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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하와이] 광란의 조명 아래서_아래

"컷-! 촬영 끝!"


"수고하셨습니다!"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각자 맡은 뒷처리를 시작하는 백여명의 영화 촬영 스탭들. 동해는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써, 하와이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되는 촬영을 위해 영화 관계자들과 함께 하와이로 왔다. 아직 무명인 그는 소속사가 없어서 따라다니는 개인 스탭이나 매니저도 없이 홀로 모든 것을 관리했다. 그나마 이 영화도, 오디션에서 감독의 눈에 들어 주인공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이 영화만 성공하면 동해에게 수많은 엔터테인먼트로부터 러브콜이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무명 생활이 길었던 동해는 촬영 기간 내내 그것만 바라보고 연기했다.


"동해씨, 이제부터 뭐할거야?"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촬영 스탭들의 뒷정리를 돕던 중에, 유독 가깝게 지내던 조명 감독과 이야기가 닿았다. 실은 생각보다 촬영이 빨리 끝나서 스탭과 배우 모두에게 하루의 자유시간이 주어져 있었다. 그 이야기가 떨어지기 무섭게 저마다 친한 사람과 짝을 이루어 어느 곳을 돌아다닐지 계획을 세웠지만, 동해는 촬영만 생각하느라 관광은 안중 밖이었다. 그제서야 관광지를 알아보고 여행을 즐기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영화의 장르가 액션이었던 탓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지친 그는 혼자 느긋하게 쉬고 싶었다.


"그냥 호텔에서 쉬려구요."


"혼자? 그래도 하와이에 온건데, 어디 놀러가지 그래? 언제 여길 또 와보겠어. 이제 영화 대박나면 동해씨도 바빠질텐데, 일 많아지면 놀러다니지도 못해."


"근데 촬영 중에는 뭘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음... 하긴, 동해씨는 액션신도 많았으니까. 그럼 클럽이라도 가봐. 오늘밤은 신나게 놀고 내일은 푹 쉬면 되잖아."


솔직히 동해는 클럽이 싫었다. 술을 잘 마시지 않고, 모르는 사람끼리 살갗을 부벼대며 끈적하게 노는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국에서도 클럽은 잘 가지 않았다. 집돌이 기질이 다분한 그에게는 호텔에서 쉬는 것만큼 좋은 휴가가 없었다.


"어? 동해씨 클럽 가요?"


어느샌가 냄새를 맡고 몰려온 너댓명의 남녀. 이 사람들은 의상팀이다. 의상은 젊은 감각이 필요해서 대체로 연령이 좀 낮은 편인데, 이 젊은 피들은 클럽에 갈 생각인 듯 보였다.


"의상팀도 클럽 가나? 젊은이들은 피가 끓는구만."


"조명 감독님도 같이 가요!"


"됐어! 나같은 아저씨가 클럽에 가면 다 늙어서 궁상 떤다고 욕을 먹는 법이야. 나는 내 동년배 감독들이랑 같이 나이에 맞게 놀려니까 여기 동해씨나 데리고 가."


"아, 아뇨 저는..."


"할 수 없죠, 뭐. 그럼 우리 10시까지 옷 갈아입고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해요."


"동해씨도 늦지말고 와요!"


망했다. 분명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저들 멋대로 약속을 잡아버리는 바람에 동해는 꼼짝 없이 클럽에 끌려갈 신세가 되어버렸다. 동해가 가겠다고 한 건 아니지만 저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알고있고, 거기다 대고 안 가겠다 통보하면 평판도 있으니 별 수 없었다. 가서 적당히 장단 맞춰주다가 중간에 틈을 봐서 빠져나와야겠다고- 동해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 건배!"


어쩌다보니 회식 분위기처럼 되어버린 그들의 테이블에는 처음 보는 외국 술이 즐비해있었다. 동해는 첫 잔을 받아서 마시는 시늉만 하고 계속 그 잔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들은 제 페이스에 못 이겨 초장부터 술을 들이붓고 춤을 춘다고 스테이지로 튀어나가버렸다. 도망치려거든 지금인가. 동해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근처에도 사람이 꽤나 많았다.


사람이 좀 빠질 때까지 기다릴까.


동해는 최대한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들어가 벽에 몸을 기댔다. 정말이지, 적응도 안되고 더 머물기도 벅찬 곳이었다. 그의 옆에는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남자가 한 명 더 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얼굴은 동양인 같은데... 하와이에 일본 사람이 많이 산다고 했었지? 일본인인가? 아니야, 한국 사람처럼 생겼는데.


"Are you interested in me?"

(나한테 관심있어요?)


저도 모르게 그 남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웬 낯선 남자의 열렬한 시선을 느낀 그 남자가 동해에게 물었다. 동해는 당황한 나머지 얼굴이 빨개져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남자는 괜찮다고 웃었다. 어느새 두 사람은 편하게 얘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Why are you standing here alone?"

(당신은 왜 여기 혼자 서있어요?)


"I've been dragged into the party, but I don't like this atmosphere like this."

(일행에게 끌려왔는데, 난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거든요.)


동해는 그 남자를 재미교포 정도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그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And you?"

(그러는 당신은요?)


"I hid from the passionate courtship of a woman."

(어떤 여자의 열렬한 구애를 피해 숨었죠.)


그의 말에 동해는 웃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몰라도 '열렬한 구애'라는 표현이 제법 우스웠기 때문에.


"What's your name?"

(당신 이름이 뭐에요?)


"My name is Donghae."

(내 이름은 동해에요.)


"...혹시 한국 사람이에요?"


그는 대뜸 한국어로 물었다. 배웠다고 하기엔 발음과 억양이 너무 정확했다. 일본인은 아니다 싶었더니만 혹시...


"그쪽도?"


"나도 한국인이에요."


두 사람은 서로의 국적을 확인한 후에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같은 한국인끼리 서로 국적을 몰라 이때까지 영어로 대화한 셈이었다.


"그나저나 반갑네요. 여기서 한국인을 만날 줄이야."


"여긴 어떻게 왔어요?"


"나는 배우인데, 영화 촬영을 하려고 하와이에 왔다가 촬영이 끝나고 스탭들이랑 왔어요. 그쪽은요?"


"나는 여행왔어요. 혼자 호텔방에 누워있자니 심심해서 뭐라도 해보자는 식으로 나왔다가..."


그는 어딘가로 눈을 돌리다가 순간적으로 표정이 사악 굳더니, 잽싸게 동해에 달려들어 다짜고짜 입을 맞추었다. 자신보다 키가 조금 더 큰 그에게 입술이 먹힌 동해는 순간 당황해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의 입술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슬슬 제정신이 돌아와 황급히 그를 떼어내려 한 순간, 그가 먼저 입술을 떼고 한 발짝 떨어졌다.


"무, 무슨 짓이에요?"


"아, 미안해요. 아까 내가 말했던 그 여자가 이쪽으로 오길래 나도 모르게 그만...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요."


동해는 얼굴이 빨개지고 열이 올라서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있었다. 특히나 맞닿았던 입술이 뜨겁고,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었다. 제 발끝으로 꽂았던 시선을 서서히 들어올리자, 딱 정면 시선에 그의 붉은 입술이 들어왔다. 많이 놀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남자가 한 번 더 사과하려 가까이 다가간 순간...


"저기, 미안..."


이번에는 동해가 먼저 입을 맞추었다. 그가 했던 것만큼 갑작스럽고 거칠게. 양손으로 그의 셔츠 깃을 움켜쥐고 제 쪽으로 당겨 키스했다. 남자는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재밌다는 듯 웃으며 한 팔로 동해의 허리를 감고, 나머지 한 손은 그의 뒷통수를 부드럽게 감싸 벽으로 밀었다.


맞닿아만 있던 입술은 어느새 서로의 것을 깊게 빨아들였다. 남자는 살짝 벌어진 입술 틈새로 붉은 살덩이를 밀어넣고 혀끝으로 고른 치아를 훑었다. 키스에 서툰 동해가 무작정 그의 입 안으로 혀를 밀어넣으니, 남자는 동해의 것에 제 것을 감아 당기며 부드럽게 리드했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서로에게 스며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낯선 타국에서 사람이 바글거리는 클럽 구석에 숨어 남자 둘이 몰래 나누는 키스. 그저 그 사실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조마조마했고, 그것은 오히려 두 사람을 대담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깊은 사랑으로 발전할 줄은 모르겠다만, 어쨌든 동해는 클럽을 추천해준 조명 감독과 억지로 끌고와준 의상팀 스탭들에게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해에게는, 끝내주는 첫키스였다.

 

 

*

근데 말이지.


응?


당신 이름이 뭐야?


...그걸 키스하고나서 물어보냐?


빨리 알려줘


이혁재. 내 이름은 이혁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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