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tag msg admin

January [친구] 우리 사이_여지

 

 

 

우리 사이

 

w.여지

 

 

 

 

 

 

 

 

 

 

 

1. 엿같은

 

 

 

 이혁재랑 잤다. 사귀냐고? 씨발. 무슨 그런 해괴망측한 소리를 하느냐. 술김에 잤다. 아주 씹 그냥 술에 꼴아 사리분별도 못 하는 애랑 잤다. 내 후장이고 뭐고 자존심이 상해서 뒤져버리겠다. 18년지기 친구놈한테 나이 서른 넘어 아다 떼인 기분은... 이 씨발. 좆같애.

 

 

 

 

 

 

 

 

 

2. 그만 알아보자.

 

 

 

 정말 엿 같은 건, 이 엿 같은 상황을 나만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혁재는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해장을 하러 가는 길에 5분 거리 우리 집으로 찾아와 날 끌고 나왔고,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아침 댓바람부터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얼굴과 집 앞 해장국 집에 가게 되었는데도 어젯밤 정사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당장은 이 새끼의 얼굴을 보면 괜히 홧홧해지고 그날 밤의 살소리와 신음을 뱉던 숨소리가 자꾸만 귓가에서 맴돌아 좆같았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면 이혁재와 섹스하기 전부터의 상황도 이상했다. 이혁재가 술을 거하게 마시고 사리분별도 못 하던 와중에 우리 집에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와 나랑 섹스했다. 좆나게 섹스한 후 잠은 자기 집에 돌아가서 잤다. 다음 날 아침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 집에 와서 날 데리고 해장을 하러 갔다?

 

 

 

 시발, 그만 알아보자.

 

 

 

 

 

 

 

 

 

3.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스케줄 잘만 다녔다. 유닛 활동도 완전체 활동도 그냥 저냥 잘 다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쿨하고 멋진 남자 이동해는 조금 잊기로 했다. 얘도 어지간히 궁했으면 술 처먹고 18년지기 친구 후장을 뚫었을까. 무엇보다 그리 나쁘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렇지. 얼굴 볼 때마다 신경 쓰고 불편해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그 새끼를 용서하겠다는 건 아니다. 평범한 친구에서 섹스를 한 친구. 절친에서 나만 불편해하는 사이. 우리 사이, 대체 무슨 사이일지.

 

 

 

 

 

 

 

4. 데자뷰

 

 

 

 한 가지 이상한 건, 이혁재가 술 약속을 잡지를 않는다. 연말과 연초는 항상 친한 형들에게 불려다니기 바빴는데, 올해 초에는 도통 밖에 나가질 않아 어디냐 물으면 항상 집이라고 답하는 것이 아주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만 별다른 신경은 쓰지 않았다. 딱히 생각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던 중 이혁재가 우리 집에를 놀러 오겠다며 와인을 사들고 왔다.

 

 

 

 

 

 "굳이 우리 집엘 오겠다고?"

 

 ㅡ? 여자라도 있어?

 

 ", 뭔 개소리 해. 닥치고 걍 와."

 

 

 

 

 

 이응 이응. 이혁재가 얄밉게 전화를 끊고는 1분여 뒤 초인종을 눌렀다. 미친 새끼 이거 집 앞에서 전화 했구만. 날도 추운데 여자라도 있었으면 어쩌려고.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섹스 한 번 했다고 별 걱정을 다 하고.

 

 

 

 

 

 "혼자 뭐 해. 문 앞에 있으면서 문도 안 열어주고."

 

 "시발, 비밀번호 알면서 초인종은 왜 처 누르는데."

 

 "넌 또 왜 화났는데. 무슨 일 있었냐?"

 

 

 

 

 

 시발, 있지. 존나 있다. 이 장면 어디서 본 장면이다. 저 놈은 죽어도 기억 못 할, 그 날도 이혁재는 초인종을 누르고는 자기가 우리 집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와 잠결에 비척거리며 현관으로 향하던 내 얼굴을 붙잡고 다짜고짜 입을 맞추었었다. 당황한 나머지 세게 밀쳤는데도 꿈쩍도 않던 이혁재는 고개를 틀고 입을 열어 기어이 혀를 들이밀었다. 이 새끼 키스는 또 얼마나 잘하는지 정신을 쏙 빼놓는 게, 키스 장인이 따로 없었다. 불과 한 달 전의 일을 회상하다 보니 정적이 길어진게 역시 분위기가 좆나 이상했다. 이혁재는 줄곧 내 눈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어색한 몸짓 목소리로 왜 안 앉고 서 있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이혁재는 들은 체도 않았다. , 잠시만. 이거 분위기가, 설마 또...

 

 

 

 

 

 

 

 

5. 맨 정신

 

 

 

 동해, 입술 한 번만 빌리자. 정확히 이 말을 끝으로 이혁재는 내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애들 뽀뽀하는 것 마냥 쪽 쪽 소리를 내며 소중한 걸 다루듯 조심스레 짧은 키스를 하던 이혁재는 내 멱살잡이에 그제야 내 뒤통수를 잡고는 허리를 숙여 깊게 입을 맞춰왔다. 한동안 타액 섞이는 소리와 간간이 숨을 내쉬는 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진짜 미친 새끼네 이거."

 

 "왜 또 욕을 해."

 

 "다물어 나 진짜 너무 억울하니까."

 

 

 

 

 

 그 날은 너무 미안해. 경황도 없었고, 정신 차려보니까 너랑... 그러고 있고. 이혁재는 대뜸 사과를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머리를 쓸어올리고는 이혁재의 머리통을 세게 내리쳤다. 아프다며 울상을 짓는데 또 미안해서 머리칼을 헤집으면 금세 헤헤 웃었다. 개새끼, 웃지마. 정들어.

 

 

 

 

 "와인 한 잔만 해."

 

 "기다려 과일이라도 가져올 테니까."

 

 

 

 

 

 알겠어. 이혁재가 식탁에 앉아 얌전히 나를 눈으로만 좇았다. 시선이 불편해 뭘 보냐며 성질을 부려도 왜, 부끄럽냐? 하며 나를 약올리기만 할 뿐 시선을 거두지는 않았다. 맨 정신에 키스까지 하려니 낯 뜨거워서 원. 과일을 꺼내다 말고 유리잔에 와인을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러면 언제 얼굴이 달아오른 건지 모르니까.

 

 

 

 

 

 

 

 

 

6. 그리고 바로 전사했다.

 

 

 

 술김이었는지, 민망에서 빨리 잠들어 버리고 싶었는지. 얼마 못 가 나는 장렬히 전사했다. 이혁재는 그런 날 안아다가 친히 침대에 뉘이고 이불까지 덮어주는 친절을 발휘했다. 다음 날 아침, 숙취고 뭐고 익숙한 듯 소파에서 잠들어 있는 이혁재에 쪽팔려 죽을 뻔했다. 아이고 골이야... 저 놈 때문에 한 달 째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고백을 하려면 얼른 하던지. 아주 애가 타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일어났네. 와인을 그렇게 물처럼 마시더니."

 

 "목말라서 그랬다, ."

 

 "퍽이나."

 

 

 

 

 

 이혁재는 나를 또 지긋이 바라보았다. , 시발. 진짜 못 견디겠네. 나는 이혁재의 눈을 피해 후다닥 화장실로 달아났다. 세면대 물을 틀고 한참을 세수만 했다. 좁아 터진 마음 속에 갑자기 이혁재가 떡하니 자리잡으니 꽉 막힌 게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우리가 유별난 친구이긴 했다. 연습생으로 만나 숙명처럼 친구가 된 주제에 새해 첫 날 해는 꼭 같이 보러 갔으며,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항상 함께였고, 곤란한 일이 생겨도 서로를 가장 먼저 찾았다. 익숙함이 가장 무섭다고 했던가. 우리는 18년동안이나 익숙함에 서로가 서로에게 당연한 존재라고만 여겼지 딱히 별 다른 생각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몸을 섞었고, 마음도 뒤섞이는 지금 이 시점에.

 

 

 

 대체 나는 어제 왜 전사했는가. 창피해서 그냥 죽고 싶었다.

 

 

 

 

 

 

 

 

7. 그냥 입 맞췄다.

 

 

 

 섹스 후 한 달간의 내 마음 고생은 단 몇 분만에 종료되었고 이혁재와의 관계는 여전히 똑같았다. 술김에 섹스했고, 맨 정신에 키스했다. 이혁재는 자신의 무책임함을 사과했다. 그런데 왜 고백은 하지 않는가. 동해는 정말이지 섹스 후 한 달보다 지금같은 상황이 더 불편했다. 그러다 보니 스케줄은 물론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도통 집중을 못하고 정신을 빼놓고 있으니 당연히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게 뻔했다. 모든 질문은 곧 혁재에게로 돌아갔고 이혁재 그 자식은 모른다며 대답을 피하기에 급급하였다.

 

 

 

 

 

 "이동해."

 

 

 

 

 

 이혁재가 나에게 말을 붙인 것은 키스를 하고 일주일 째 되던 날이었다. 집에서 빈둥거리던 나를 찾아와 다짜고짜 요새 왜 그러냐고 물으니 와 나 진짜 어이가 아리마셍이었다.

 

 

 

 

 

 "아니, . 지금 그걸 말이라고."

 

 "동해야, 나는..."

 

 "시발, 그거! 네 말투가 존나 적응이 안된다고. , 너 나 좋아해? 눈빛이 자꾸 왔다갔다. 말투가 오락가락. 사람 헷갈리게!"

 

 "."

 

 

 

 

 이거 봐! 좋아하네! ... ? 동해가 발끈하여 말을 이으려다 벙 쪄 있었다. 나 좋다고? 어버버 하면서도 정확하게 되묻는 동해에 마른 세수를 하며 횡설수설 말을 이어나가는 혁재였다.

 

 

 

 

 

 "그래서 더 미안했고, 고백도 미룰 수 있을 때 까지 미루려고 했는데..."

 

 

 

 

 

 아무 말도 않고 혁재를 바라보자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영락없이 뭐 마려운 강아지 새끼였다. 동해가 혁재의 머리통을 때리며 이야기했다.

 

 

 

 

 

 "나는 그딴 거 1도 신경 안 쓰니까. 애만 태우지 말고 좀."

 

 "... 동해."

 

 "아 됐어. , 너 나 좋아?"

 

 "좋아."

 

 

 

 

 

 그럼 됐네. 1일이지? 나는 이혁재에게 물었다. 수줍은 얼굴을 하고 응. 하고 대답하는 게 꼴 사나워, 그냥 입 맞췄다.

 

 

 

'Janu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년 1월호 ▲  (0) 2020.01.14
[다이어리] Sweet Dream_밍유  (0) 2019.01.16
[코트] put on_각새  (0) 2019.01.16
[친구] 이유없는 다정함은 죄다._nanami  (0) 2019.01.16
2019년 1월호 ▲  (0) 2019.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