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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크리스마스] Why I like X-mas_여지

Why I like X-mas

w r i t t e n b y 여지







  "이혁재!"



  동해가 헤헤 웃으며 혁재를 불렀다. 왠일인지 한껏 차려입은 혁재가 동해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와 동해의 머리 위에 꿀밤을 먹였다. 이게 자꾸 반말 하지? 동해가 방금 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빽 소리를 쳤다. 아 왜 때려!



  "요새 자꾸 이혁재거려, 응?"

  "형이 형 같지 않으니까 그렇지."

  "어어? 자꾸 그럴래? 크리스마스 선물 주지 마?"



  에이, 형. 내 나이가 몇인데 크리스마스 선물은 완전 땡큐지! 신이 나 방방 뛰는 동해를 진정시킨 혁재가 그럼 크리스마스 날 오전에 만나자. 하고 이야기했다. 아침? 의아하게 묻는 동해에 약속이 있다며, 애들은 몰라도 된다는 혁재였다.



  "그놈의 애들 소리 좀 그만 하면 안돼?"

  "이혁재라고 안 하면 동해야, 해줄게."



  잊고 있었는데, 이혁재는 밀당의 귀재였다. 이번에도 소위 심쿵이라 이르는 것을 느낀 동해는 혁재를 원망스레 노려보았다. 왜 이렇게 잘생겨서 사람 불안하게. 혹시 여자친구 생긴 건 아니겠지. 아니지, 생겼나? 크리스마스에 할 게 뭐가 있겠어... 연이어 이어지는 생각들에 전부 낙담한 동해였다.



  "...해, 이동해!"

  "응? 아, 못 들었어. 뭐라고?"

  "나랑 있는데 딴 생각 하지, 서운하게.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오겠다고."

  "알겠네요. 근데 어디 가? 머리 잘랐네."



  동해가 드디어 대답을 바라던 질문을 내어놓았다. 혁재가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이다 대답하였다. 소개팅 가. 이상해? 동해가 혁재의 대답에 답하지 못하고 버퍼링이 걸린 기계마냥 삐걱였다. 이게 뭔... 어디를 간다고?



  "아, 소개팅 간다고! 나도 진짜 가기 싫은데, 엄마 때문에 억지로 가는 거야."

  "형이 애도 아니고, 왜 이모 탓이야. 그러게 애인 좀 알아서 사귀면 어디가 덧나?"

  "아오, 꼬맹 입만 살아가지고. 이래서 너한테 말 안하려고 했는데, 또 당했어. 또."



  혁재가 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으휴, 이동해 이 꼬맹. 혁재와 동해가 투닥거리던 중 울리는 진동 소리에 혁재가 황급히 전화를 받자 휴대폰 너머 혁재의 어머니가 소리를 내질렀다. 이혁재 너 빨리 안 가? 올해만 해도 소개팅 깬 게 여섯 번이야! 이번에도 소개팅 장소 안 나갔다고 연락 오면 뒤질 줄 알아!



  "아, 지금 가고 있어! 이동해 만나서 잠깐 얘기한건데, 그걸 또 고새 보셨네, 김여사님!"

  -김여사고 나발이고 내년 초 까지 애인 만들어와. 넌 스물 일곱 먹도록 애인 하나 안 사귀고 뭐 했니?

  "김여사, 나 좋아하는 사람 있다니까? 다만 아직은 좀 일러서,"

  -난 내년 초라고 했다! 끊어!



  하여튼 둘 다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혁재가 고개를 내저었다. 동해는 얼른 가라며 가기 싫다는 혁재의 등을 억지로 떠밀었다. 나도 사실은 보내기 싫다고, 이혁재.



  혁재와 동해는 바로 옆 집에 산 지 꽤 오래 되어 부모님끼리도 친해지고, 둘도 친해졌다. 그렇게 알고 지낸 지 5년, 동해가 혁재를 좋아하게 된 지도 5년이다. 함께 네 번의 새해를 맞았으며 네 번의 연말을 함께했다. 올해로 다섯 번째 맞는 연말이지만, 이번은 뭔가 달랐다. 함께가 아닌 크리스마스는 처음이었다. 당연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마음이 허한게, 서운했다. 더군다나 소개팅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니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그래, 이혁재는 여자 좋아하겠지. 잘생겼어, 다정해. 자기 사람한테 온갖 거 다 쏟아부어.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동해가 길가에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뭐 해."

  "...왜 아직 안 갔냐."

  "네가 나라 잃은 것처럼 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가."



  이혁재였다. 쪼그려 앉아있는 동해의 머리통에 손을 얹은 혁재가 어떻게 가냐며 말도 안되는 투정을 부렸다. 이게 소개팅 가기 싫어서 뻐기지. 동해가 고개를 다시 무릎에 묻으며 이야기하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며 동해의 머리칼을 헤집는 손길이 거칠다. 동해는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 집으로 향했다.



  "빨리 갖다 와!"



/



  "꼬맹이, 형아 춥다!"



  혁재가 동해네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방 안에서 눈도 뜨지 않고 뒹굴거리던 동해가 들려오는 혁재의 음성에 놀라 벌떡 일어나다 책상에 발을 찧어 한 발로 콩콩 뛰며 현관으로 향했다. 아오, 깜짝이야. 왜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



  "뭐야, 다쳤어? 왜 울어?"

  "우는 거 아니거든!"

  "귀 아파. 소리 지르지 말고 얘기해, 꼬맹."

  "하여간 옆 집 형이라는 사람이 도움이 안 돼. 오늘은 왜 왔는데?"

  "엄마한테 혼났어."



  혁재가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동해가 이해 간다는 듯 한 얼굴로 혁재를 집 안으로 이끌었다. 또 소개팅 가기 싫다고 했구나?



  "진짜 나 그런 거 너무 불편하단 말이야."

  "어련하시겠어요, 이혁재씨."

  "나 진짜 소개팅 갈까? 크리스마스 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한동안 대답이 없던 동해가 뾰루퉁하게 이야기했다. 동해의 무릎을 베고 누우며 네가 싫으면 안 가고 꼬맹이랑 놀아주려고 했지, 대답하는 혁재였다.



  "웃기지말고 다녀와."

  "치사해."



  비켜, 무거워. 동해가 작게 손부채질을 하며 혁재를 밀어냈다. 혁재가 익숙하게 티비를 틀며 입을 열었다. 울 꼬맹은, 형이 귀찮구나?



  "티비 틀면서 불쌍한 척 하지 마."

  "...들켰네?"

  "어우, 이 초딩아."

  "어허. 형님한테!"

  "형님은 얼어죽을."

  "요새 많이 춥긴 하지. 그래도 얼어 죽을 정도는 아니던데. 따뜻하게 입고 다녀."



  아, 짜증... 동해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어디 가냐는 혁재에 물음에 양치하러! 소리친 동해였다. 혁재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장난스러움에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만 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자꾸만 저를 끌어당기는 혁재를 밀어내려면 더더욱 쌀쌀맞게 구는 수밖에 없었다.



  "꼬맹, 형 가볼게. 잠깐 들른 거였거든."

  "뭐야, 지금 간다고?"

  "자식, 너도 속으로는 형 좋아하는구나?"

  "...가, 당장 나가."



  큭큭 웃으며 알겠다는 혁재가 매몰차게 닫힌 현관문에 대고 외쳤다. 내일, 잊지마! 어찌나 크게 이야기 하는지, 바로 앞에서 한 말도 아닌데 귀가 얼얼했다. 내일은,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



  "아, 뭔데..."



  나 왜 벌써 일어났니... 동해가 비몽사몽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이혁재 하나 때문에 나만 고생이지, 응. 동해가 수도꼭지를 열자 나오는 차가운 물을 그대로 맞았다. 혁재 생각에 온 몸이 후끈거렸다. 올해는 동해 저가 성인이 되고 맞는 첫 크리스마스였다. 혁재에게 매년 받기만 하던 선물을 저도 줄 생각이었다. 그 놈의 소개팅만 아니면 딱 좋겠다만. 동해가 입술을 깨물었다. 혁재와 저는 애초에 이어질 수 없다고 단정 지었던 동해라 지금껏 아무렇지 않았는데. 유독 올해는 그게 잘 안 되었다. 동해는 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여간 난 취향 진짜 이상해. 왜 하필 이혁재를.



  띠리링. 이미 진작에 나갈 준비를 마쳐 무료하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던 동해의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리고 혁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꼬맹, 얼른 나와.



  "어딘데?"

  -집 앞. 오 분 내로 나올 것!

  "응."



/



  "뭐야, 바로 나왔네."

  "일찍 일어났어. 자, 이거."

  "뭐야? 꼬맹이 내 선물 준비한거야? 우리 꼬맹이가? 내 선물?"

  "아, 진짜. 그 놈의 꼬맹이 소리."

  "동해야, 나 진짜 울 것 같아."

  "오버한다 또."



  아, 오늘은 내가 더 멋져 보여야 하는데. 혁재가 멋쩍은 듯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동해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눈치는 더럽게 없지, 이동해."

  "뭐가."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몰랐지."

  "모르지."



  ...뭐?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동해가 떨리는 눈동자를 주체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물었다. 혁재가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크게 소리내어 웃더니 어느새 눈물이 그렁한 동해의 얼굴을 찬 손으로 감쌌다. 동해야, 형은. 네가 좋아.



  "아니, 그게. 내가? 나를 왜?"

  "너는 나 왜 좋아하는데."

  "그걸 어떻게, 아니 그게 무슨, 아니... 아!"



  짜증나! 동해가 주먹을 쥐어 혁재의 팔뚝을 때렸다. 아, 아픈데. 나 아파, 동해야. 혁재가 울상을 지어보였다. 그에 멈칫한 동해가 집으로 들어가려 돌아서자 뒤에서 안아오는 혁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동해야, 형 장난 아니고 진짜거든.



  "알아. 그래서 더 짜증나."

  "왜. 짜증내지 마."

  "어떻게 알았어? 내가 형 좋아하는거."

  "엄마들끼리 하는 얘기 주워들었지."



 하여간 남의 말 엿듣기나 하고. 재수없어. 동해가 고개를 푹 숙이며 웅얼거렸다. 혁재는 동해의 앞으로 가 동해의 고개를 손으로 들었다. 동해가 평소에 투닥일 때는 잘만 맞춰오던 눈을 이리저리 피하자 귀여워 어쩔 줄을 몰라 하던 혁재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형은, 고민이 많았거든.



  "우리 일곱 살 차이고, 너는 이제 스물이고. 그리고 우리가 막 그렇게 자유롭게 사랑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부모님들은 좋아하시니까 상관 없지만."

  "응."

  "혹시 아직 앞 날이 밝은 너한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네가 다치지는 않을까, 혹시 내가 싫어지지는 않을까. 이래저래 걱정만 하다 보니까 십 이월인거야. 그러다 오늘이 됐고."

  "응."

  "난 사실 오늘, 아니 방금까지도 고민하고 고심했거든. 혹여나 네가 피할까봐."

  "...안 피해."

  "그러니까. 고맙고, 미안하고."



  좋아하고. 답지 않게 우물쭈물 하다가 뱉어버린 말에 놀란 기색이 역력한 동해에 옅은 한숨을 내쉰 혁재가 동해를 당겨 품에 끌어안았다. 형이랑 당장은 달달하고 알콩달콩 한 게 어색할텐데, 그래도 괜찮으면, 그러니까. 음...



  "사귀자고?"

  "야,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방금 전까지 이혁재님이 장황하게 말씀하신 거 한 마디로 함축해줬구만, 뭘."

  "그래, 그래. 사귀자, 형이랑. 동해야."



  동해가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혁재는 행복한 듯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연신 고맙다며 동해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이내 동해의 째림에 제지당했지만 말이다. 아니, 사귄지 일 분만에 엉덩이 만지는 건 좀 오바 아닌가? 야, 이게 만진거야? 토닥토닥이지! 토닥이나 만진거나! 손 닿는 건 똑같잖아!



  "치,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보수적이네."

  "그래서 싫어?"

  "아니? 누가 싫대? 보수적인 이동해가 원래 내 취향인데?"

  "웃기지 마."



  동해가 큭큭 웃으며 혁재를 밀어 저만치 떨어트려 놓았다. 혁재가 눈썹을 잔뜩 늘어트리고는 동해에게로 슬금슬금 다가가 엄설을 피웠다. 동해야, 형 엄마한테 등짝도 맞고, 동해도 막 형 때리고...



  "맞다. 그래서 소개팅은 뭔데. 나 꼴받으라고?"

  "응... 그건 엄마 작전..."

  "...하여간 이모도 참..."

  "그치, 심했지."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아오, 이동해! 혁재가 장난스레 빽 소리를 지르고는 동해의 머리칼을 헤집었다. 귀여운 놈. 형이랑 영화 보러 가자. 우리 첫 데이트야. 누구 맘대로? 나 아직 선물 못 받았는데? 내 선물은 고백이었는데.



  "진심이야?"

  "응. 진짠데."

  "...뭐, 그래. 난 그게 더 좋아."



  혁재가 별안간 배를 부여잡고 웃기 시작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동해는 혁재를 벌레 보듯 쳐다보았다. 진짜 왜 저래...? 어디 아픈가? 열이 있나 보려고 혁재의 이마 쪽으로 뻗어진 손을 낚아챈 혁재가 동해를 제 쪽으로 끌어당겨 목 뒤로 꼼지락거렸다. 뭐 하냐. 동해의 물음에도 잠시만,을 연발하던 혁재가 이내 짠! 하며 자랑스레 동해의 목을 가리켰다. 예쁘지!



  "응. 근데 너무 올드한 거 아냐? 목걸이 줄에 반지."

  "손에 끼워주고 싶었는데, 부담스러울까봐. 그건 내년 크리스마스 날, 더 예쁜 걸로 해줄게."

  "응, 그게 좋겠다. 고마워."

  "어리게 보는거, 너무 서운해하지 마. 나한테 꼬맹이는 너 뿐이니깐."

  "웩. 오글거려. 평소처럼 해."

  "그렇다고 싸울 수는 없잖아..."



  형. 동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혁재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나 이제 열 다섯 아니고 스물. 쪽, 두 입술이 맞붙었다 떨어지고, 혁재가 동해의 얼굴을 감싸올려 다시 한 번 입술이 맞물렸다. 동해야, 형은 이번 크리스마스가 제일 행복해. 나도.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