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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아이스크림] ádămo_꿈글

ádămo (몹시 좋아하다, 사랑에 빠지다)
w. 꿈글
월간은해 7월호

 

무거운 소리를 내며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밖의 비가 와서인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침침한 어느 여유로운 휴일의 방에는 알람소리가 참 이질적이었다.

 

"으음.."

 

손을 뻗어 알람을 끄니 그 조그마한 움직임을 감지한 동해가 옅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였다. 다시 자세를 고쳐 동해를 끌어안으니 눈을 슬몃 떠 나를 처다보았다.

 

"벌써 일어난거야?"

"그냥, 핸드폰 알람."

"우웅..그래.."

 

아직 졸린것인지 더욱 진한 쌍꺼풀, 가라앉은 목소리.

가득 끌어안고 정수리에 입을 쪽쪽 맞춰오자 아아 하지마 냄새나 하며 더 내 품으로 파고든다.

 

"혁재야, 밖에 비와?"

"응."

"아아아 싫어.."

"왜, 너 비오는거 좋아하잖아."

"..오늘 너랑 데이트하기로 했었잖아."

 

요즘더러 부쩍 바빠진 나였다.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에 집에 제시간에 들어오기도, 동해와 얼굴을 마주보고 밥을 먹기도 참으로 빠듯한 나날들이었다. 그러다 어렵사리 잡은 데이트였다. 이제 한여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으니, 더 더워지기 전에 놀이공원에 놀러가자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꼭꼭 약속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비가 한바탕 퍼부울 줄이야.

오늘부터 태풍이 육상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제 새벽부터 거세게 퍼부어대는 비탓에 놀이공원은 이미 물건너 간 듯 했다. 하아, 내 작은 한숨에 동해도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동해,"

"네가 뭘 미안해."

"너 놀이공원 가고 싶었을 텐데,"

"바보야."

 

나는 놀이공원에 가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그냥 너랑 같이 있고 싶었던 거라고..자그맣게 중얼거리는 그 입술이 너무 사랑스러워, 쪽 소리나게 입을 맞추었다. 이거 누가 잡아가면 어쩌나. 이렇게 예쁜걸 어쩌나. 나만 보고싶은데, 동해야.

 

"아 이뻐 우리 동해"

"시끄러, 너는, 맨날 늦게 들어오고."

"아아 그건 내 잘못이 아니,"

"흥, 됐네요."

"근데 동해, 우리 오늘 밖에 못나가니까,"

"응?"

"하루종일 그냥 침대에 있을까?"

 

이 몹쓸새끼! 어제밤에도 그렇게 달려놓고! 풀파워를 실어 내리친 팔이 아파 팔을쥐고 아이고 나 죽네, 하며 우는 소리를 내었더니 뻥까지마, 하다가도 많이 아파?하며 조심스레 물어온다.

아, 이  아이를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침대위에서 유치한 말다툼도 하다가, 눈이 맞으면 입도 맞추었다가, 뒹굴거리다 이제 일어나야겠다 싶어 둘다 일어났을때는 해가 벌써 중천인 12시를 넘어선 시간이었다.

 

"동해, 해가 중천이야."

"뭐래, 해 안떳거든?"

 

동해, 또또 한마디를 안지려고. 부엌에서 라면을 끌이는 동해의 허리를 감싸안고 목에 잘게 입을 맞추었다. 덥다고 떨어지라고 몸을 잘게 흔들다가도 귀에 바람을 불면 움찔하며 귀끝까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재미있었다.

 

"너, 죽어!"

"내새끼가 너무 예뻐서 못죽네요."

 

눈이 세모꼴이 되었다가도 금방 다시 풀어져 웃는다. 내가 그렇게 예뻐? 응, 우리 동해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얼만큼 예쁜데? 하늘만큼 땅만큼 바다만큼. 예쁜만큼 안아줘요. 뭘? 지금? 아니 그런 안아주는거 말고..! 그런게 뭔데? ..조용히 해! 우리 동해 무슨 생각을 한거야, 귀가 다 빨개졌어요 자기야.

사소하고 유치한 대화들, 너무 행복한 순간,

 

"라면 다 됐어."

"줘, 내가 할께."

 

둘다 배가 고팠기에 급하게 라면면을 입에 밀어넣다가도, 서로 눈이 마주치면 왠지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지금 이 시간에 링크를 걸어놓고싶다. 언제든지 이 시간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동해야, 내 사람아,

너를 너무 사랑하고 있다.

 

 

 

동해는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단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카페에 가면 동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는 초코라떼, 이것이 공식화되어버렸다. 그러고보니 우리의 첫 데이트가 생각났다. 그래도 나름 분위기있는 곳에 가겠다고 유명한 브런치 카페를 찾았었다. 친구라는 이름이 연인으로 바뀐 그날, 참으로 설레었는데. 서툴었던 너와 더 서툴었던 나. 어색하게 다른곳만 쳐다보며 음료만 홀짝이다 눈이 마주치고 어색하게 배시시 웃었던 너. 그 모습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했다.

 

"동해."

"응"

"우리 비오는데 카페나 갈까."

 

그래서 찾은 그때 그 브런치 카페. 물론 우리둘다 점심을 먹어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누가 뭐라할 것도 없이 동시에 거기 갈까?라고 물었고, 그대로 차를 몰아 카페로 왔다.

 

"혁재야, 너는 뭐 마실꺼야?"

"나는 초코라떼."

"그럼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셔야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하고, 초코라떼 하나, 허니브레드 하나 주세요. 아, 아이스 아메리카는 샷추가도 해주세요."

"너 허니브레드 먹게?"

"응, 달잖아."

 

너 단거 안좋아하잖아, 목끝까지 올라왔지만 그냥 삼켜내었다.

그러니까 그건 동해의 하나의 버릇이었다. 단것을 별로 안좋아해도 항상 단것을 사오는 것. 언제는 한번 이게 서울에서 제일 맛있는 마카롱 집이래, 하며 형형색색 마카롱을 한가득 사오더니 맛있겠지 라고 물으며 같이 먹자고 했었다. 뭐, 결국 한입만 먹고 나에게 넘기기는 하였지만.

우리가 친구였을때 부터 그랬다. 그와 가까워지기 전에는 나는 그가 무슨 설탕 중독이라도 걸릴 줄 알았다. 알사탕같은 싸구려 100원짜리 사탕부터 몇만원대를 넘나드는 비싼 수제 초콜릿까지. 일주일에 한번은 꼭 기절할만큼 단 빵이나 사탕, 초콜릿을 사 내 집으로 찾아왔었다. 물론 본인은 한입 먹고 안먹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왜 굳이 안먹을 것을 돈을 들여 사냐고 물으면,

 

"그게, 사기 전에는 내가 단거를 먹고싶다고 생각이 드는데, 막상 먹고나면 단게 싫어져. 근데 또 다음날이면 달콤한게 먹고 싶고."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게 뭐 큰일이라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발음을 웅얼거리는 그가 귀여워 그냥 내버려 두었다.

곧 주문한 음료가 나왔고, 웨이터가 당연하단듯이 내 앞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동해앞에는 아이스초코를 내려놓았다. 동해의 눈이 커지는 것이 보여 나혼자 쿡쿡 소리죽여 웃었다.

 

"뭐야, 이거!"

"너가 아가처럼 생겨서 그래. 어허, 아가는 커피마시면 키 안커요."

"뭐래, 아니거든!"

 

발끈하는 모습에 웃으면서 동해앞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놓아주었다. 얼굴은 아직 뽀얘가지구, 누가 너를 애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겠니?

 

"엑, 너무 달아."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여기 빵부분만 먹어봐. 생크림보다는 덜 다니까."

 

생크림만 쿡쿡 찌르다 한입 가득 퍼먹고는 이번에도 너무 달다고 난리다.

 

"너 그버릇 언제 고칠래."

"분명 아까는 단거 먹고 싶었는데."

"어휴 멍청아"

 

카페를 나오니 비가 아직도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작은 하늘색 우산은 둘이 들어가기에는 비좁았지만, 이미 우리는 누구보다 행복했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어 그렇게 대책없이 영화관에 왔다.

요즘 무슨 영화가 상영중인지도 몰랐고, 무슨 영화가 재미있는지도 몰랐다.

 

"혁재야, 영화 아무거나 예매하고 있어, 나 팝콘좀 사올께."

"동해, 아무거나 괜찮아?"

"무서운거 빼고."

 

아, 아쉽다.

 

"야, 맞다!"

"응?"

"너 커플석 하면 죽는다!"

 

저 멀리 팝콘파는 곳으로 뛰어가며 잘도 내게 외친다. 흥, 그렇게 되나봐라.

 

"요즘 상영하는 로맨스 영화로, 커플석 할께요."

 

그럴 줄 알았다. 커플석으로 가자마자 팔딱팔딱 뛰며 나를 죽이려한다.

 

"야 이 미친놈아! 내가 커플석 싫다고 그렇게,"

"쉿, 동해. 다 쳐다본다."

 

아, 내가 이 자식을, 투덜투덜 대며 자리에 풀썩 앉는 모습조차 귀여웠다.

 

"좋으면서 싫은척."

"지랄 똥."

"동해 예쁜말"

"아 씹새야 커플석 쪽팔린다고오"

"뭐 어때, 이렇게 손도 꼭 잡을 수 있고, 뽀뽀도 할 수 있고, 가끔 키스도,"

 

결국 뒤통수를 한대 후려맞았고, 영화가 시작했다.

 

 

 

영화는 좋았다, 다만

이동해가 이렇게 울줄이야.

아니 참 직원도, 로맨스라면 어? 그 뭐냐 조금 달달하고 지루한걸 줘야지 몰래 키스도 하고 그러지 이렇게 산파극을 줘버릴껀 또 뭐람.

우는 동해 달래랴, 또 달랜다고 짜증내는거 받아주랴, 참 아이러니했다.

영화관 밖을 나오니 주위는 어둑어둑 해져있었고 비가 얼추 그쳐있었다. 비가 그쳐서인지 집가는 길목에 아이스크림 장사가 나와있었다.

 

"그만 울고. 저기 아이스크림 먹을래?"

"그,그러던가, 그리고 나 안,울었거,든?"

 

결국 아이스크림 두개를 사서 나는 초코, 동해는 딸기, 각각 손에 들고 나머지 한손은 꼬옥 깍지끼고 밤길을 걸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 집 앞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동해의 작은 손이 참 따뜻했다.

 

"이동해"

"응?"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시선을 두었다.

가로등 때문인지, 딸기 아이스크림의 색소 때문인지 그의 입술이 유난히 붉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입을 맞추었다.

 

 

혀가 섞이고 섞였다. 동해의 입에서는 아직 딸기 아이스크림 맛이, 내 입에서는 초코 아이스크림맛이 났다. 깍지를 푸르고 동해의 허리를 감싸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동해도 내 목세 팔을 둘렀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이른 저녁, 비가 오고 난 뒤 간간히 풀벌레 소리가 울리는 공원에서의 키스는, 아이스크림이 손이 진득해질 정도로 다 흘러내리도록 이어졌고,

흘러내린 아이스크림의 배로 달콤했다.

 

 

 

"야, 너 때문에 아이스크림 버렸잖아."

"그래서 싫어?"

"아니, 좋아."

"나도 좋아."

옷을 갈아입는 동해의 실루엣을 눈으로 좇았다.

"아, 보지마!"

"왜."

"..녹아."

"뭐? 푸하하하핫"

 

자기가 말해놓고도 민망한지 얼굴이 시뻘개져서 화장실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그래, 내 시선이 좀 뜨겁기는 하지.

아, 큰일이다. 나 너에게 단단히 빠지기는 했나봐.

그래서 다행이다.

내 시야에 너밖에 없어서.

너를 이렇게 사랑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사랑해, 너를 세상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사랑해.

내사랑, 영원히.

 

 

 

+)

"동해, 다 씻었어?"

"응, 금방 나갈께."

"아냐, 나오지마."

"뭐?"

"내가 들어갈께"

"야 이 변태새끼야!"

"솔직히 오늘 많이 참았잖아!"

"들어오기만 해, 들어오면 너 죽여버릴꺼야!!"

 

그렇게 다음날은 정말 하루종일을 침대에서 보내야했던 동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