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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폴라로이드] 우리_허니듀

우리

W.허니듀

W. 허니듀

 

 

 

우리 사이를 정의하자면 친구. 그것도 제일 친한 친구.

동해와 나는 고등학교에서 만나 지금까지도 가장 절친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동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꽤나 잘 맞는 친구였다. 취미가 같았고 취향도 비슷했다. 딱 하나, 이성 취향은 겹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동해가 연애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상형이 뭐냐는 내 질문에도 관심 없다며 말을 돌렸다. 그냥 내가 여자친구들과 헤어져 슬퍼할 때마다 '그냥 나랑 살래?'라는 장난 섞인 말만 할 뿐이었다. 너와 있으면 마음이 편했고 즐거웠다.

우리는 그렇게 10, 20대를 지나 어느덧 30대에 도달할 때까지도 사이를 유지했다. 주위 사람들이 우리의 긴 우정을 보며 징하다고 할 정도였으니. 우리의 모든 순간에는 서로가 있었다는 것이 과언이 아니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던 어느 날 동해가 나를 불러냈다. 카페에 마주 앉아 오랫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길어지는 침묵이 어색해 네 번째 손가락에 끼어 있는 반지를 매만졌다. 동해의 시선이 내 손에 고정된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혁재야,, 나 결혼해."

 

 

말을 마치고 고개를 푹 떨군 동해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듯했다. 한참을 바닥을 보던 동해가 고개를 들었다. 눈 속에 가득 차다 못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무언가를 말하는 듯했다. 너의 표정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묘한 표정이 어려웠다. 당장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줄 뻔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축하해, 행복해야 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내 대답에 다시 고개를 묻고 엉엉 울었다. ? 결혼은 축복받고 행복해야 하는 일 아닌가? 여전히 울기만 하는 동해를 바라보다 카페를 나섰다. 여전히 마음이 울렁거렸다. 연애 한번 해보지 않은듯한 친구 놈이 먼저 결혼한다는 게 부러워서일까? 난 왜 우는 동해에게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을까?

그날 이후로 너에게는 연락이 오질 않았다. 내가 먼저 선뜻 연락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마도 서럽게 우는 너를 혼자 두고 온 죄책감 때문이겠지? 너를 생각하면 또 마음이 울렁였다. 매일 만나던 너 없이 지내는 나날들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여자친구와 있을 때 가끔 멍을 때린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네 생각이 그렇게 많이 나진 않는 것 같다.

 

 

"오빠 그냥 우리 같이 살까?"

"...?"

"또 멍때려."

 

 

새침한 표정을 짓는 여자친구를 향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같이 살래?' 동해가 맨날 했던 소리였다. 그녀가 동거를 먼저 제안했고 나는 동의했다. 오래 만난 사이였으니 당연한걸 수도. 지금 여자친구와 사귀는 동안에는 여러 번의 이별이 있었다. 그녀 때문에 힘들어 할 때마다 옆에서 동해가 위로해줬었는데,, 윽 또 울렁이네.

약속이 있어 먼저 간다는 그녀를 보내고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소파에 쓰러지듯 앉아 집을 둘러보았다. 오래 살아온 집이라 이런저런 흔적들이 많아 괜히 아쉬웠다.

천장에 있는 얼룩들은 요리를 한다고 까불던 동해의 흔적, 유기견이 불쌍하다며 데려왔던 동해 덕에 뜯긴 벽지, 또 바닥에 자국은 동해가,,,,

울렁이는 마음에 고개를 세게 저으며 생각을 그만두었다. 왜 자꾸 동해 생각이 떠오르는지,, 한참을 또 멍하니 서 있었다. 아무래도 생각을 비우려면 청소라도 해야겠다. 거실 한쪽에 가득 쌓인 책들부터 정리하자. 평소에 내가 책을 읽지 않는다며 동해가 선물하거나, 본인이 읽겠다고 가져다 놓은 책들이었다. 주인 잃은 책들은 먼지가 꽤나 쌓여있었다. 맨 위에 책을 들자 먼지들이 날렸다. 그 덕에 눈물이 날 정도로 기침을 했다. 기침이 잦아들고 책을 바라보았다.

[로미오와 줄리엣]

주인이 뻔한 책이었다. 또 깊은 생각에 빠질 것 같아 책을 옆으로 치우려는 데 바닥으로 뭔가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바닥에는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이 뒤집힌 채로 떨어져 있었다. 천천히 손을 뻗어 사진을 집어 뒤집었다. 사진 속에는 우리, 나와 동해가 서 있었다. 언젠가 찍기 싫다며 피하는 나를 데리고 찍었던 사진. 그리고 삐뚤한 글씨체로 적혀있는 '사랑해' 세 글자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동해가 보고 싶었다. 들고 있던 것을 바닥에 떨구고 무작정 동해의 집을 향해 뛰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고작 저 세글자를 말하지 못해 여기까지 온 것일까. 아니, 내가 어리석었다. 사실 동해가 나를 좋아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동해가 편하다는 이유로 그의 마음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관심을 바라는 마지막 발악까지 내가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내가 나쁜 놈이었다. 동해의 집 문 앞에 서서 거친 숨을 내쉬었다. 내가 지금 이 문을 두들겨도 될까 라는 짧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손은 이미 문을 세게 두들기고 있었다

 

 

"누구세요?"

 

 

집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눈에서 눈물이 한 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 번 더 문을 두들기자 도어락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며칠 새에 수척해진 동해가 나왔다.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고 놀란듯한 동해가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무슨 일이야? 왜 울고 있어."

"야 내가 나쁜 놈인데, 왜 너가 이러고 있어."

"혁재야 무슨 소리야. 네가 왜 나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동해를 품으로 당겨 끌어안았다. 품 안에서 느껴지는 마른 몸에 또 눈물이 울컥했다. 네 맘 모르는 척 곁에 두고서 널 아프게 한 건 나인데, 왜 너가 힘들어하고 있었어 멍충아.

 

 

"미안해."

",,,갑자기 뭐가?"

". 알면서도 모른척했던 거, 나도 너 좋아하면서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던 거, ."

"그만."

 

 

내 품에 안겨있던 동해가 슬쩍 떨어지며 내 얼굴을 양손으로 잡아 시선을 마주했다. 눈물이 차올라 붉어진 눈이 보였다. 동해가 내 얼굴을 당겨 가볍게 입 맞추었다

 

사랑해, 이혁재.

나도.

 

서로의 눈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동해를 품에 끌어안았다. 익숙한 동해의 향기가 코끝을 메우고 울렁이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우리가 매일 머릿속에서 갈망하던 순간일 것이다.

늦어서 미안해. 늦은 만큼 오랫동안 사랑해줄게.

 

 


 

+) 번외

동해의 결혼 소식은 거짓말이었다. 내 예상대로 동해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 말을 동해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가슴이 더 아파왔다. 동해는 괜찮다며 미소지었다. 동해를 만나고 보았던 미소 중에 가장 환한 미소였다.

나도 동해에 대한 마음을 확신하고 원래 만나던 여자친구와는 헤어졌다. 미안해하는 나를 보며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했다는 말을 해왔다. 생각보다 쿨하게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녀와 헤어지고 조금의 죄책감에 동해가 아닌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집에는 동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열려있던데?"

 

 

동해는 식탁에 앉아 뻔뻔한 표정으로 딸기를 집어먹고 있었다. 어떤 바보가 문을 열어놓고 다녀 멍충아. 어이가 없어 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탁자에 앉자 건너편에 앉은 동해가 딸기 하나를 집은 포크를 건네주었다.

, 너 좋아하는 딸기.

생각해보면 매일 이별에 슬퍼하던 나를 위해 매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 오던 너였다. 그 상황에 나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너가 아니었을까? 동해가 들고 있는 딸기를 한참 쳐다보다 포크를 집었다.

 

 

"나는 딸기보다 동해가 더 좋은데?"

"미쳤어? 무슨 소리를, 갑자기, 왜 그래?"

 

 

훅 들어온 장난에 얼굴이 빨개져 버벅이는 동해가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 많이 먹어. 하며 소파로 자리를 옮긴 동해가 그곳에 있던 책을 펼쳤고 폴라로이드 사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동해 옆으로 다가가 사진을 집어 들고는 소파에 자리를 했다.

 

 

"너 왜 자꾸 책 사이에 우리 사진 끼워놓냐."

"책갈피로 쓰느라."

"소중히 보관하지는 못할망정 맨날 떨구기나 하고."

"여기 있어야 맨날 볼 수 있으니까. 한 장뿐이라 소중해서 여기에 두는 거야."

 

 

부끄러운지 말끝을 흐리는 동해의 얼굴을 당겨 볼에 쪽 소리를 내며 뽀뽀를 해주었다. 떨어지라며 밀어내는 동해를 더 세게 품에 가두었다.

우리 앞으로는 소중한 추억들 많이 남겨놓자. 온 세상을 가득 메울 만큼 서로를 찍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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