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보육원의 아이들은 단체로 놀이터에 나와 삼삼오오 모여 신나게 놀고있다.
언제나 그렇듯 술래잡기를 하며 놀던 혁재와 동해이다. 놀이터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도망가던 혁재가 멈칫하자 그를 따라 쫓아오던 동해가 혁재 등에 코를 꽁 박고는 아픈지 코를 문지르며 혁재를 쳐다보았다.
"아으..뭐야!..왜 멈춰 이혁재?"
멍하게 화단을 쳐다보던 혁재가 곧이어 눈 앞에 있던 꽃 두 송이를 꺾어 하나를 동해의 귀에 걸어주곤 예쁘다-하며 해맑게 웃어보였다.
"우와- 이거 꽃 진짜 이쁘다!"
혁재의 손에 들린 꽃과 유리창에 비춰지는 자신의 귀에 있는 꽃을 번갈아보며 헤실헤실 웃는 동해를 보며 혁재가 손에 들린 꽃을 동해의 눈 앞에 들이대며 말했다.
"그치? 이 꽃 이쁘지?"
"웅!!"
"이 꽃 너 닮아써"
진짜-? 혁재의 말의 속뜻은 제대로 이해 못했지만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하는 혁재에 동해가 괜히 얼굴을 붉히며 말을 했다.
"혁재야! 우리 이거 여기 묻자!"
"어? 왜?"
"나중에 어른되면 다시 여기와서 보는거야! 어때?"
동해의 말에 알았다며 손에 쥐고있던 꽃을 들곤 어디론가 가버리는 혁재에 어디가냐며 소리친 동해와 기다려봐!!!하곤 건물 속으로 쏙 들어간 혁재이다.
"모야..이혁재 언제나와아..."
화단 앞에 쭈그려앉아 애꿎은 나무가지만 툭툭 치고 있는데 금세 나타난 혁재가 동해의 동그란 뒤통수를 톡톡 치자 고개를 든 동해의 눈에는 작은 종이상자가 보였다.
"뭐야?"
"그냥 묻으면, 꽃이 꺾이니까.."
혁재의 말에 그렇네!- 라며 동해 역시 무언가를 가져오려는 듯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동해가 없는 동안 상자를 열어 조심스레 꽃을 넣은 혁재가 아까 꽃을 제 귀엔 건 동해를 생각하며 헤실헤실 웃고있는데 저 멀리서 이혁재!!하는 동해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면 매직 하나를 손에 꼭 쥐고는 오도도 뛰어오는 동해이다.
헉헉- 자, 동해가 숨을 몰아쉬며 혁재에게 매직을 건네자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는 혁재에 아이, 증말..! 답답한지 혁재 손에 들려있던 상자를 뺏어들어 그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둘의 이름을 적는 동해에 혁재가 모해?라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우리꺼라는 표시! 나중에 못 알아보면 안되자나..."
오오- 감탄사를 내뱉으며 동해의 말에 맞장구 친 혁재가 상자를 받아들곤 화단의 흙을 파 묻어두곤 다시 흙을 덮었으려하자 잠깐만! 하며 제지한 동해가 어디서 들어온건지 이런 건 소원 빌어야한다며 작은 두 손 꼭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뭐야, 유치해"
"뭐래..너도 빨리 소원빌어!"
투덜대면서도 동해 따라 소원 비는 혁재에 옆에서 무슨 소원 빌었냐며 동해가 묻자 혁재가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그만 이쁘게 해달라고!"
"뭐래애..장난치지말고오!!"
빨개진 동해 얼굴 보며 킥킥댄 혁재가 패딩 모자를 덮어씌어주며 이번엔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너랑 어른되면 결혼하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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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동해!"
왁자지껄한 하교시간, 먼저 종례가 끝난 혁재가 동해의 반을 찾아와 야자 준비를 하고있는 동해를 큰 소리로 불렀다. 그 덕에 반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동해가 뻘쭘해하며 곧장 뒷문으로 반을 빠져나와 혁재를 노려봤다.
내가 그렇지말랬지!! 동해의 투덜거림에 큭큭 웃은 혁재가 동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 앞에 기숙사 외출증 두 장을 흔들어 보였다.
"동해, 오늘 야자 째면 안돼?"
안그래도 매일 야자를 하는 동해와 다르게 예체능 특기생인 혁재는 정규수업만 듣고 곧장 기숙사로 갔었는데 웬일인지 본인의 반을 찾아온게 의아했는데 야자를 째라는 혁재의 말에 동해가 이유를 물었다.
"왜??"
"가고싶은데가 있어서"
음... 동해는 잠시 고민하는가싶더니 이내 알았다며 가방을 가지러 교실로 들어갔다. 금세 가방을 챙겨온 동해가 얼른 가자며 폰을 보고있던 혁재를 툭툭 치자 응, 가자-라며 동해의 손을 꽉 잡고 발길을 옮겼다. 교문을 빠져나가는 그 둘의 뒷모습은 영락없이 풋풋한 커플의 모습이었다.
대체 어디가는데? 계속 되는 동해의 질문세례에도 끝까지 비밀이라며 입을 다문 혁재가 이내 도착한 버스 정류장의 노선표와 시계를 번갈아 보더니 애매하네... 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뭐가 애매한데?? 왜 안알려주는데에.."
"허 참, 비밀이야 동해, 서프라이즈 몰라?"
"서프라이즈 좋아하시네-"
으, 추워... 동해가 더 이상의 질문은 포기한 듯 패딩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몸을 잔뜩 웅크리며 정류장 벤치에 앉아 애꿎은 땅만 툭툭 치고있자 앞에 서있던 혁재가 동해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며 말을 했다.
"너도 분명 좋아할걸? 기대해도 좋아"
"치이..그렇게 말하면 내가 화도 못 내잖아.."
입을 삐쭉거리며 말하는 동해가 귀여워 푸스스 웃은 혁재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버스를 발견하곤 동해를 일으켰다.
버스온다- 둘 앞에 멈춰선 버스를 올려다본 동해가 눈에 들어온 익숙한 번호에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생각이 난 듯 혁재의 옆자리에 앉으며 속삭였다.
"우리 보육원 가는 버스아냐...?"
응, 오랜만에 가보고싶더라ㅎㅎ 동해의 말에 싱긋 웃으며 대답한 혁재가 뿌연 창밖을 바라보면 흐리게 보이는 익숙한 듯 살짝은 낯선 풍경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다가도 반대쪽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저와 같이 창밖을 뚫어져라 보는 동해가 눈에 들어왔다.
"왜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
"뭐래애..너야말로 그 울적한 표정이나 펴지?"
말은 저렇게해도 서로 나름의 추억에 젖어있다는 것을 잘 아는 둘은 더 이상 말을 하진않았다.
꽤나 먼 거리를 달려 도착한 둘은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온 동네는 그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보육원은 문을 닫은지 오래이고 그 주변에 있던 상가들도 하나 둘 씩 문을 닫았는지 길가는 조용했고 이따금씩 보이는 어르신들 뿐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보존되어있는 보육원의 터와 건물에 먼저 들어선 동해는 그네에 털썩 앉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깜깜한 하늘과 그 아래로 보이는 소복히 쌓인 눈과 풍경에 마음이 괜스레 꽁해져 기분이 묘해지는 동해가 제 뒤 화단에서 사부작대고 있는 혁재를 불렀다.
"뭐해? 손 안시려?"
"동해, 이거 기억나?"
고개를 돌려 혁재를 쳐다본 동해의 눈에 들어온건 혁재의 손에 들려있는 작은 상자 하나였다. 금방 기억이 떠올랐는지 울상을 짓는 동해에 낮게 웃은 혁재가 왜 울려고 해- 하며 농담 섞인 말을 던지자 안운다며 생글생글 웃는 혁재를 한껏 노려보는 동해였다.
알았어- 손에 쥐고 있던 상자를 살포시 열자 보이는 다 시들어 말라비틀어진 꽃 한송이였다. 동시에 웃음이 터진 혁재와 동해는 한참을 웃더니 혁재가 먼저 말을 했다.
"아, 진짜 우리 이때 순수했다, 그치?"
"그러니까, 이땐 이렇게 꽃이 시든다는 것도 몰랐을거야. 몰랐으니까 이렇ㄱ"
푸흡- 말하다가도 웃음이 또 터진 동해가 그네에서 휘청휘청 거리자 대충 그네에서 떨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준 혁재가 여전히 잘 관리되어 있는 화단에서 상자 속 그때와 같은 꽃 한 송이를 꺾어 동해의 귀에 걸어줬다. 아으..차가워,
"여전히 이쁘다, 동해"
"뭐래애...내가 그때처럼 좋아할 줄 알아?"
그러면서 얼굴은 왜 붉혀? 말과는 다르게 부끄러웠는지 점점 붉어지는 동해 얼굴을 뚫어지게 보는 혁재였다. 아,보지마라... 혁재 반대편으로 고개를 휙 돌린 동해가 괜히 그네만 설렁설렁 움직여보았지만 혁재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손 줘봐"
"내 손? 손은 왜?"
고개를 갸우뚱하며 왼손을 내밀자 혁재가 언제 만들었는지 상자 속에 있던 그 꽃의 줄기를 엮어 만든 꽃반지를 동해의 약지에 끼워주곤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그때 소원도 빌었는데, 기억나?"
"어...가물가물한데..."
"동해, 우리 어른되면 결혼하자"
그때처럼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한 혁재에 기억이 났는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처럼...장난이지...?"
"난 그때도 지금도 진심이야"
..어? 혁재의 말에 아까부터 기분이 울적했던 동해가 감정이 북받쳐 올라 떨리는 눈으로 혁재를 쳐다보지만 긴장한 혁재는 동해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동해의 손을쓰다듬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은 보잘 것 없는 평범한 학생이지만..너 책임질 수 있는 어른 될 자신도 있고, 평생 너만 사랑할 자신도 있어. 그러니까..
"누가 보잘 것 없대?!..누가..."
혁재가 진심임을 느낀 동해가 소리치자 놀랜 혁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해를 쳐다보자 눈물을 흘리며 혁재를 올려다보고있는 동해였다.
야야, 왜 울어.. 당황한 혁재가 우왕좌왕하다가 제 손으로 동해의 눈물을 닦아주며 묻자 동해는 대답도 않고 혁재를 꼭 끌어안고 어깨에 제 고개를 묻곤 웅얼댔다.
"나는..끅,너가 장난치는 줄 알고...흡, 나만, 나만 진심인 줄 알고.."
동해의 말에 등을 토닥여준 혁재가 아니라며, 사실 거절 당하는걸까, 너무 가벼워보일까 걱정했다고 말하자 동해가 무슨 소리냐며 혁재의 품 속으로 더 파고 들었다.
"혁재야.."
"응, 동해"
"우리 여기서 처음 만났잖아. 그것두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치?"
"그러게..그때도 동해는 참 귀여웠는데"
"치이, 지도 어렸으면서...우리 10년 동안 보육원부터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하고 지금은 기숙사에서 같이 살잖아..."
"그치, 겨우 부탁해서 같은 방에서 살잖아"
"맞아, 그것도 너가 말 잘해줘서 그런거지 나 혼자였으면 못했을걸.."
"나도 마찬가지야, 너 없었으면 못했어"
"..."
혁재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더이상 답이 없는 동해에 의아한 혁재가 곧 들려오는 훌쩍거리는 소리에 입을 열었다.
"왜 자꾸 울어.."
"나 사랑해줘서, 고맙다고..흡, 나도, 나도 너 평생, 흐윽, 사랑할 자신있어..끅, 너 못지않게, 멋진 어른,흑 돼서..."
말을 끝맺지 못하는 동해를 감싸안으며 토닥이던 혁재가 동해가 진정된 걸 느끼고 이내 몸을 떼어내 퉁퉁 부은 동해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뽀뽀 한 번 해주니 또 부끄러운 동해는 하지말라며 혁재를 놀려봤다.
"이 귀여운게 어쩌다 내 앞에 뚝 떨어져가지고"
"흐즈믈르흤드.."
악! 동해 볼 꼬집어 이리저리 만지던 혁재가 동해한테 정강이 한 대 맞고서도 기분 좋아진 동해가 보여서 실실 웃자 동해도 좋다고 따라웃었다.
"나 손 잡아줘"
"넌 손 잡는걸 참 좋아하더라"
"너 손 따뜻해서 좋아"
그래? 제 큰 손으로 동해의 손을 꽉 잡으며 자기도 동해의 작은 손이 좋다며 동해의 어깨에 고개를 묻자 느껴지는 혁재의 숨결에 간지러운지 몸을 움찍하는 동해에 혁재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동해, 나랑 결혼할거야?"
아, 몰라!! 아까 운게 쪽팔리는지 소리 빼액 지르곤 먼저 몸을 일으켜 혁재를 빤히 쳐다보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해와 자기 얼굴에 뭐 묻었냐며 고개를 갸웃한 혁재가 동해 따라 벌떡 일어나 빠른 발걸음으로 쫓아갔다.
그 둘의 뒷모습은 영락없이 풋풋한 고등학생 커플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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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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