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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사탕] Sweet Sweetie_여지

“이동해, 나 오늘 축구 경기 있어.”

“그럼 나 먼저 간다.”

 

이혁재와 이동해. 그들은 참 지지리도 붙어다녔다. 그러다 오늘처럼 가끔씩 따로 가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이면 혁재는 축구 경기 내내, 동해는 집에 가는 내내 텐션이 급격히 낮아지곤 했다. 물론 둘은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얼굴에서 다 표가 나는 법이었다. 오랜 친구 그 이상은 아닌, 그렇다고 그 이하는 더더욱 아닌. 그 둘의 애매한 관계는 지독하게 달콤했다.

 

 

 

 

Sweet Sweetie

w.여지 

 



 

Sweet.


이혁재는 축구에 대한 재능과 더불어 일가견이 있었다. 혁재 제게 축구는 인생과도 다름 없었다. 체육 특기생으로 동해와 같은 고등학교에 상향 지원했고, 합격 후 열심히 운동에 매진했다. 동해는 그런 혁재의 친구이자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 네 살 때 동해가 어린이집 이불에다 쉬 한 일, 여덟 살 때 혁재가 학교 화장실에 갇혀 엉엉 울었던 일, 열 세 살 졸업을 할 때 둘 다 눈꼬리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도 같이 사진을 찍었던 일, 열 다섯 살 한창 사춘기일 나이에 크게 싸운 일, 그리고 진하게 화해했던 일 모두 두 사람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축구광에 맨날 약속이나 깜빡하는 혁재는 여지껏 저와 다녀주는 동해가 고마웠고, 유독 덜렁거려서 같은 일을 꼭 두 번 씩 하게 만드는 동해는 무심히 챙겨주는 혁재가 고마웠다. 그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질 즈음, 우정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비슷한 시기에 둘을 잠식했다.

혁재가 축구를 하는 날이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집에 같이 가곤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도 아마 그 이유이지 않을까 싶었다. 동해는 되도록 피할 수 있는 만큼만 혁재를 피했다.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일상에서 피하지 않는 것이지, 그 외의 시간은 되도록 혼자 보내기로 결심한 동해였다. 그건 혁재도 마찬가지였다. 축구 시합을 핑계로 동해를 피한 것이 사실이다. 우선은 관계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고, 티를 내지 않아야 했다. 그나마 자연스러운 가면이 축구였다.

눈치를 챘거나 채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동해는 혁재가 축구 경기를 해야한다는 말에 집에 먼저 가겠다며 자처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한 것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 후로 혁재가 경기를 뛰는 날이면 자연스레 동해와 따로 가게 된 것이, 기폭제 아닌 기폭제였다.


“그러고 보니까 혁재가 안 보이네.”

“다른 반이잖아.”

“그래도. 너 중학교 때도 다른 반이었는데 걔랑 같이 다니지 않았어?”


그랬나. 동해가 대수롭지 않은 듯한 웃음으로 무마했다. 그냥. 너무 오래 같이 다니면…. 좀 질리지 않나. 동해가 뒷문에 서 있을 것이 뻔한 혁재를 향해 이야기했다. 저가 못 내칠 바에는 차라리 혁재가 떨어져 나가게 하고 싶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정마저 모두 없애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백을 받고 일그러질 혁재의 얼굴이 눈에 선해 용기조차 낼 수 없었다. 그래, 그래서 지금 네가.


“…너 내가 그렇게 질렸냐.”


방금 동해의 말을 들어줬음 했고,


“…이혁재?”

“그래서 요새 나 피한거구나.”


너무 많이 아프지 않을 정도의 상처를 받았으면 했지만,


“이동해, 나와. 집 가자.”


이렇게 학교가 끝나고 동해의 반 앞으로 찾아와 주길 바랐다. 너무도 모순된 이기심이지만, 동해 제가 이혁재를 내치기 위해서는 이혁재라는 산을 넘어야만 가능했다. 혁재와 집에 가는 길, 동해는 혁재를 붙잡고 그만 엉엉 울며 이야기했다. 나, 너 질린 것도 아니고. 그냥. 그냥….


“진심 아닌 거 알아. 우리 계속 친구 할 거잖아.”

“응. 우리 계속…. 친구였잖아.”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데 마지않아 달콤하지만, 어찌 보면 씁쓸한 그런 관계였다. 이혁재와 이동해는 그렇게 오늘도 친구라는 벽을 허물지 못한 채였다.




Swettie.


화이트 데이. 별 것도 아닌 날이 유독 가슴 떨릴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날이었다. 저가 줄 사람도, 제게 줄 사람도 없었지만 어딘지 심장 박동이 묘하게 빨라지는 것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이동해.”


뒷 문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서 동해를 부르는 혁재의 얼굴이…. 아아, 왜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집으로 가는 길, 어색함에 멋쩍은 웃음만 흘리는 동해였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정말 왜 이러지. 덥지도 않은 날씨인데 자꾸만 손부채질을 하던 동해를 저지한 혁재가 당황한 동해의 손에 봉지에 담긴 알사탕 하나를 쥐어주었다.


“갑자기 이걸 왜 줘.”

“화이트데이잖아.”

“바보야. 그거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는 거야.”


그래서 준 거야. 혁재의 말이 동해에게 깊숙이 박혔다. 받지도 못하고 다시 되돌려 주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있던 동해가 친히 껍질을 까 입에 넣어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혁재를 계속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입 안에 가득 들어찬 딸기향에 동해가 코 끝을 찡긋거렸다. 일종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 그 모습에 작게 웃기만 하는 혁재가 동해와 한 발짝 떨어져 걸었다. 괜히 민망했다.


“있지, 이혁재.”

“응?”

“그런데 나도 이거 있거든.”


한참을 걷다 동해가 가방을 뒤적거려 혁재에게 내민 것은 다름아닌 막대 사탕이었다. 동해가 내민 사탕을 받아든 혁재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그 후는 내리 정적 뿐이었다. 아무래도 동해가 울며 사과한 그 날 이후로 어딘지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탕을 건네는 손길이 뻣뻣하게 굳어 있던 것도, 쉽사리 받는 게 어려운 것도. 서로에 대한 마음이 커 더욱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었다. 집에 가는 내내, 혁재는 동해를 가만히 놔두지 못해 안달이었다. 길 안 쪽으로 몰아넣었다가도 또 조금 떨어져서 걷고. 평소처럼 편하게 어깨동무를 하려 다가오면서도 불편한 얼굴이고. 결국 동해의 눈치를 보던 혁재가 동해에게 두른 팔을 머쓱하게 내린 것으로 그 난리 부루스는 끝이 났다.


“야. 왜 이렇게 안절부절이야.”

“그러니까. 동해.”

“응.”

“우리 이제 친구 그만할래?”


혁재의 극단적인 언어 선택에도 무슨 말인지 다 아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동해에게 바싹 다가선 혁재가 동해의 허리께에 손을 얹고는 살짝 고개를 틀어 살포시 입 맞추었다. 조심스럽게 맞붙은 입술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해, 서로를 탐했다. 타액 섞이는 소리와 함께 달그락, 딸기향 사탕이 입 안에서 굴러다니는 소리가 났다. 동해의 입 안에 있던 사탕은 어느새 혁재의 입 안에 자리했고, 입술을 뗀 후 입맛을 다시는 동해였다. 달달한 게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마음에 들어?”

“응.”

“딸기맛 사탕이, 아님 내가?”

“딸기맛 키스가.”


그럼 이건 네가 원해서야. 혁재가 큭큭 웃으며 또 다시 동해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개었다. 다시 한 번, 딸기향 키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