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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장마] 우리의 장마_로원

Keyword: 장마

 

 투명한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은 하늘에서부터 쏟아지는 비로 축축이 젖어있다. 집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투명한 비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동해는 장마철로 접어든 요즘 기분이 좋다. 창문 여기저기 맺힌 빗방울은 때때로 주륵 미끄러졌다. 동해의 눈꺼풀이 스르륵 감길 때 즈음, 동해 앞에 있는 테이블에 놓인 전화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동해 자고 있었어?"

 "아냐, 잠깐 졸았어. 왜?"

 "아, 내가 우산을 안 들고 왔네. 데리러 와줄 수 있나 해서 전화했지."

 "알았어, 금방 갈게."


 혁재와의 전화를 마치고 졸린 눈을 비빈 동해가 몸을 일으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옷장에서 대충 겉옷을 꺼내 입고 우산 두 개를 챙겨 현관문을 열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늦은 시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밖은 꽤나 추웠다. 추위에 약한 동해가 몸을 부르르 떨고는 혁재가 있을 카페로 향했다.

 혁재와 동해, 둘은 고등학생일 때부터 친구였고, 또 연인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에 가장 친한 친구였던 혁재에게 받은 고백은 동해를 설레게 만들었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던 둘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연애는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순식간에 항상 티격태격 다투던 친구가 다정다감한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실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혁재와 동해는 서로를 보는 눈에서는 꿀이 뚝뚝 흐르고, 진한 스킨십을 하며 깨를 볶는 다른 커플들과는 달리 마치 어렸을 적부터 볼 꼴, 못 볼 꼴 다 봐온 소꿉친구 같았다. 항상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마음에도 없는 험담을 했고, 부드럽고 따뜻한 스킨십 대신에 장난스러운 폭력 아닌 폭력을 휘둘러야 했다.


 "혁재야!"


 빗속에서 들려오는 동해의 외침을 들은 혁재가 우산을 들고 있는 동해 쪽을 바라보았다. 한 손에는 제가 쓰고 있는 우산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혁재에게 줄 생각인 듯한 우산 하나가 들려 있었다.


 "어서 써. 집 가자."

 "...그러자."


 비를 좋아하는 동해는 장마철이 반가웠지만 비와 꿉꿉한 날씨를 싫어하는 혁재에게는 장마가 오는 것이 아니꼬웠다. 그나마 장마철의 좋은 점은 동해가 저를 데리러 온다는 것. 혁재는 종종 비가 오는 날에 일부러 우산을 챙겨가지 않고는 했다. 그럼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점 하나는 이동해 이게 또 눈치 없이 우산 두 개를 꼬박꼬박 들고 온다는 것이었다. 로맨스를 꿈꾸며 우산 하나를 들고 와 좁은 우산 아래 서로 가까이 붙어서는 함께 걸음을 맞추며 걸어가기를 원할 법도 한데, 혁재의 바람과는 다르게 동해는 그런 생각 따위를 할 정도로 연애 부문에서 영리하지 않았다.


 "...동해야."

 "어?"


 저를 돌아보는 동해의 눈빛이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을 닮았다고, 혁재는 생각했다. 투명하고 맑으면서도 금방이라도 땅에 떨어져 부서질 것 같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그래, 혁재에게 동해는 항상 장마였다. 비에게서 제 몸을 지켜줄 우산을 챙겨야 하는 것처럼 동해 또한 손이 많이 갔다. 그러나 동해를 챙겨줄 때마다 귀찮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이 챙겨줄 수 있어서 기쁜, 묘한 뿌듯함과 만족감까지 들었다. 어두운 날씨처럼 자주 우울해하는 동해를 보며 무시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동해를 웃게 해주고 싶었고, 동해가 제 몸짓과 말 하나하나에 웃는 것이 좋았다. 동해를 위해 행동하다 보면 오히려 더 즐겁게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해."

 "왜?"


 혁재의 우산이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혁재는 우산을 잡고 있던 손으로 동해의 허리를 휘감아 단단히 잡았으며, 다른 한 손은 우산을 들고 있는 동해의 손 위를 덮었고 행여나 동해가 놀라 우산을 놓칠세라 더 강하게 잡았다. 순식간에 동해의 우산 밑으로 들어온 혁재가 제 입술을 동해의 입술 위로 겹쳤다. 놀랄 새도 없이 제 입술이 혁재의 입술에 덮여지자 눈을 크게 뜬 동해가 몸에 힘이 풀려 무너져내리려 했지만 동해의 허리를 감은 혁재의 단단한 손이, 동해의 손을 잡은 커다란 손이 쓰러질 뻔한 동해의 몸과 우산을 지탱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혁재와 동해가 아래에 있는 우산을 두드렸고, 투둑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작스레 시작된 키스는 숨이 차 어지러울 정도가 될 때까지 계속됐다. 잠시 후 둘의 입술이 떨어지고 둘의 뜨거운 숨이 섞였다. 각자의 몸이 닿은 곳곳이 달아올랐고 아까까지 서로를 탐하던 입술은 찌릿했다. 비가 앗아간 체온을 서로가 나누어주고 있었다. 혁재와 동해가 있는 우산 아래의 공기는 따뜻했다.


 "동해."

 "응...?"

 "앞으로 우산은 하나만 들고 와라."

 "어?"

 "하나만 해도 충분하잖아. 그래야 이렇게 우리 동해 내 품에 안아서 집에 가지."

 "...오글거려."


 입술을 내밀고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틱틱거리는 동해가 그리 귀여울 수가 없었다. 저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혁재의 눈빛에 더 부끄러워진 동해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혁재는 그렇게 둘 생각은 없는지 동해의 얼굴을 잡아 제 눈과 마주치게 했다. 얼떨결에 혁재와 눈이 마주친 동해는 얼굴이 더욱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보지 마, 너."


 얼굴이 잔뜩 빨개져서는 저를 쳐다보는 것이 혁재의 눈에는 못내 귀여웠다. 당장이라도 귀엽다며 저 붉고 자그마한 입술에 제 입술을 내리찍고 싶었으나 지금 그랬다가는 동해의 얼굴이 터질 수도 있겠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제가 내던져버린 우산을 주워든 혁재가 동해의 허리를 감싼 채로 걸음을 옮겼다. 동해는 자연스럽게 혁재와 함께 발을 맞추었고, 두 사람의 걸음이 엇박자였던 전과는 다르게 찰박이는 소리가 하나로 모아졌다. 둘의 눈에 비친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다. 바닥에 고인 빗물이, 제 손에 들린 우산이, 햇빛 한 점 없는 하늘이. 그리고 서로의 옆에 있는 우리가.

 우리의 장마는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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