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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할로윈] Happy Halloween _ 유자


 Happy Halloween

w. 자유가 되고 싶은 유자








 " 너 또 자살하려고? "




 그렇게 말하는 혁재는 앞서 3년 전에 죽었다. 가물가물하지만 혁재는 자신이 3년 전에 자살했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유는 없었다. 괴로운 것에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증오이기 때문에 혁재가 죽은 이유는 그냥. 그렇다고 딱히 살아갈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말이 적절했다. 혁재는 그 사실에 엄청난 덧없음을 느꼈다. 그는 심드렁한 낯빛으로 내리 무의미하게 주절주절 지껄였다. 지상 33층의 평범한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걸터앉아 맞는 바람은 뭔가 색달랐다. 혁재는 그것도 모르고 두 팔을 하늘로 치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그는 이보다 더 높고 아찔한 절벽에서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둥둥 공기가 빠진 고무풍선처럼 지상에 무사히 착지할 것이 분명하리라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 왜 하필 오늘 같은 날에 죽으려 하냐. "




 살아생전 혁재는 동해를 몰랐다. 뒤늦은 초련인 게야 쯧쯧. 늦바람이 난 아버지가 집을 나간 그날 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지 끅끅 흐느껴 우는 동해를 보고 혁재는 가슴이 철렁했다.




 " 잊혀지기 딱 좋게. "




 사실 혼령은 더없이 매력적이다. 투명 인간처럼 아무도 저를 보지 못하고 자유로이 떠돌아다닐 수 있었다. 배낭여행을 떠나는 대학생 무리에 끼여 버스에 탑승하기도 하고, 차가 쌩쌩 달리는 고속 도로에 누워 바라만 봐도 시원한 하늘을 찬찬히 감상하기도 하고, 사람이 그리우면 생전에 친했던 친구들의 꿈에 찾아가 하룻밤 놀기도 했다. 그리고 마음이 맞는 망령끼리 말을 섞기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고양이와 숨바꼭질을 하기도 했다. 썩어 버린 육체 따위 안중에 둘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가끔 그날의 제 육체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넨다. 그 다음 두 손을 모으고 각자 소중한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도를 드렸다. 혁재는 그때마다 대충 흉내만 내거나 능글맞게 도망가기 일쑤였다.




 " 너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




 확실히 혼령은 피곤하다. 그들은 눈을 깜박이지 못한다. 그들은 맛도 느끼지 못하고, 냄새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잡을 수 있는 게 없다. 형태가 있는 것은 형태가 없는 것은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에 밥도 먹지 않는다. 그들은 눈을 감을 수 없기 때문에 잠도 자지 않는다. 귤껍질을 꿰뚫는 바람의 산들거림도 느낄 수 없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더욱 아무거나 하고 있다. 귤껍질이 자신을 그늘에 말려 달라고 간청한다. 말린 귤껍질은 생각보다 쓸모가 많다. 자세한 건 구글에 검색하도록 하고, 입욕제나 세제나 방향제나 표백제, 또는 차로 달여 마셔도 좋다. 쓸모가 있다는 건 맛있다는 것. 나른한 귤껍질이 환호한다.




 " 사실 후회해도 나쁜 건 아니지만. "




 교내에서 체육 대회가 있던 날이었다. 동해가 장애물 달리기를 하던 도중 그만 넘어졌다. 철퍼덕하고 작은 흙먼지가 일어났다. 다른 선수들이 동해를 지나쳐 간 다음 선생님과 같은 반 학생들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부축을 받아 일어선 동해는 괜찮다며 헐겁게 웃어 보였다. 체육 선생님께 업혀 양호실로 간 동해의 손바닥에 박혀 깔깔 요절 복통인 누런 빛깔의 모래알을 뒤로 한 채 생채기로 뒤덮인 무릎과 종아리에 덕지덕지 뭉개진 붉은 핏덩어리들이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점심도 거르고 케첩 만큼 새빨개진 얼굴로 화장실 칸막이에서 입을 틀어막고 뚝뚝 큼지막한 눈물 덩어리만 쏟아 내는 동해를 보며 혁재는 한편으론 귀엽고, 한편으론 불쌍하고, 한편으론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서 속이 언짢았다.




 " 너는 나처럼 살지 마. "




 사랑. 그래 사랑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사랑하지 않고 사랑만 받아도 좋다. 그러나 사랑받지 않고 사랑만 하는 것은 싫다.




 " 주제넘는 말이라는 거 알아, 그래도. "




 네가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혁재는 씁쓸한 어조로 읊조렸다. 그러고 싶었는데 정말 그랬을까.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동해는 혁재처럼 될 것이다. 혁재는 일찍이 동해처럼 되어 버렸다.




 " 네가 바라는 게 뭔지 알아. "




 높은 곳으로 가고 싶다고 혁재는 막연히 기원했다. 지구가 높은 곳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혁재는 꽤 오래전에 구름을 동경했다. 새하얗고, 몰랑하고, 푹신푹신한 저 물체를 하늘보다 높이 우러러보았다. 구름 위에 뭐가 있을지 호기심을 품었다. 혁재가 생각하는 더 오를 수도 없이 높은 곳은 구름이 되었다. 그래서 혁재는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구름 위에는 비행기가 있었다. 비행기였다. 매캐한 연기를 토해 내는 저 덩그런 비행기였다. 높은 곳의 높은 곳은 비행기라는 존재였다. 혁재는 비행기가 아니면 구름을 오를 수 없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 뒤로 혁재는 더 이상 구름 위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시시해졌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혁재가 욕심이란 것에 겁을 먹기 시작했다.




 "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닐텐데, 그렇지? "




 어느 순간부터 동해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어느 하루는 종일 잠만 잤다. 수면 패턴이 망가지고, 끼니를 밥 먹듯이 거르고, 잠에서 깨면 꼭 샤워를 했다. 그러나 아무도 동해를 걱정해 주지 않았다. 잘 자라는 아버지의 인사에 방으로 들어와 발작적인 울음을 터트리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앉으면 산산조각이라도 나는 의자처럼 동해는 약도 먹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물도 마셔야 했다. 발이 시리면 두툼한 양말을 신고, 손이 시리면 털실로 짠 장갑을 끼고, 목이 시리면 부드러운 목도리를 둘러야 했다. 그러나 고쳐지지 않았다. 시린 것은 동해가 아니었기에. 동해가 외로움에 질식되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그는 헤맬 곳조차 제한적이었다. 도망쳐도 도망칠 수 없는 동해는 그래도 도망치고 싶었다.




 " 말하지 않으면 절대로 모르지. "




 북적거리는 야시장의 불빛이 야간을 현란하게 감싸고 돌았다. 깊은 숲속에 갇힌 것처럼 자욱한 새벽안개를 헤치는 등굣길에 펼쳐 놓지도 않고 죽 늘어선 천막들이 마치 묘비 같다고 둘은 생각했다. 하굣길에 삼삼오오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학생들로 벌써부터 붐비는 그 골목을 동해는 유연한 몸짓으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미끄러지듯이 나아갔다. 그윽하고 필사적인 모습으로. 아 참, 혁재는 유서 대신 포스트잇에 정갈한 필체로 제 마지막 자취를 남겼다. 난 오늘부터 없을 예정. 바꾸지 못할 결정. 이렇게 됐는 걸 과정. 다른 이유는 아니야 부정. 빨리할수록 좋은 거야 인정. 나도 알아 심정. 그러니까 하지 마 걱정. 울지 마 그런 표정. 정리하렴 감정. 난 다했어 열정. 숨기지 말자 애정. 잘 살아라 가정.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알았지 우정.




 " 말하지 않아도 알아 달라는 우리의 심리는 대체 어디서 온 걸까. "




 그 순간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난간에 몸을 완전히 기대고 있던 동해가 뒤로 물러날 정도로 세찬 바람이 말이다.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던 동해의 머리카락이 갈대처럼 흩날렸다. 동해는 잠시 눈을 꼭 감췄다. 정체 모를 굵은 물방울 하나가 동해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눈물처럼 아래로 흐른다. 침식해 버린 어둠은 눈물로 둔갑한다. 허공에 풍선처럼 떠오르는 사람들의 들뜬 발소리와 뒷모습이 멀게만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별이 동해의 새까만 눈동자에 우수수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눈가에 고인 별이 비에 젖어 축축하기만 하더라. 울지 마, 동해는 언제나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란 말이야, 그리고 조금 서글픈 것 같았다.




 " 그냥 혼자서 지친 것뿐인데 말이야. "




 울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슬픈 마음의 거울 같은 것이다. 닫힐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활짝 열어 둔 곳은 더 이상 싫다. 계절은 돌아오고, 날씨도 추워졌는데 열어 두면 감기 걸린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고, 다시는 나갈 수 없는 곳이라면 더 좋다. 비통한 목소리로 울먹거리는 혁재의 주먹이 금붕어를 닮아 울퉁불퉁하게 떨고 있었다. 울고 있는데 울고 있지 않은 표정이다. 이해할 수 없는 안쓰럽고 괴로운 표정으로 동해를 바라보는 혁재가 있었다. 누가 나한테 죽지 말라고 해 줬으면 이해할 수 있었을까, 동해는 아직 눈을 뜨지 않았다. 혁재는 자신이 동해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동해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이해하고 있다. 혁재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 부탁이 하나 있어. "




 조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였다.




 " 죽지 말아 줘. 제발. "




 달빛에 혁재의 동공이 일렁인다. 구더기를 쑤셔 박아 나오지 않는 눈물이 왕왕 쏟아져 내렸다. 혁재는 정말 오래간만에 잠이 들고 싶었다. 이따금 잠기운을 떨쳐 내지 못한 몸을 뒤척거리다 베개에 고개를 부비적대며 커튼을 치지 않은 창문으로 비껴 들어오는 햇살이 내려앉은 눈꺼풀을 깜박이고, 가장 먼저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수건을 목에 건 채로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교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양치를 하고, 대강 마른 머리카락을 빗질하고,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씩씩하게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며 집을 나서고 싶었다. 달캉, 탁자에 누가 놓아 두었던 안경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혁재는 언제나 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 알고 있어······. "




 그리고 그것은 동해도 마찬가지였다.




 "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구우. "




 동해는 울 것만 같은 얼굴로 울지 않았다. 동해는 참 귀엽다. 그의 눈망울은 모든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상자 안에 고양이가 있고, 보디로션(body lotion) 안에 복숭아가 있고, 저금통 안에 쪽지가 있는 것처럼. 둘의 눈이 마주친 것은 한낱 우연이었다. 기가 약해진 동해가 가위에 자주 눌렸던 재작년 겨울이었다. 말이 통하는 상대라면 잘 타이르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상대는 위협을 가하는 방법으로 혁재는 동해만 모르게 그를 도왔다. 그중에서 혁재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어린 혼령이었는데, 동해의 배꼽 위를 방방 뛰어다니는 망아 두 명을 달래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던 중이었다. 꿀단지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동해를 눈이 마주치자 혁재는 그대로 초점이 뚝 끊겨 버렸다고 한다.




 " 그렇지만, 그렇지만. "




 동해가 운다. 컥컥 목에 가시라도 걸린 사람처럼 무엇을 빼내려고 한다. 기다리지도 않고 다급한 목소리로 호소한다.




 " 말해도 변하는 건 없잖아. "


 " 말해도 변하는 건 없지. "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공존했다.




 " 죽고 싶지 않아······. "




 동해는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 우리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 자신은 아빠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은 것 같아 동해는 항상 불안했다. 그래도 그들은 평범한 가족이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사치스럽다는 가족. 동해는 꽃을 좋아하고, 꽃말도 좋아한다. 그는 매주 목요일 밤 11시에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마카롱과 치즈 케이크를 좋아하고,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를 좋아하고, 두 달쯤 전부터 방영하기 시작한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의 팬이다. 원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가장 좋아하는데 요즘은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하고, 딸기 아이스크림은 변동 없이 좋아한다. 자신의 행복을 이루어 준 것들을 생각하며 동해는 어젯밤 간략히 눈물지었다.




 "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 "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것은 감사와 보답만으로도 충분하다.




 "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아. "




 의문투성이다. 왜 죽어야 하지, 왜 죽어야 하지, 하면서도, 그럼 왜 살아야 하지, 왜 살아야 하지. 동해는 씁쓸해진 가슴을 감출 수 없었다.




 "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




 살려 달라는 한 마디는 생각보다 별 힘이 없다.




 " 그래도, 그래도, 역시, "




 이제야 동해는 마음 편히 웃었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혁재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글썽이는 눈동자가 마음에 든다.




 " 그동안 내가 너무 죽고 싶어 했지. "




 쿵. 땅이 흔들렸다. 언제 들어도 낯설다. 세찬 바람이 넉살 좋게 기승을 부렸다. 결국 혁재는 동해와 함께 떨어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 하는데.




 " 여기 사람이! 사람이 떨어졌어요! "




 혼령의 눈물은 시간이 빨리 흐른다. 그것도 모르는 혁재는 그저 슬피 울었다. 개운할 정도로 마음껏. 동해의 예쁜 이마에서는 수프 같이 찐득하고 뜨끈한 피가 흘렀다. 삼십 분 뒤에 구급차가 왔다. 동해의 육체를 실고 가는 그들은 막상 동해를 두고 갔다. 구급차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허탈감에 젖은 혁재는 헛웃음을 지었다. 요즘은 어떤 음악이 유행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사실 이것은 비밀인데, 동해는 현재 사랑을 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고 있었다. 우는 얼굴로 마무리를 장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터져 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지금부터는 솔직해져도 괜찮다. 이제는 우리가 답을 해 줄 차례인 게 맞겠지?




 " 어? "




 우리는 그저 빛을 따라왔노라.




 " 해피 할로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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