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이나 거울을 확인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제 머리칼을 어루만지는 자신의 손길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하루아침에 바뀐 머리색이 저 또한 어색한데 남들 눈엔 얼마나 이상할지. 동해는 윤기 하나 없이 푸석해진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툭 하고 끊어질 것만 같은 얇아진 머리칼들이 동해의 손가락 사이로 가닥가닥 걸려들었다. 큼큼,
어색함에 헛기침을 몇 번 한 동해가 교문 앞으로 발걸음을 씩씩하게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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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 앞은 지정으로 정해진 자리 마냥. 복장이 불량해서 든지, 담배 쩌는 냄새가 난다 든지, 하는 날티 나는 학생 여럿이 무릎을 꿇고 쭈그려 앉아있었고. 그중엔 물론 혁재도 포함 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익숙한 얼굴들을 지나쳐 맨 끝 자리에 고개를 수그리고 앉아있는 혁재가 시야에 걸렸다. 괜스레 두근거리는 심장 부근을 애써 모른 척 하고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인영에 힘차게 인사를 했다. 어, 그래 동해! 착실한 모범생으로 선생님들께 꽤나 사랑을 받던 동해 인지라, 나이가 어느 정도 유추 되는 선생이 주름이 자글한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끼얹고 동해를 향해 돌아봤다. 우리 동해 지금 등교 하....
“선생님?”
오늘도 단정한 옷차림. 맑고 깨끗한 그 나이대의 순수한 얼굴. 선생들이 원하는 학생의 자질을 모두 갖춘, 모범적인 면의 극치를 자랑 하는 우리의 이동해...! 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 못해 빛이 날 정도 였지만. 과연 그 빛이 나는 폼세는 바람결에 살랑이는 머리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지. 도, 동해야, 너 이게, 대체, 무슨,
그는 동해를 보자 경악을 금치 못하고 말의 끝머리를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부들 거리는 손가락으로 동해의 노란 염색 머리를 가리키자, 동해는 그럴 줄 알았다며 눈치를 살살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어서요. 검은색은 답답하잖아요.”
당당하다면 당당하고. 뻔뻔하다면 뻔뻔스럽게 말을 답한 동해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선생과 그 뒤에서 교문을 지나가던 학생들 전부 였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고개를 까딱이자, 복장이 그게 뭐냐. 라며 꾸짖을 타이밍을 놓친 선생은 아... 그... 그게... 제 할 말을 잃고 어버버 거렸다.
“죄송한데. 그만 가봐도 될까요? 아침까지 수학 숙제를 걷어야 해서...”
눈이 휘둥그레진 그에게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어, 어 그래야지... 어서 가봐...! 동해의 물음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선생은 손을 앞으로 내젓는 제스처를 취하며 동해에게 어서 들어가라 일렀다. 감사합니다. 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한 톨의 미련 없이 등을 돌린 동해는 발걸음을 바삐 움직여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갔다.
허, 참나. 이게 특혜지 뭐야. 대놓고 차별하네. 동해를 향한 선생의 태도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무리에서 저마다 한 움큼씩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이 녀석들이... 조용히 안 해?! 니들이 동해랑 같냐?!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가만히 앉아있던 혁재는 동해가 들어 간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들이... 야! 너, 왜 일어났어!!
뜬금없는 혁재의 태도에 어이가 없는 선생은 학교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혁재를 불러 세웠다. 혁재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무심히 말을 이어갔다.
“50분 지났어요. 수업 들어야죠. 저도.”
벌써 시간이 그렇게... 이놈 자식들 이거, 어서 들어가! 급하게 꾸지람을 외치며 사태를 정리하려는 선생의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혁재는 하품을 가리지 않고 쩌억 하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아무렇게나 찔러 넣은 뒤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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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반장 인사하...”
반장....? 수업을 하러 들어오는 선생들은 밝은 색으로 염색 돼 있는 동해의 머리를 목격하곤 저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는데, 과반수가 입이 떡 벌어져 멍하니 동해를 바라봤고. 나머지 소수의 몇 명은 교실 문턱을 넘어가는 허공의 발 그대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세요-
물론 선생들이 당황으로 굳어버린 만큼, 동해네 반 학생들도 동해의 염색 머리를 보고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그에 조금 더 말을 보태보자면,
당황 보단 황당에 더 가까웠을지도.
9월 월간 | 단순한 일탈 | 염색
E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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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삼 막바지에 갑자기 늦바람이 난 원인이 대체 뭡니까? 이동해씨.”
“늦바람은 아니고... 그냥 답답하달까? 아 저리가, 숙제 걷어야 해.”
답답은 지랄. 1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소문을 듣고 찾아온 규현이 동해의 옆자리를 꿰차고 앉아 이것, 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하긴... 3년 연속 반장에 모범생 타이틀 달고 있는 게 답답 할 수 있지, 암요. 잘 알죠. 규현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자신의 뜻을 제대로 규현이 알아들은 것 같진 않지만, 조용해진 부분을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모아 둔 숙제들로 동해는 시선을 돌렸다. 아. 숙제는 여기다 주면 돼. 반 아이들의 숙제 공책을 차곡히 쌓아 놓고 있는데,
“근데 그거 교칙에 위반하는 거 아니야? 학주가 이걸 보고도 가만히 있진 않았을 테고. 분명 이 머리로 교문 통과 했을 텐데 선도도 안 잡히는 거면...? 차별 수준이 아니라 특혜네, 특혜.”
무엇에 흥분을 한 건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규현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규현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동해를 위부터 아래까지 쭉 훑어봤다.
단정하단 말은 이동해를 지칭하는 표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동해의 단추는 윗 단추 까지 빼먹지 않고 꼭꼭 채워져 있었고.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게 매여진 넥타이나, 풀 세트로 교복을 갖춰 입은 모습. 이렇게만 말하면 어디 하나 틈을 잡을 곳이 없었지만, 딱 하나.
태양 빛의 찬란하게 빛나는 노란 빛깔의 염색머리.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하던가. 선생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대표적인 모범 학생 동해가 하루아침에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왔을 때에 반응이 어땠을지. 눈 앞에 펼쳐지는 안 봐도 비디오일 상황에 키들거리는 웃음기를 참을 수 없는 규현이었다.
단정하게 교복을 갖춰 입은 목 아래. 하지만 그 위로 노랗게 물들여 논 머리색이 어딘가 괴리감이 들게 만들었다.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어울리지 않은, 모순덩어리로 똘똘 뭉쳐있는 동해의 현 상태를 동해 자신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혹은 알고 있음에도 제 위치를 이용해 모른 척을 하는 것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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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왜그래? 순진무구 한 얼굴로 되묻는 것 또한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그냥... 잘 어울린다고, 머리.”
이동해는 예외라 이거지, 수업 종이 울리자 의자를 정리하고 동해의 어깨의 손을 얹었다. 간다. 점심때 보자. 아직 얼빵한 얼굴을 하고 있는 동해의 푸석한 머리털까지 무자비하게 쓰다듬곤 규현은 교실을 빠져나왔다.
아... 아! 그만해! 규현에게 헤집음 당한 머리를 손으로 빗어 정리한 동해가 규현이 나간 앞문을 째려봤다. 그러곤 수업을 들어오는 선생의 모습에 비어 있는 옆자리로 공책들을 살짝 밀어 놓고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내 올려놨다.
선생은 교실은 들어서자 바로 보이는 동해의 밝은 머리에 잠시 멈칫했다. 허나 해코지를 하거나 혼을 내지 않고 묵묵히 교탁 위로 교과서를 폈다.
“오늘은 41페이지 부터...”
사각사각. 필기를 하는 소리만이 조용한 교실에서 맴돌았고, 동해 역시 안경을 끼고 수업에 몰두했다. 동해가 걷은 숙제들은 비어 있는 옆자리로 슬쩍 밀어놨는데, 필기를 하다 팔꿈치로 그것을 실수로 건드린 탓에 높이 쌓아 둔 공책들이 바닥으로 몇 권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죄송합니다. 동해는 고개를 숙여 급하게 떨어진 책들을 주웠다. 공책들을 주워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반듯하게 정리 하자 책 밑으로 숨겨있던 이름표가 힐끗 보였다.
이 혁 재. 이름 석 자가 반듯하게 쓰여 있는 이름표를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던 동해는, 금방 시선을 돌려 칠판에 집중했다. 오늘 아침. 교문에서의 벌을 서고 있던 혁재의 노란 탈색 머리와 자신의 머리색을 떠올리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걸쳤다.
“여기 페이지 읽어 볼 사... 동해?”
“네.”
“그... 그래, 네가 한번 읽어 봐라.”
“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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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체육복 한 번만 빌려주라! 금방 돌려줄게! 뒤늦게 바뀐 시간표로 인해 체육복이 없는 반 아이들이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 그 소식을 접한 동해가 제일 처음으로 했던 행동은 바로 옆 반인 규현에게 찾아가 일명 체육복 구걸쇼를 한 것.
“규현아... 제발, 응? 시간표가 갑자기 바뀌어서 그래.”
그러나 보기 드문 동해의 애교 삼종 퍼레이드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규현은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다 끝내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나 체육복 없어.”
“거짓말, 그냥 빌려주기 싫었다고 사실대로 말해!”
“구라가 아니라 진짜라니까? 이것 봐-”
흥, 하고 토라진 동해를 보며 제 머리를 긁적이던 규현은 자신의 자리로 동해를 데리고 와 교과서 하나 없이 텅 빈 사물함을 보여주었다. 진짜 없네...?
“근데 교과서까지 없네. 공부 안 해?”
“가방으로 매주 들고 다녀.”
가방 또한 지퍼를 활짝 열어 체육복 없이 교과서들로만 가득 찬 가방을 보여주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점점 시계는 정각을 향해 다가가는데, 이러다 체육복 없이 수업을 들어 가야 하는 건 아닌가 초조함에 발을 동동 구르는 동해였다. 다른 애들은, 없대? 규현이 그런 동해에 진정하라고 타이르며 물었다.
“나 친구 너 밖에 없는 거 알잖아...! 반 친구면 몰라도, 그리고 체육복 2개 있는 애들이 어딨어...”
울먹이는 동해를 보며 안쓰러움에 혀를 찬 규현이 큰 소리로 자신의 반 아이들에게 물었다. 혹시 체육복 있는 사람? 규현의 목소리에 놀란 아이들은 불안으로 떨고 있는 동해를 보자 저들끼리 수군덕거리기 시작했다.
'야야. 쟤가 걔 맞지?'
'쟤는 누구고, 걔는 누군데.'
'병신아, 그 있잖아... 머리 노랗게 염색하고 와도 선도 안 잡히는 애.'
'아하...'
'쟤가 그 이동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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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늘 체육 없잖아. 체육복 있는 애가 어딨어.”
규현의 물음에도 저들끼리 쑥덕거리기 바쁜 아이들 틈에서,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잠에서 깬 희철이 말했다. 이동해 체육복 없어? 막 자다 깨어나 비몽사몽인 상태로 동해의 어깨에 팔을 걸쳐 몸을 기댔다. -기댔다기 보단 되려 안고있는 자세 지만- 저 보다 한참은 작은 동해의 머리통에 얼굴을 박았다. 못본 새에 머리털이 개털이 돼서 돌아왔네. 향기로운 동해의 샴푸 향기가 희철의 코 안으로 은은하게 들어왔다. 노랗게 물도 들이고 말이야. 제 머리를 끌어안고 부비적 거리는 희철에 동해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다.
검은 머리에서 노란빛으로 염색을 하고 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나 시간이 지났다. 금세 지나간 시간의 수 만큼, 사람들의 적응력도 매서운 시간의 속도 마냥 동해의 노란 머리에 점차 적응해 갔다. 뭐, 적응 이라기 보단 순응에 가깝긴 하지만. 동해의 노란 머리를 봐도 이젠 그닥 아무렇지 않은 느낌? 이랄까. 모두 속으론 규칙을 어겼다고 징계를 주고도 모자랄 판에, 오직 동해만 징계도 선도도 없이 그냥 넘어가는 게 매우 불만스러웠지만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동해니까. 이동해는 뭐... 이동해는 괜찮겠지.
인정하긴 싫지만, 모두의 머릿속 한켠에선 동해 만큼은 예외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는게 아닐까.
“희처라 너 혹시 체육복 이...”
“없어.”
“없구나 너도... 그래 다 없어 응...”
체육복 없는 애들이 너만 있는 게 아닐 거야. 금방 바뀐 시간표 라며. 푸석한 동해의 머릿결을 쓱쓱 넘기며 희철이 말했다. 그 둘을 번갈아 쳐다보던 규현은 난 모르겠다, 다음 교시 교과서를 꺼내려 자리로 돌아갔다.
“걔넨 친구가 나보단 많을 거 아니야... 아까 보니까 거의 다 빌렸더만...”
아이고, 눈물이 그렁그렁 올라오기 시작하는 동해에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래. 체육복 빌릴 친구가 우리 밖에 없는 니 탓이지. 희철의 허심탄회한 곡소리에 참고 있던 눈물이 결국 터진 동해가 얼굴을 감싸고 히끅 거렸다. 김희철 미친놈아!! 왜 애를 울리고 있어!! 달달 떨리는 동해의 어깨를 확인한 규현이, 희철의 품에 있던 동해를 제 쪽으로 확 잡아 끌었다.
“뚝 그쳐. 니가 애야? 체육복 못 빌렸다고 울고 앉아있게.”
아, 안 우러... 히끅...! 규현의 다그침에 벌건 눈가를 비비며 억지로 눈물을 참는 동해의 모습이 속상했다. 시큰둥하게 그 둘을 지켜보던 희철은 쏟아지는 잠에 못 이겨 자리로 돌아간 지 오래. 동해를 도와줄 사람이 저 밖에 없다는 사실에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축내고 말했다.
“아직 쉬는시간 5분 남았으니까 내가 다른 반 가서 얼른 빌려올게. 그러니까 울음 뚝 그치고 반에 가 있어. 빨리 갔다 올 테니까 그전에 다 눈물 그치고 있어야 해. 알았지?”
알았어... 셔츠 소매로 흐르는 눈물을 벅벅 닦은 동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네. 동해의 머리를 쓰다듬던 규현은 시계로 눈을 돌려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째깍, 째깍.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 하면 지체 할 수록 정각에 가까워지는 시곗바늘에 서둘러 교실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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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지 말고 반에서 꼼짝 않고 있어. 규현의 말을 따라 자신의 반으로 돌아간 동해는, 벌써 모두 체육관으로 향했는지 텅 빈 교실 안을 둘러보다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털썩- 동해가 힘 없이 의자에 앉자, 동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낡은 의자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동해는 어느 한 곳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채로 허공을 응시했다. 이럴 때면 항상 자신의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은 제 성격이 문제였다. 낯가리는 성격, 말 없이 조용한 성격, 친구를 사귀는게 겁이 나 혼자가 편하다고 치부해버리는 성격. 끝도 없이 펼쳐지는 잡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자기혐오까지 들게 만들었다. 나도 규현이 처럼 스스럼 없는 성격 이였다면. 지금보다 친구도 많이 생겼을테고.... 체육복을 빌린 만한 친구들도 더 있었겠지?
동해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그리고...”
흘러 내린 한 방울이 점차 두방울, 세방울로 늘어가며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강물을 막아 놓던 댐이 터진 것 처럼. 팡 하고 터진 자기혐오와 울분들이, 동해의 눈물샘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같이 끝도 없이 흘러 내렸고. 흘려 보내졌다.
그리고, 그리고... 동해는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혼자 흐느꼈다.
“혁재랑도 친해졌을 텐데...”
말이라도 한번 걸어봤을 텐데. 동해의 기다란 속눈썹들에 붙은 눈물들이 반짝이며 떨어졌다. 인사라도 한번 건네봤을 텐데. 볼을 타고 줄기차게 흐르는 눈물 자국들이 따가웠다. 좋아했다고, 좋아한다고. 입술 사이로 들어오는 눈물들이 짜디 짠 소금의 맛보다 더욱 짜게 느껴졌다. 마지막 학창 시절이 끝나가기 전에...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고백. 해봤을 텐데.
혁재의 대한 사소한 것 부 터 시작해서 고백까지. 3년 내리 같은 반 이였지만, 3년 내리 제가 먼저 말 한번 걸어본 적이 없었고. 3년 내리 혁재가 먼저 제게 말을 걸어주길 바란 적도 없었다.
그냥 그 상태 그대로, 어색한 반 친구 사이로 남아있길. 동창회에서 만난다면 그때 우리 그랬었지, 라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염 없이 떠들 수 있는 그런 사이로 남아있길.
그냥. 지금과 같은 이 상태로 여전히 남아있길,
바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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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년 내리 순애보 같은 동해의 짝사랑, 아니 외사랑은. 그 바램을 머리로만 생각하는 이성적인 사고가 원한 것이지, 적어도 동해의 속마음 만큼은 조금이나마 혁재의 기억 속에도 자신이 남아있길 바랬었다. 그것이 반 친구 사이든, 3년 연속 모범 반장 이동해로든.
이왕이면 반 친구 사이가 아닌 친한 친구로 남아있길 바랬고.
친한 친구 사이가 아닌 절친한 친구가.
절친한 친구 사이가 아닌,
혁재를 향한 자신의 마음과 똑같은 사이로 남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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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혁재의 흑갈색 머리칼이 노란 탈색머리로 염색 되어 온 날이 있었다. 노란색으로 단정 짓기엔 백발의 가까운 그런 색. 그런 밝은 빛의 머리는 티비 속에나 나오는 연예인들만 어울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과 똑같은 머릴 하고도, 그 사람들 보다 더 어울리는 것이 혁재였다. 어디서나 빛이 나는 혁재. 그런 혁재가 멋있었다.
아마 혁재에게 반한 이유도 맥락 없고 단순하지만 이거 였지 않았을까 싶다. 멋있어서. 이혁재니까. 이혁재는 멋있으니까. 자신과 다르게.
일체 다른 곳에 무관심인 것으로 보여도 은근 세심한 부분들이. 차가운 말투로 단답식으로 말해도 그 하나하나가 허투루 내뱉는 말은 아니란 걸. 모든 부분들이 이혁재라서 좋았고 이혁재였기에, 3년의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내줄 수 있을 정도로 혁재를 좋아했다.
규현이나 다른 사람들에겐 검정색은 답답하잖아요. 라며 얼토당토않은 소리로 열심히 나불거렸지만, 실상은 그것 때문이 아니란 걸 동해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밝은색으로 염색한 혁재가 멋있었다. 자신도 만약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만약 자신이 혁재와 같은 색으로 염색을 하고 온다면, 새롭게 바뀐 자신을 혁재는 한 번이라도 돌아봐 주지 않을까.
그런 동해의 바램과 달리, 혁재는 끝끝내 동해를 돌아봐 주지 않았다. 동해가 노란 머리로 염색하고 온 당일, 동해를 보기 위해 창가에 다닥다닥 붙은 학생들 중에서 혁재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혁재의 노란 탈색머리 조차 털 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동해는 깨달았다. 처음부터 혁재의 머릿속엔 이동해란 존재는 관심 밖이란 사실을. 그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음에도, 자신은 그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싶어 하는 것 이란걸.
현실의 대한 깨달음의 연속과 부정의 반복. 그리고 오늘. 뒤늦게 그 사실을 인정한 동해는, 체육복 일이 터짐과 동시에 서러움에 복받쳐 오랜 시간 감춰 왔던 혁재를 향한 제 마음까지 들춰내며 서글픈 눈물을 하염 없이 쏟아냈다.
“흐윽, 흡... 흐으... 혁, 재야아.... ”
울면 안 되는데. 규현이 자기 올 때까지 뚝 그치고 있으라 말했는데. 책상에 엎드려 서럽게 엉엉거리며 울던 동해가 떠오르는 규현의 다그침에 조금씩 눈물들을 삭혔다. 씨잉.... 너무 많은 눈물들을 뽑아낸 탓에 관자놀이가 아려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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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가 운지 족히 5분은 넘긴 것 같은데, 우는 것에 집중 하느라 체육복을 빌리러 간 규현을 까맣게 잊고 있던 동해는 지금이 종 치기 5분 전이란 사실 또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 맞다, 체육관!! 동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책상다리에 발이 부딪쳤다. 그로 인해, 아악! 짧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동해는 다시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흐윽... 흐르는 눈물을 미처 닦을 새도 없이 다친 발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파...! 욱신거리는 발 보다 혼자서 감당해야 할 감정들이 더욱 욱신거렸다. 체육이고 뭐고... 동해의 흐느껴 우는 소리가 점차 커질 수록 그것의 이유가 혁재를 향한 자신의 미련한 감정의 대한 분풀인지,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규현의 대한 짜증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숨이 꺽꺽 넘어갈 듯 울음을 토해내던 동해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물에 가려 흐릿해진 시야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규현이야...? 흔들리는 초점에 인상을 쓰며 교실 문 앞에 서 있는 누군가의 인영을 집중해서 쳐다봤다. 규현인가, 동해는 점차 선명해지는 시야로 인해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차림새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아.
문에 기대 서 있던 누군가는, 규현보다 키가 조금 더 작아 보였고 손에 체육복을 들고 있지도 않은.
다... 울었어?
자신이 애타게 찾던, 혁재였다.
___
교실 문을 깜빡하고 못 잠가서. 들어왔더니 계속 울고 있길래... 아, 뒷문은 벌써 잠갔어.
생각지도 못한 혁재의 등장에 놀라 자리에서 굳은 동해가 뒷문으로 슬그머니 몸을 움직였다. 뒷문은 벌써 잠갔어. 그런 동해를 보며 혁재가 말했다. 그의 말에, 아하하... 그래...? 어색하게 웃어 보인 동해가 뒷문으로 향하던 몸을 중간에서 멈춰 섰다. 체, 체육 안 갔어...? 입꼬리에 경련이 오는 걸 느끼면서도 억지 미소를 띈 채 혁재에게 물었다.
“당번이야.”
혁재는 구차한 말 대신 제 손에 들린 열쇠를 흔들어 보였다. 아... 당번, 혁재의 뜻을 이해 한 동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당번이였구나...
어색한 기색이 묻어 나는 동해를 아무 말 없이 쳐다봤다. 그러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동해의 눈물 자국에 인상을 찡그렸다. 울었어? 혁재가 물었다. 어...? 어, 어떻게, 혁재에게 우는 것을 들킨 것도 모자라, 고대하던 혁재와의 첫 말문을 이런 식으로 트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던 동해가 급하게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어떻게 알았어...?
“말했잖아. 들어 왔을 때 부터 이미 울고 있었다고.”
“아아, 그랬지 참... 혹시 다 봤어...?”
“아니.”
다행이다...!! 자신이 추접스럽게 우는 모습까진 들키지 않은 것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르륵- 문을 닫고 들어온 혁재가 입을 열었다. 근데. 교실로 들어온 혁재가 뒷문 가까이 서 있는 동해에게로 조금씩, 천천히 다가왔다. 혁재야...? 제게 가까이 다가오는 혁재에 주체를 못하고 뛰어대는 심장 소리가 귓가 바로 옆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동해 있잖아.
혁재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이름 알고 있었구나...! 터지기 일보 직전이 심장 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온 혁재에게도 들릴 거 같아 몸을 뒤로 내뺐다. 으응, 왜...? 벌겋게 타올랐을 얼굴 부분이 뜨거운 불에 덴 것 처럼 화끈거렸다. 왜, 혁재가 입을 열었다. 두근거리는 심장 탓에 혁재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동해가 눈을 질끈 혁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러다 심장이 터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순간.
“왜 내 이름 부르면서 울었어?”
툭, 심장의 요동이 끊어졌다.
___
이동해!!!
학교를 등교 한 규현이 자신의 반에 가방을 내려 놓자마자, 옆 반인 동해의 교실로 걸음을 향했다. 동해네 반 앞에서 열이 오른 콧바람을 한번 내쉬고 문을 벌컥 열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동해 어딨어? 씩씩 거리는 가쁜 숨을 토해내며 동해의 행방을 묻자, 이동해 자는데. 동해네 반 아이 한명이 손짓으로 동해의 자리를 알려줬다. 그 아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규현은, 쿵쾅 거리는 요란한 발소리를 내며 동해에게 다가갔다. 잠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야 이동해!!
태평하게 잠이나 자고 있다. 사람 온갖 걱정은 다 하게 만들어 놨으면서. 체육복 상의를 머리 위에 뒤집어쓰고 잠을 자는 동해에 기가 차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빨리 안 일어나!! 규현은 동해의 책상을 쾅쾅 두들기며 동해를 깨웠다. 뭐야... 규현의 호통소리와 더불어 책상을 두들기는 소음에 잠에서 깬 동해가 비비적 일어났다. 아침부터 왜... 체육복을 머리 위에 뒤집어쓴 동해가 잠긴 목소리로 웅얼 거렸다.
“어제 한 교시 남기고 조퇴했다며.”
“으응... 그랬지...”
“어차피 조퇴 할 거면서 체육복을 빌리네 마네...! 하, 그래 이건 그랬다 치자. 도대체 전화는 왜 안 받은 건데? 너한테 몇통을 했는 줄 알아?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선 연락도 안돼, 전화도 안 받아. 너네 담임쌤은 계속 조퇴 했다고만 말하고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는데, 이 씨... 어제 김희철이랑 내가 얼마나!!”
규현은 잠결에 헤매고 있는 동해를 봐주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제 할 말만 다다다 쏘아 뱉었다. 동해는 그런 규현이 익숙한듯 규현의 호통에도 미동 조차 없이 규현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전화는 배터리가 없어서 못 받았고...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져서 조퇴 한 거야. 조퇴 끊으려면 진단서 가져와야 한다 해서 병원도 갔고. 희철이 한테도 별거 아니었는데 괜히 걱정 시켜서 미안하다고 전해줘.”
물론 너도. 차분하게 규현의 물음을 다 답변해준 동해가 책상 위로 다시 엎어졌다. 참나... 미안함이 묻어있는 동해의 어투에 규현의 화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서, 병원에서 뭐라는데. 어느새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 규현이 자연스럽게 동해의 옆자리 의자를 끌어 앉았다.
“스트레스성 복통. 약 일주일 먹으면 괜찮아져, 걱정 하지 마.”
“걱정은 무슨... 걱정 안 시키려면 전화나 제때제때 받아!”
예예-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입맛을 다신 동해가 체육복 상의로 얼굴을 파고들었다. 병원은, 혼자 갔냐? 규현이 물었다. 아니. 혁재가 같이 가줬어. 잠에 빠져들기 직전인 몽롱한 목소리로 동해가 답했다. 혁재? 설마 내가 아는 그 이혁재? 그 날라리?? 규현은 동해의 어깨를 세차게 흔들면서 여러 번 동해에게 물었다. 응, 네가 아는 그 혁재. 지금 네가 앉고 있는 자리도 혁재 자리야.
“니가 이혁재랑 언제부터 친했는데? 나한테 말도 없이??”
“내가 혁재랑 친한 걸 너한테 허락까지 맡아야 하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존나 쌩양아치 잖아 이혁재...! 주변의 눈치로 보던 규현이 작게 속삭였다. 혁재 양아치 아니야! 체육복 안에서 꿈틀거리던 동해가 그 말을 듣곤 버럭 화를 냈다. 아침 일찍이라 몇 없는 반 아이들의 시선이, 느닷없는 동해의 고함 소리로 인해 그들에게 꽂혔다.
혁재느은... 쏟아지는 졸음 탓에 동해가 말꼬리를 늘렸다. 혁재는 그냐앙.... 머리를 탈색 한거지이.... 양아치는 아니야... 그 말을 끝으로 동해는 다시 잠에 들었다. 뭐라는 거야, 체육복 상의를 덮고 있어 웅얼 거리는 동해의 말이 제대로 규현에게 전달 되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안 들리잖아. 말할 땐 잠깐 벗든,
“어? 이동해... 너 머리가...”
동해가 덮고 있는 체육복 상의를 벗기자, 게슴츠레 뜨고 있던 규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눈짓으로 흘끔 그들을 구경하던 반 아이들도 덮고 있던 체육복을 벗긴 동해를 보자 놀람에 눈이 배로 커졌다. 이동해. 동해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잠깐 일어나봐.
“또 왜그러는데... 나 진짜 피곤하단 말이야.”
“아니, 그게... 머리 언제 풀었어...?”
“머리? 아, 어제 병원 갔다가 미용실 갔어.”
“설마...”
응. 혁재랑 같이. 동해의 말에 얼어 붙은 규현이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바닥에 떨어진 체육복을 주웠다. 그리고 떨어진 체육복의 명찰을 확인하자, 이혁재. 익숙한 이름 석 자가 박힌 명찰을 보고 어이가 없어 허허 웃음을 내뱉었다.
“하하 이 미친...”
“어, 혁재다. 혁재야!”
혁재? 체육복을 들고 있던 규현이 동해의 목소리를 따라 뒤를 돌아봤다. 오늘은 일찍 왔네! 노란빛의 탈색머리가 아닌, 동해와 같은 어두운 흑발의 머리로 염색 한 혁재가 뒷문에 서 있었다. 동해의 옆에 앉아있는 규현을 무심히 쳐다보던 혁재는 제게로 뛰어오는 동해에 굳어있는 얼굴을 풀었다. 헐... 이혁재가 웃네? 그의 웃음에 소름이 돋은 제 양팔을 쓸어 내렸다. 동해의 검은 빛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웃는 혁재나, 혁재의 품에서 좋다고 헤실거리고 웃는 동해나.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둘의 조합에 멍하니 둘을 바라보던 규현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제 교실로 향했다.
___
전교생의 입방아에 올랐던 동해의 염색은. 일주일이란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검은 머리로 풀고 온 동해에, 작지만 큰 모범생 이동해의 단순 일탈 사건으로 소문의 영향력과 사람들의 관심은 금세 시들어갔다. 다시 돌아온 동해의 검은 머리를 본 선생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나 뭐라나. 하지만 그것보다 선생들의 눈초리에도 탈색 머리를 고집하던 혁재가 갑자기 검은 머리로 풀고 왔다는 사실에 전교가 다시 떠들썩 해졌다.
대표적인 모범 인물 동해가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온 날. 대표적인 쌩양아치 혁재가 고집하던 탈색 머리를 어느 날 갑자기 검은 머리로 염색을 풀고 온 날. 신기한 사실은 그 둘이 염색을 풀고 온 날이 똑같다는 점.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과연 우연으로만 겹친 것일 뿐일까?
“혁재야! 많이 기다렸지... 미안. 오늘 상담인걸 깜빡 잊고 있어서...”
“아니야, 별로 안 기다렸어. 가자.”
“응..!”
우연의 일치 그 속사정은, 그 사건의 당사자들만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저기 혁재야...”
“응. 동해.”
“그, 손... 잡을,”
“손 줘.”
“으응...!!”
___
+
“아... 운 이유가 그래서 나 때문? 이란거지.”
머리... 그거도 나 때문이였고. 교실 바닥에 주저 앉은 동해의 머리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으, 으응... 붉게 타오른 제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는 동해를 말 없이 쳐다보던 혁재가 동해의 손목을 탁 잡아 내렸다. 가리지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때문에 한거라며. 예쁘기만 한데 왜 가리고 있어.”
그, 그건... 토끼눈 처럼 놀란 동해의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온 전신이 불구덩이에 던져진 것 처럼 뜨거웠다. 머리... 안 이상해...? 제게 다가오는 혁재를 보며 흠칫 놀란 동해가 바닥에 앉아 제 옆으로 붙어 앉는 혁재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흡, 혁재, 야.. 너무 가까운, 데...! 새빨갛게 잘익은 사과처럼 붉어진 동해의 얼굴과 반응이 재밌어 짓궂은 장난인걸 알지만 계속 이렇게 붙어 있고 싶었다.
“전혀. 잘 어울려 동해야.”
“...고마워...”
동해는 자신을 쳐다보는 혁재의 시선이 부끄러워 그 시선을 피해버렸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만약 지금이 꿈이라면 깨어나지 않길 바랬고, 정말 이게 현실이 맞다면 앞으로 착한짓만 가득 하고 살다 죽을게요. 라는 다짐을 속으로 백번이고 천번이고 넘게 새겼다.
“동해.”
동해의 노란 머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혁재가 그를 불렀다. 응? 혁재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혁재와 시선을 마주하자,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 온 혁재의 얼굴에 다시 고개를 아래로 떨굴 수 밖에 없었다. 동해. 혁재가 한번 더 동해의 이름을 불렀다. 거, 거기서 말해... 이미 자신이 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있음에도 이런 행동을 하는 혁재가 얄미웠다. 미안. 떨어질테니까 나 봐줘. 동해의 곁에서 조금 떨어진 혁재가 부드러운 손길로 동해의 머릿결을 살짝 쓰다듬었다.
“지... 지금 뭐하는...”
그 손길에 흠칫 놀란 동해가 혁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제야 봐주네.”
커다란 동해의 눈과 마주 한 혁재가 사르륵 눈을 접어 웃어 보였다.
“나 때문에 염색 한거라면, 나 때문에 다시 염색해 줄 수 있어?”
뭐? 상황에 맞지 않는 혁재의 말에 동해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런 동해의 반응에 혁재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넌 검은 머리가 더 예뻐.”
혁재의 뒷말에 동해의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혁재누 양뺨을 붉게 물들인 동해를 보며 그의 노란 뒷통수를 잡아 제 얼굴 가까이 끌었다. 염색. 다시 해줄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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