의 기억은 이동해로부터 시작된다.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서 그는 울고 있었는데, 나는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동해에게 다가가 그를 안았다. 타인이 무슨 행동을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동해에게만은 달랐다. 동해는 나에게 특별했다. 그리고는 자그마한 머리통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자 나의 손길에 어느새 울음을 멈추고는 내게 기대어 잠든 그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촉촉하게 젖은 눈가도, 우느라 붉어진 콧방울도, 약간 벌어진 입술도 무엇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동해가 나의 해가 된 건, 내가 이동해의 해바라기가 된 건 언제부터이다, 정확히 말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흘러간 일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처럼 동해를 사랑했고, 그때의 동해는 지금의 동해처럼 사랑스러웠다. 동해만을 향한 나의 시선이, 나의 마음이 그에게 닿았는지 동해 또한 나를 사랑했다. 그렇게 동해는 나만의 해가 되었다. 오로지 나만이 바라볼 수 있고, 나만이 사랑할 그런 나의 해.
나의 머릿속에는 이동해의 모든 것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그와 관련되지 않은 것들은 모조리 삭제되어 오로지 동해만이 남아있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듯한 눈동자와 귀여워서 깨물어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하는 코, 얄찍해서는 꼭 잡아먹어 달라는 듯 오물조물 움직여대는 입술, 부끄럼을 탈 때마다 저러다 터지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달아오르는 귀, 한 손안에 다 들어올 것 같은 조그만 손. 동해의 모든 것이 나의 머릿속에 자리한다.
"혁재야."
동해의 한 마디에 나는 오늘도 그의 모든 것을 담을 준비를 한다. 나의 눈은 오직 그를 보기 위해 존재하고, 나의 코는 오직 그의 향기로운 내음을 맡기 위해 존재하고, 나의 입술은 오직 그에게 사랑을 속삭이기 위해 존재하며, 나의 손은 그를 감싸 안아주기 위해 존재한다. 나는 동해를 위해 존재하며, 동해 또한 나를 위해 존재한다. 나에게 동해는 모든 것이다. 마치 해바라기가 해만 바라보는 것처럼, 나 또한 동해만을 바라본다.
"동해야."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사랑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이로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며, 나의 사랑이 그의 온몸 구석구석에 닿을 때마다 나는 미칠 듯한 쾌감에 휩싸인다. 마치 나의 운명은 처음부터 그만을 바라보도록 정해져 있었다는 양 내가 동해를 바라보는 것은 그 어느 현상보다도 자연스럽다. 심지어 사과가 땅을 향해 떨어지는 것보다도,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자연스럽다.
"혁재 너는 나를 사랑하지?"
"응, 나는 동해 너를 사랑해."
나의 대답에 기쁜 듯이 웃는 동해의 얼굴이 나의 머릿속에 담긴다. 아, 진짜 사랑스럽다. 동해의 작은 손을 내 손으로 덮자 내 손의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그 작은 손에 달린 손가락들이 사랑스럽다. 입술을 내릴 때마다 도장이라도 찍은 듯 붉어지는 새하얀 살이 사랑스럽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처럼 젖은 눈망울이 사랑스럽다.
동해와의 첫 만남 그 이후로부터 나는 습관적으로 동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나의 손이 동해의 결 좋은 머리칼을 쓸면 동해는 안심이 된다는 듯 나른하게 눈을 감았고 어느새 졸린 듯 내 어깨에 기대 잠을 청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마치 내가 동해에게 얼마나 편하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일깨워주는 듯해서 나는 동해의 머리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손가락 사이로 그의 머리칼이 사락 소리를 내며 기분 좋게 지나치면 나는 또다시 몸서리가 쳐지도록 행복을 느낀다.
"혁재야, 나 졸려."
"빨리 자, 동해."
나의 말에 제 두 팔로 내 몸을 감싸와서는 나의 품속에 얼굴을 묻는 동해가 무던히도 아름답다. 동해는 나와 더욱 가까워지고 싶다는 듯 제 몸을 내 쪽으로 당겨온다. 나는 그런 동해를 세게 껴안으며 동해의 귀여운 행동에 반응한다. 나의 품에서 기분 좋은 미소를 띠우고 있는 동해가, 나를 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는 동해가 나만의 해라는 사실이 행복하다. 나는 영원히 동해 너만을 위한 해바라기이고 싶다.
"동해야. 나의 해, 동해야."
동해가 있었기에 빛났고, 동해가 있었기에 자랐으며, 동해가 있었기에 살아왔다. 그는 나의 영원한 해. 내가 유일하게 바라볼, 죽기 전까지 사랑할 동해. 나의 동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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