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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이불] 4월쯤이면_블루





4. 창문을 열고 밖으로 팔을 뻗는다. 기분좋은 봄바람이 동해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밀려든다.

 

, 이불 빨래하기 딱 좋은 날씨인데.

 

 

 

 

 

W. 블루

 

 

 

 

 

넌 꼭 이불 빨 때 쯤만 되면 귀신같이 알고 찾아오더라.

 

 

 

 

 

필요할 땐 정작 쳐 오지도 않으면서. 새끼. 동해가 눈을 흘기자 방금 전 까지 현관문 바깥에 서 있던 혁재가 머쓱잖다는 듯 웃는다. 내가 좀 바쁜 몸이어야지. 나 그래도 빈 손으로는 안 왔다? 오는 길에 마트를 들렸다 오기라도 했는지 으쓱하는 어깨를 따라 양 손에 가득 들린 봉지가 부스럭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좀 봐줘, 나 네가 좋아하는 딸기도 사왔다? 이거 봐, 아보카도도 있고... 현관에 주저앉아 도X에몽 만능 주머니 마냥 하나 둘 장봐온 것들을 꺼내는데 아주 시장 하나를 차릴 기세에 동해가 다급하게 혁재를 말린다. , 됐어 됐어. 나중에 저녁 먹을 때 풀어 짐은. 휙 낚아채듯 제 손에 들려있던 봉투를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동해를 따라 혁재도 종종걸음으로 따라 현관으로 들어간다. 동해는 -인정하기는 싫지만- 저보다 조금 더 키가 큰 이혁재가 이렇게 뒤를 따라 걸을때면 꼭 골든리트리버같다고 생각했다. , 진짜 오랜만이다. 한숨을 폭 내쉰 동해가 냉장고에서 막 꺼낸 딸기우유를 혁재에게 건넸다.

 

 

 

. 땡큐.

 

넌 말야, 이럴 때 말고 좀. ? 가끔씩 시간날때 좀 찾아오고 그래. 사람이 어?

 

섭섭하게... 난 그래도 연락잘했었다? 나름.

 

나름은 무슨, 잘났다. 이 새끼야.

 

 

 

2년전인가 몇 년이야. 정 없는 새끼. 손바닥을 쫙 뻗어 넓은 등짝을 내리치자 짝 소리와 함께 으악! 하는 비명소리가 터져나온다. ! 니 손 맵다니까 진짜...! 맞은데를 부여잡고 구르지는 못하고 울상을 짓는데 그 꼴이 우스워 으하항 웃자 이쪽을 보며 슬 미간을 찌푸리는데 그게 또 묘하게 웃겨 웃음을 터뜨린다. , 인상쓰니까 개 못생겼다. 여기서 더 못생겨지면 어떻게 할래. 데려갈 사람도 없을까봐. 두 손을 뻗어 양 뺨을 감싸쥐자 혁재가 눈을 꿈뻑, 감았다 뜬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우물우물 거리는데, 마침 마당에 틀어놨던 호스가 동해의 머릿속으로 떠오른다. 맞다, 내 수도세.

 

 

 

어서 나오기나 해. 마당에 다 꺼내놨어.

 

 

 

니 쓰던 이불도 같이 꺼내놨고. 저거 오래틀어놓으면 또 물 샌다고 아랫집 아줌마가 진짜 화낸다? 포로로 뛰어 나가는 동해의 뒤로 멀뚱멀뚱 바라보던 혁재가 뒤늦게 마당으로 나오자 옥상-동해가 옥탑방에 세를 들어 살고 있었던건 이미 2년이 넘은 이야기였다- 동해가 저 옥상 구석에 처박아놨던 고무대야 - 사람하나 정도는 들어갈 그 크기-를 끌어당기는 모습이 보인다. 그 큰 크기의 고무대야에 매달려 끙끙대는 것이 이동해 성격에 아마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대충 이불이고 뭐고 죄다 때려박아놨을게 눈에 선했다. ...그때고 지금이고 아주 변한게 없어, 변한게... 혁재의 귓가로 바람이 스친다. 여전히 진전이 없어보이는 탓에 보다 못한 혁재가 성큼성큼 걸어가 대야를 잡아끌자 그제야 고무대야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누가 도와주러 안 오면 어쩌려고.. 너 있잖아. 너가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해. 당연하다는 듯 뱉는 동해의 말에 가만히 바라보던 혁재가 말없이 웃는다.

 

떠들썩하기도 잠시 꺼내놓은 고무대야에 이불을 담고 천천히 물을 받기 시작하자 요란하던 시작과는 달리 말이 없어진 둘 사이로 봄 바람만이 불어온다.

 

 

 

 

 

이러다가 얼굴 잊어버리겠다.

 

먼저 침묵을 깬 건 동해였다. ...넌 나 안보고 싶었어? 여전히 발끝에 시선이 꽂힌 채 동해가 입을 연다.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슬쩎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은 예상한 것처럼 동그란 뒤통수다. ...여전하네 여기는. 그 말만 몇 번째인지 알아, 지금? 혁재는 머쓱잖다는 듯이 입꼬리를 당겨 웃는다. 혁재는 꼭 대답을 하기 싫을때나, 애매할 때면 저렇게 웃어넘기곤 했는데, 그러면 동해도 자연스레 포기하고 넘어가준다는걸 알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나를 잘 알아서. 너무 잘 알아서....

 

 

 

해지기 전에 우리 끝내야 해. 해 지면 춥단 말이야.

 

 

 

호스를 붙들고 있는 혁재의 옆으로 바람이 스친다. 쌀쌀한 봄바람에 회갈빛이 도는 머리칼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이 옥상-동해에겐 마당-도 처음 동해를 따라 이 옥탑방에 왔을때와 다름 없이 변한게 하나도 없었다. 야 뷰 대박이지? 아직 학생이라고 그러니까 또 세도 좀 깎아주신거 있지? 완전 대박.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목포에서 올라왔다던 동해는 3년이 지나고서야 반지하 자취방을 탈출했다며 혁재를 옥탑방으로 초대했다. 이제 여기서 어? 고기도 구워먹고, 막 잠 안오는 날에는 밖에 텐트치고 별도 볼 수 있고. 그래. 별도 볼 수 있고... 해가 진 옥상 난간에 매달려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동해의 뒤로 하나 둘 주택가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신기하게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동해만이 눈에 들어오는데. 있지, 혁재야. 우리.... 동해의 머리칼이 여름 밤을 배경으로 바람결에 흩어진다.

 

 

 

우리 같이 살 땐, 이렇게 맨날 나와서 빨래하고 그랬는데. 기억나긴 하냐?

 

 

 

너 피부 약해서 이불도 아무거나 못 덮고 그랬잖아. 들어가 앉으면 제 몸 하나 정도는 잠기고도 넘을 고무대야를 들여다보며 동해가 말했다. 왜 기억이 안나. 안 나긴... 혁재를 흘깃 바라보던 동해가 발을 들인다. 종아리까지 오는 물 높이. 아직 춥긴 추운지 발을 담그자마자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차가움에 몸서리치자 뭐가 그리 웃긴지 혁재가 깔깔 웃는다. 아쭈, 지금 웃음이 나오지? 대야에 담긴 물을 발로 뻥 차자 물대포를 얼굴에 직격타로 맞은 혁재가 진저리를 친다. 아 씨발! 죽었어. . 질 수 없다는 듯이 망설이지도 않고 수돗물이 콸콸 쏟아져나오는 호스를 제 쪽으로 튼다. 앗 차가, !!!! 이리안와?! 소리지르는 동해의 목소리에 혁재가 낄낄 웃는다. 아마 해 지기 전에 빨래를 끝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으나 본인들은 관심도 없는 듯 했다.

 

 

 

이불을 밟기 시작하자 이불의 묵은 땟물들이 발가락들 사이로 왈칵 왈칵 쏟아져나온다. 시꺼먼 얼룩들이 퐁퐁 검은 물을 내뱉는데 그 모습이 꼭 원망같기도 하고 어쩌면 후회 같기도 한것이 괜스레 서러움이 밀려오는 듯해 동해는 입을 닫는다.

 

 

 

? 이동해 우냐?

 

안 울거든.

 

왜 우는데, 막 울고 웃고 그러면 뿔난다? 엉덩이에?

 

지랄. 헛소리 할거면 대신 밟기나 해.

 

 

 

언제 입이라도 열었냐는 듯 이혁재는 어디가고 합죽이만 남자 동해가 낄낄 웃는다.

 

 

 

너 이제 엉덩이에 뿔나겠다. 닥쳐.

 

 

 

 

 

 

 

 

 

동해가 그렇게 해가 지기전에 끝내야한다 끝내야한다 노래를 부르던 빨래 대소동은 결국 해가지고나서야 막을 내렸다. 그러게 내가 정신차리라니까... 동해의 핀잔에 혁재는머쓱잖게 웃을 뿐이다. 지난 밤에도 올라가서 빨래를 널어놓던 빨랫줄에 뽀얀 이불을 하나둘 널어놓는다. 물을 먹은 솜이란 평소보다 몇배는 무거워지는 법이라 이불들도 둘이 맞붙어 몇 분을 낑낑대고서야 끝이 났다. 빨래를 다 널고는 잔뜩 진이 빠져서는 평상 위에 누워있는데 새하얀 이불 위로 떨어지는 햇빛에 눈이 부셔 눈을 가리자 그걸 지켜보던 혁재가 웃음을 터뜨린다. 이동해 이제 잘 하네. 이제 안 도와주러와도 되겠다. 그치?

 

 

 

돌아누운 혁재가 동해의 머리칼을 쓸어내린다. 몸을 일으킨 동해가 혁재를 말 없이 내려다본다.

 

한참을 말이 없던 동해가 입을 연다.

 

 

 

나 하나도 못해. 너 없으면 이불 빨 생각도 못하고.

 

 

 

멀뚱 멀뚱 바라보던 혁재가 동해를 올려다본다.

 

오늘도 봐, 니 이불 보고나서야 기억났다고. 저기 장롱 한구석에 처박아놨던거. , 이불 빨아야하는데. 안 그러면 혁재 두드러기 나는데. 하고.

 

 

 

혁재는 여전히 말이 없다. 그저 숨 죽여 동해를 바라볼 뿐이다.

 

벌써 2년전이야. 아직도 못 잊어...

 

그 날 사고도, 내가 너 잡았으면 네가 그렇게 가는일도 없었을텐데.. 나는, 나는 너 버스타고 잘 내려가고 있나 전화해볼까 생각도 하다 말았는데.. 너 오랜만에 집 내려간다고.. 가족들 보러간다고 짐싸서 내려가는거. 그럴줄 알았으면 저녁이라도 먹으라고 잡았으면. 괜히 내가, 내가 널 못잡아서...

 

 

 

불현듯 어떤 온기가 동해의 몸을 감싸안는다.

 

너 때문이 아닌거 알잖아.

 

 

 

네 잘못 아니야. 그냥....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야. 따뜻하고, 큰 손이 동해의 등을 토닥인다. 울컥, 무언가 터져 나올것만 같아서, 동해는 숨을 참는다. 한참을 어루만지던 손이. 온기가. 천천히 동해에게서 떨어진다. 두 눈이 허공에서 맞닿는다. 곧 떠나야 할 시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안 가면 안돼?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혁재가 동해를 바라본다.

 

 

 

저녁이라도 먹고 가. 이번엔.

 

그러면 혁재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을 뿐이다. 그리고 뒤돌아 계단을 내려간다. 곧이어 계단아래로 곧 지워질듯 희미한 인영이 완전히 사라진다. 동해는 그제야 혁재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 뒷모습이 시야에서 아주 사라지고 나서도 동해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아무래도 한동안 이불 빨래는 못 할 것 같았다.

 

 

 

 

 

+

 

안녕하세요,,월간 정시 맞춰본다고 존나달렸다가 여기까지왔네요 ㅎㅎ,, 시간많이 남았다고 여유부리는게 아니었는데 이번 월간도 아니나 다를까 인간은 어쩌고저쩌고 같은실수를 반복하게 되어있다는걸 다시금 깨닫고가네요 사실 지금 저두 쓰면서 두서가 없고 어이없는데 이번 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좀더 심도 있고 완성도 있는 작업물로 만나뵈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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