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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사랑한 적 없어] 잡은 손 놓지 않을게_은해나라






잡은 손 놓지않을게



w. 은해나라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질때, 혼자라고 느껴질때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봐. 넌 혼자가 아냐. 내가 항상 곁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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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사랑하는 그 아이는 참 밝고 씩씩하게 삶을 살아간다. 감수성이 풍부해 곧 잘 우는 아이지만 그만큼 잘 웃기도했다. 인간들의 삶을 궁금해본 적 없었는데, 이 아이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관심을 갖지 않으려 애썼다.






2019년 04월 03일 이동해 사망.


담당자: 이혁재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죽음의 담당자로 발탁되었다. 3개월 뒤, 내 손으로 너를 데리러가야한다. 고작 열일곱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안타까운 아이여, 남은 기간동안 즐거운 일만 가득하길.
















2. 


" 0404 사신 이혁재. 인간세상 땅을 밟는 것을 허가한다. "




쾅, 쾅, 쾅. 




" 저의 간절한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월 16일. 드디어, 너를 만나러 간다. 태어날 때 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불행만을 겪어 온 안타까운 아이여, 내 너를 가엽게 여겨 죽음의 문턱 전 까지 너를 지켜주리라.
















3. 인간세상에 내려와 제일 먼저 향한곳은 역시 너의 침소였다. 위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그 곳은 단정한 외모와 달리 어지럽혀져있었다. 하하, 생긴거랑은 정말 딴판이네.




내가 사랑하는 아이는 겉과 속이 달랐다. 그 점은 내 동료들까지도 관심있어했다. 곱디고운 심성과 달리 날이 선 눈빛과 말투는 확연히 다른 인간들과 대조되는 차이점이었다. 대게는 회피하거나 타인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 외에는 쉽게 악에 물드는 게 보통인데. 이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그런 너에게 관심을 품게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아이는 싸움을 못했다. 싫어하기도 했지만 말 싸움도, 그렇다고 주먹다짐도 잘 하지 못했다. 피할 법도 한데 결코 기죽지 않는 그 모습이 퍽 멋있었다. 
















4. 아이는 의심과 경계심이 강했다. 길가에 홀로 남겨진 아기고양이가 이리저리 치여 세상을 험하게 살다보면 낯선이의 손길을 경계하듯, 수 많은 불행을 겪어 온 아이는 경계심이 강했다. 때문에 너에게 모습을 드러낼 때 갖은 고민을 다 했었다. 본디 인간은 사신을 죽음에서만 볼 수 있지만 너는 달랐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었기에 쉽게 날 볼 수 있었고, 나를 본 네가 제일 먼저 한 말은,




" 부모님은 잘 계시나요? "




였다. 갓난아기의 죽음만 관리해 아무것도 몰랐다. 부모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너에게 남긴말은 없었는지. 거짓말을 하면 안되지만 간절한 너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5.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늘 물었다. 저는 언제 죽나요? 지그시 너의 눈을 바라보는 게 나의 대답이었다. 궁금 할 법도 한데, 더이상 묻지않고 그저 시선을 마주한다. 눈을 세 번 깜빡이고,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떨구는데, 그 모습이 퍽 슬퍼보여 마음을 일렁였다. 




" 죽음이 두려워? "


" 아뇨. 하고싶은 것들이 많은데, 다 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요. "




다들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너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삶에 미련이 없으면 이해라도할텐데, 하고싶은 게 많다 말하는 아이를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6. 시간이 지날 수록 아이가 나를 찾는 횟수가 잦아졌다. 아이를 지켜주겠다고, 남은 시간까지 행복을 만들어주겠다 다짐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지금처럼 네가 나를 부르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주며 장단을 맞춰주는 게 다였다.




" 그러고보니 이름을 모르네. 이름 물어봐도 되요? "




초롱초롱한 눈빛에 제멋대로 입이 열렸다. 법도에 어긋난 행동을 극도로 싫어하던 내가, 벌써 두번이나 그릇된 행동을 저질렀다.












7. 한 날은 아이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있길래 왜 그렇게 보냐 물었더니,




" 혁재님은 참으로 아름다우시네요. 사람의 모습이었다면 분명 제가 반했을거에요. "




덤덤하게 말을 늘어놓던 아이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다 이내 고개를 돌린다. 내가 사람이었다면 부드러운 은색 빛의 머릿결을 가졌을 것 같다는 너의 말에 인간으로 살게된다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봤다. 분명 나 또한 지금처럼 네게 반했을거다.












8. 일주일. 사망일까지 일주일이 남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나를 부르는 널 보고있자니 코 밑이 시큰해진다. 




" 설마, 울어요? 기뻐서? "




차가운 손을 잡으며 제 손이 따뜻하니까 우린 분명 잘 맞을거라 말하는 너의 말에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너의 이런 모습을 볼 날이 얼마남지 않아 속상했던걸까.




" 우는거아냐. 먼지가 들어가서.. "


"사신도 우는구나.. 감정없는 줄 알았는데 "




어느새 내가 편해졌는지 농담도 던지며 내게 엉겨붙었다. 덕분에 행복했다고,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만큼 좋은 기억을 남겼다고 귓가에 속삭였다.










9. 나는 아이의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막아보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고는 일어났고, 따뜻했던 온기가 천천히 식어갔다. 




" 생각보다 별거아니네요.. "


" 살고싶지 않니 "


" 뭐, 아쉽긴 하지만 괜찮아요. 이렇게 손 잡고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여기도 나쁘지는 않을 거 같으니까 "




깍지 낀 손을 들어올려 방긋 웃어보이는 아이에게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너를 죽음으로 인도하고 그 후엔 널 보내야했으니까. 여느때처럼 지그시 너의 눈을 바라보았다. 또 다시 고개를 떨구던 네가 이번에는 잡은 손을 더욱 세게 잡으며 입을 떼었다.




" 무슨일이 있어도 절대 놓지마요 "


" ..그래 "












10. 금기사항을 세 번이나 어겼다. 네게 피해가 갈 줄 알았더라면 절대로 입을 열지 않았을텐데..




" 이동해. 소멸! "




불쌍한 아이는 나로인해 환생 할 기회조차 사라졌다. 언제나 씩씩하고 당차게 살던 네가 두려움에 떨고있는 모습을 보였다. 




쾅,




나 또한 너를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쾅,




너의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너를 위한길이 그것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야. 다음 생에서는 반드시 행복하길 바란다.












11. 기억을 유지한 채로 인간이 되었다. 아이가 말하던 은색 빛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가진 소년이었다. 벌이 맞는걸까 싶었는데, 내 앞에 서 있는 널 보는 순간 알았다. 너를 사랑하지만 사랑 할 수 없을거란 걸.




" 저기요 "




목소리만 듣고 알 수 있었다. 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 첫 눈에 반했어요 "




네가 말하던대로 내게 반하는 널 보고있으니 절로 웃음이 그려졌다. 그리고 곧바로 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너의 행복을 바라던 내가 너를 불행으로 이끌고 가야한다는 것을.












12.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랐다. 때문에 내가 너를 사랑한 것을 후회한다. 내 사랑을 바라는 너는 매일 밤 울부짖었고, 사랑을 말하지 못하는 나는 매일 밤 용서를 빌었다. 




" 여전히 인간을 사랑하는가 "




그 물음에 함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 사랑한 적 없습니다 "




거짓말이란 걸 알았을테지만 그들은 나를 용서했다. 




안타까운 아이야, 내 잘못으로인해 너를 또 다시 불행에 빠트려 미안했다. 부디 날 잊고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