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은해 5月/솜사탕
cotton candy pop
w. na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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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털이 보이는 폭신폭신한 볼을 꾸욱 눌렀다. 내 손가락이 느껴졌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품속으로 파고드는 모습이 마치 엄마 품에 안기는 아기같았다. 귀여워. 보면 볼수록 더 귀여워 지는 것 같아 얼굴을 한 번 더 살짝 눌렀다. 손가락을 떼니 퐁하고 올라오는 뺨이 발그레했다. 하야면서도 조금 분홍빛이 도는 뺨이 햇빛을 받아 솜사탕처럼 포근해보였다.
- 으응.. 하지마아..
- 일어났어?
말꼬리를 늘리며 잠투정을 부리는 네가 좋아 킥킥 웃었다. 눈을 비비는 너를 꼭 안아주고 얼굴을 쓸어주었다. 손바닥이 닿자 조금 차가웠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반응도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 애기야. 일어나야지.
- 너 손 너무 차가워..
- 마음이 따뜻해서 그래.
- 아침부터 뭔 개소리야....
목소리나 말투는 귀여우면서 하는 말은 또 마냥 예쁜 말은 아니다. 양 볼을 손가락으로 잡고 쭉 늘리자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그 귀여운 주름에 대고 쪽 소리나게 입을 맞췄다.
- 으, 흐즈므!
- 아침부터 예쁘지? 말도 예쁘게 하면 좋을 텐데.
볼을 늘린 손을 놓지 않자 그제야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너는 눈이 제일 예뻐. 햇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눈이 눈물이 고인 것처럼 보였다.
있지, 나는 너 우는 거 싫은데, 좋기도 해. 예쁘거든. 눈꺼풀에 입을 맞추려 다가가는데, 네가 번뜩 눈을 뜨고 내게 달려들어 입술에 뽀뽀를 했다.
- 됐지? 이제 그만 괴롭혀. 조금만 더 잘래..
- 뽀뽀해도 안돼. 일어나야지.
- 변했어!
일어나란 말 한마디에 뭐가 또 변했다는 건지 등을 홱 돌리고 누웠다. 너 그냥 조금 더 누워있고 싶어서 그러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지? 어깨에서 파자마가 조금 흘러내려 목이 보였다. 하얗고 예쁜 목. 손가락을 갖다 대고 위에서 아래로 쓸자 몸을 살짝 떨었다.
- 으앗, 뭐해애!
- 아침부터 누워서 자꾸 유혹하나 싶어서.
- 아 변태야!!
짓궂은 내 장난에 조금은 발그레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파란 파자마가 예쁜 얼굴을 더 밝아 보이게 했다. 기지개를 켜는 너의 파자마 아래로 배가 보여 배꼽을 꾹 누르니 또 금세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가락을 잡았다. 어디 하나 안 예쁜 곳이 없었다. 내 검지손가락을 잡은 손이 작았다. 쪼그맣다고 하면 아니라고 소리를 치며 등을 퍽퍽 때리곤 했지만 역시 너는 쪼그매. 그래서 좋아.
- 우리 동해, 얼른 일어나. 스탭분들 온다니까?
- 아 왜 오늘 촬영이야! 모처럼 쉬는 날에 진짜! 센스도 없어!
- 으구, 애기 얼른 올라가서 쉬어.
- 너는?
- 나는 촬영해야지. 나중에 저녁에 내려와.
- 으응, 나 같이 있으면 안돼?
내가 제 애교에 껌벅 죽는다는 걸 잘 아는 너는 매일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으응, 하고 말을 늘리며 눈을 크게 뜨며 쳐다봤다. 귀여워가지고는. 어디 밖에 내놓기도 불안하다. 정말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주머니에 꼭 넣고 보고싶을 때만 꺼내고 싶을 정도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 혼자만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싶었다.
- 오늘은 안돼요.
- 흥, 나 갈래!
- 동해야.
- 왜! 이제 와서 붙잡아도 갈거야!
- 그게 아니라,
- 뭐! 간다니까!
- 바지는 입고가야지.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져 널브러져있는 바지를 손에 쥐어주자 얼굴이 빨개져서는 방문을 나갔다. 동해야. 너 너무 귀여워.
- 그러고 나가면 안돼~
- 아 이혁재 진짜 짜증나!
타이르는 말투로 거실로 나가자 바지를 주섬주섬 입고 있는 동해가 보였다. 내게 짜증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짜증나긴, 사랑하면서. 트레이닝을 입고 바지 고무줄을 쭉 늘려 묶는 너의 손이 서툴렀다.
- 내가 해줄까?
- 너 아침부터 또 뭔 꿍꿍이야. 안해.
- 뭘 해. 그냥 묶어준다니까.
동해의 뒤에 서서 허리를 감싸 안았다. 동그란 어깨에 내 턱을 올리고는 바지를 묶어주었다.
- 흐음. 냄새 좋다. 우리 동해.
- 아 다 묶었으면 놔. 가라면서.
새침하게 말하는 동해의 목에 뽀뽀를 했다. 촉. 동해는 목이 약하다. 금세 으응, 하는 소리를 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리. 그리고 나를 미치게 만드는 소리.
하얀 목의 이곳저곳 짧게 뽀뽀를 해대다 목 아래를 세게 빨아당겼다. 피부에 붉은 흔적이 남았다. 내새끼라는 표시. 그게 퍽 마음에 들어 붉은 흔적 위에 뽀뽀를 했다. 사탕을 먹는 것처럼 핥아대다가 솜사탕을 베어 물 때처럼 깨물어 입에 가득 담기도 했다. 이동해는 달다. 온 몸이 달아서, 입에 닿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
- 흐응, 뭐해..
- 너 너무 예뻐.
- 으응, 그만,
- 아침부터 누가 이렇게 예쁘라고 했어? 응?
- 아 내가 뭘. 니 눈이 이상한거야.
어깨위에 올려져있던 내 팔을 피해 품에서 벗어나고는 나를 노려보는 동해였다. 조금 건드렸다고 또 새침하게 팔짱을 끼며 쳐다보는 모습이 달큰했다. 동해를 보는 내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동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달달하니까.
- 너는 맨날 이런 생각밖에 안하지?
- 예쁜 걸 어떡해. 그만 예쁘던지.
- 니가 자꾸 그러니까..
- 응?
고개를 푹 숙이더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계속 머뭇거리는 입술이 보였다. 또 어떤 귀여운 말로 나를 기쁘게 해줄지 궁금했다. 고개를 숙인채로 나를 힐끔 보기에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씩 웃어주었다. 내 웃음에 또 예쁜 눈을 바닥으로 내렸다. 두 뺨이 발그레했다.
- 그러니까...
- 응.
- 너가 자꾸 그러니까,,
- 응.
- .....내가 진짜 예쁜가하고 생각하게 되잖아..
- 풉..
- 아 이럴 줄 알았어! 무슨 말을 못 하겠어 내가!
아, 사랑스럽다. 동해는 늘 낯부끄러운 말을 다 해놓고는 후에 꼭 부끄러워한다. 네가 한말이잖아 동해야.
- 그래서, 어때. 너가 생각해도 예쁜 것 같아?
동해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 작은 뒤통수에 입을 맞췄다. 이렇게 예쁜 애가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어쩌다가 내 옆에 있을까.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게 분명하다. 아니, 나라 정도로는 안돼. 지구나 인류 전체를 구한게 분명해.
- 몰라! 이 못난아!
- 어쭈, 서방님한테 못난이라니.
- 뭐래 또!! 오글거리거든?
- 오빠- 해봐.
- 싫어!
- 아유 귀야. 아침부터 힘도 넘치네 우리 애기.
- 아 진짜! 애기라고 하면 안 이상해? 나 너랑 동갑이야. 친구라고.
- 친구아니고 애인이잖아. 괜찮아 우리 애기.
내 말에 또 얼굴이 붉어져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며 내 어깨를 때리는데 그런 동해가 마냥 예뻤다. 애기라고 부르지 말라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 있을 때도 그러면 어떡할 거냐며 부끄러워하는데, 그런 반응에 나는 더더욱 애기라고 부르고 싶었다. 부끄러워하는 동해가 좋아서. 분홍빛 발그레함이 도는 게 좋아서.
- 그러면, 다 말해버리지 뭐. 내 애기라고.
- ...그러면 안되는 거, 너도 알잖아.
갑자기 나를 때리던 손을 멈추는 동해였다. 동해는 항상 걱정이 많았다. 우리가 만나기 시작했을 때도 걱정투성이였다. 우리 사이를 들키면 어떡하냐고, 세상이 무섭다고 했다. 괜찮다는 말로 위로하기에는 가혹하게도 우리의 사랑은 외면 받았다. 가끔 저렇게 또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어떤 말로 다독여주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냥 안아주면서 나만 믿으라고 하고 싶은데, 우리는 우리 둘의 사랑으로 잃을 것들이 너무 많았다.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들도 마냥 축복해줄 수만은 없는 사랑이었으니.
말없이 동해를 내 품에 쏙 안았다. 따뜻한 온기가 서로에게 전해지며 조금은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내 눈을 바라보는 동해의 눈이 촉촉했다.
- 또 우네, 우리 애기.
- 누가 애기야.. 그리고 나 안 울거든..
- 그래그래. 나도 사랑해.
눈가를 닦아주며 눈물이 흘러내릴 뻔 했던 자리에 입을 맞추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우리는 서로가 있잖아. 동해가 나를 빤히 쳐다보다 내 어깨에 두 손을 올렸다.
- 나 불안해.
- 응.
- 니가 나 꽉 잡아줘 알겠지?
- 응.
- 나 도망 못 가게 붙잡아줘.
동해의 말을 끝으로 서로의 입술이 닿았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닿은 입술이 따뜻했다. 서로가 서로의 혀를 끌어당기고 안아주었다. 절대 놓치지 않을 것 마냥 서로가 서로를 안았다. 점점 짙어지는 입맞춤에 아까 내가 묶어주었던 바지로 손을 가져가는데 눈치 없게도 휴대폰이 울렸다. 보내기 전에 한번 하고 싶었는데, 이놈의 일들이 나를 도와주지를 않는다. 동해가 입을 떼고는 내게 전화를 받으라며 씩 웃었다.
- 무시해도 돼.
- 그러다 촬영 펑크나면 너 백수 돼.
- 괜찮아. 너만 있으면 돼.
- 나는 안돼. 빨리 전화 받아. 너 혼나.
아까 안가겠다고 잉잉할 때는 언제고. 조금 서운해서 입술을 쭉 내밀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지금 촬영 팀이 집에 거의 도착했다는 전화였다. 아, 보내기 싫은데. 전화를 받으면서 계속 입이 풀어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밑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던 동해가 입술에 쪽 뽀뽀를 한번 했다. 그 뽀뽀 한번에 언제 삐죽 나왔냐는 듯 내 입꼬리가 순식간에 말려 올라갔다.
- 다 오셨대?
- 응.
- 그럼 나 올라갈게. 연락해!
- 너 어째 하나도 안 서운해 보인다? 아까는 으응 하더니.
- 집에 가서 쉴 거다 뭐.
- 으응 한번 더 해봐.
- 아 싫어 이상한 것 좀 시키지마. 이 변태야.
- 뭐가 변태야~ 응? 해봐~
- 아 싫다고!! 나 간다.
- 아잉 애기야.
내 애교에도 문을 쾅 닫아버리고는 나가는 동해의 뒷모습이 귀여웠다. 귀가 살짝 빨개져 있었다. 자꾸 웃음이 났다. 내가 변탠데, 왜 너 귀가 빨개져.
-
계속되는 촬영에 피곤했다. 심심하기 짝이 없는 내 모습을 찍는다고 했다. 평소에 집에서 뭘 하냐고 물어보는데 어, 동해랑 밥 먹으러 가거나, 아니면 동해랑 영화보기도 하고, 동해랑, 동해랑.
대답하는 내내 ‘거의 매일 동해씨랑 노시나 봐요. 두 분 진짜 친하시네요.’ 라는 말들이 돌아왔다. 네, 우리 친해요. 애인이거든요.
동해가 없이 혼자 집에서 보내는 일상은 정말 재미없는데, 방송 분량이 걱정될 정도로 아무것도 안하는 내 모습이 웃겼다.
원래 우리 집은 되게 시끄러워요. 동해가 거의 살다시피 하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서 냉장고에서 같이 딸기우유를 꺼내 먹어요. 그리고 지금 제가 누워있는 이 소파에서 동해 무릎을 베고 누워서 같이 티비를 봐요. 그러다가 예쁜 얼굴에 뽀뽀를 하면 동해가 제 어깨를 때리면서 부끄러워해요. 생각보다 엄청 아파요. 우리 애기가 얼굴은 예쁜데 힘은 장사거든요. 그러다가 그 발그레한 얼굴을 마주하면 또 뽀뽀 하고싶어서 제가 입술을 내밀어요. 그러면 동해가 막 부끄러워하고 웅얼웅얼하면서도 입을 맞춰줘요. 우리 동해가 얼마나 귀엽냐면요, 조금 건드리기만 해도 깜짝 놀라면서 막 때려요. 그러다가 기분 좋은 곳을 건드려주면 으응 소리를 내는데, 그건 절대 아무도 안 보여줄 거지만, 그게 얼마나 귀여운지.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지만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을 심심하게 보내고 있었다. 가끔 동해에게 오는 연락에 입가에 생기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뭔데 그렇게 웃으세요? 하면 아, 형들이 자꾸 제 생활 재미없다고 놀려대서요. 하고 둘러댔다. 보여줄 수 있냐고, 방송에 내보내고 싶다고 하셨지만, 아 욕이 많아서 안돼요, 능글맞게 넘겼다. 동해는 내 능글맞은 말들을 느끼하다며 싫어했지만, 내 휴대폰을 가득 채운 너의 사진들은 나만 볼 거니까 어쩔 수 없지 뭐.
[혁아, 나 지금 예성이 형이랑 만났어! 옷 안 어울리는 것 같아 ㅠㅠ]
아니야, 제일 예뻐. 우리 애기는 뭘 입어도 예뻐.
[ㅜㅜ 사람들이 나만 쳐다볼 텐데 어떡해. 너랑 같이 올걸 그랬어. 무서워. 실수하면 어떡하지 ?]
동해는 문자에서도 달큰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사랑에 심장은 쉴 틈도 없이 쿵쿵뛰었다.
내 새끼 잘할 거야. 내가 보고 있을게. 사랑해.
[나도 사랑해. 촬영 잘해, 안 그러면 죽어 !]
귀여운 협박 문자에 웃음이 절로 났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행복해. 동해와 함께 한 이후로 나는 늘 행복했다. 동갑인데다가 서로 지내온 시간도 길어서 싸운 적도 엄청 많았지만, 그때도 행복하지 않지는 않았다. 어차피 우리가 다시 붙을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한번은, 촬영 때 싸운 적이 있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대기실에서 동해가 내게 소리를 질렀었다. 그러고는 엉엉 우는데, 평소 같았으면 껴안고 사과했을 텐데, 그 날은 내가 또 그러질 않았다. 왜 그랬더라.
아, 아마도 촬영 내내 동해에게 붙어있는 남자 배우 때문이었을 거다. 그래서 기분이 나빠져 있는데, 동해는 동해대로 또 내가 다른 배우랑 붙어있는 걸로 짜증이 났던 것 같다. 비슷하게도. 어쨌든 동해가 내게 ‘그렇게 좋냐? 좋으면 저 여자랑 만나지 왜 나랑 만나!!’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귀여운데, 그때는 나도 화가 나있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었다. 그리고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촬영을 했었지.
집에 가는 내내 차안에서도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동해가 입을 열었었다. 미안하다고 울며 자기만 봐달라고 했다. 불안하다고. 내가 사라질까봐 불안하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사르르 녹아 우는 동해에게 입을 맞췄었다.
뭐 이런 싸움들이 종종 있어왔다. 우리는 서로 질투가 심하니까. 같은 멤버들끼리도 붙어있어도 막 짜증을 내곤 했다. 동해가 정수형이랑 살아 그럼! 하고 소리를 지르면 내가 그럼 너는 최시원이랑 만나지 왜!! 하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투닥이지만, 한 번도 헤어질까봐 걱정했던 적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
집에서의 촬영은 순조롭게 끝났다. 모처럼 쉬는 날이었는데 동해 없이 하루를 보낸 게 아쉬웠다. 원래 같았으면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하루 종일 붙어있었을 텐데. 라면 먹은 걸 알면 또 난리치겠지.
샤워를 하고 정리를 하는데 인기척도 없이 동해가 갑자기 뛰어들어왔다. 비밀번호도 마음대로 누르고 들어와서는 혼자 신이 나 집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동해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도 났다. 원래 같았으면 바로 폭 안고 뽀뽀를 해댔을 테지만 아직 스탭분들도 있었으니까. 멍하니 쳐다만 보는데, 노란 옷을 입고 총총 뛰어다니는 내새끼가 귀여웠다.
집을 한 바퀴 돌더니 내게 뛰어와 꽉 안기는 동해를 당황해서 밀어냈다. 뭐가 잘못됐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 왜~
- 왜 안기고 그래, 징그럽게.
- 징그러워?
말을 하며 눈짓으로 눈치를 주자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데 자기도 실수했다는 걸 아는지 또 볼이 달아오르는 게 보였다. 다른 사람들 있을 때 조심하라니까 진짜. 말간 얼굴에 붉어진 볼을 깨물고 싶었다. 입속에 가득 넣고 쪽쪽 빨고 싶었다. 달콤한 동해를.
- 어, 동해씨 오셨네요?
- 네, 아직 촬영 안끝났다길래 저도 출연하려구요!
- 야. 집에 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동해가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얼른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죄없는 옷 소매만 꽉 쥐어야했다.
- 아 왜~ 너만 잘 되냐? 나도 좀 나오자!
- 야, 피곤해 집에가 빨리~
동해를 현관 쪽으로 미는데 머리에서 좋은 향기가 났다. 씻고왔나보네. 비누향이 자꾸 코 근처에서 아른거려 어깨를 감싸안고 동그란 뒤통수에 얼굴을 묻고 싶었다. 동해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만 들릴 만큼 작게 말했다.
- 자기야. 나 씻고 왔는데.
- 아 씨...
- 언제 끝나?
앙큼하게 한마디 하며 내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더니 현관문을 쾅 닫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아까 갑자기 동해가 우리 집에 쳐들어왔을 때처럼 멍하니 있어야했다. 아 이동해. 사람 미치게 하는데 뭐 있다.
-
스탭분들에게는 동해를 집에 보냈다고 하고 성급하게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하루를 끝냈다. 아니, 우리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오늘 밤에는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 은혁씨, 오늘 수고하셨어요. 피곤하셨죠?
- 저희 간다고 하니까 되게 좋아하시네요.
- 하하. 아니에요. 오늘 수고많으셨어요. 들어가세요.
엘리베이터를 내려 보낸 후, 바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응 여보. 집이야?
[끝났어?]
응 방금 가셨어.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
[급한 사람이 오는 걸로 하자.]
뚝하고 끊기는 전화에 피식 웃었다. 급한 사람이 오는 걸로 하자니. 그럼 내가 가야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도 아까워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실이 고요한 와중에 내가 걸어가는 소리만 울렸다. 쿵. 쿵. 한 계단씩 내딛을수록 울리는 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고, 내 심장도 그에 맞춰 쿵쿵 울렸다. 아, 진짜 빨리 안아주고 싶다.
중간쯤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 계단실에서 걸어오는 게 느껴졌다. 아, 빨리 나온다고 마스크도 안썼는데. 되는 대로 위에 걸친 옷을 싸맸다. 그리고 발소리가 가까워질때마다 고개를 푹 숙였다. 상대방과 마주칠 만큼 쿵쿵하는 발소리가 소리가 커지자 내 심장도 덩달아 더 크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사람을 지나치는데, 작은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아, 알아본건가. 귀찮게 됐다싶어 고개를 드는데, 그런 나를 채운 건 달짝지근한 향기였다.
- 혁아!
- 아 뭐야. 놀랐잖아!
- 왜! 너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 다른 사람인 줄 알았지, 나 얼굴도 안 가리고 나왔단 말이야.
- 그 정도로 급했어? 우리 은혁이?
또 그 앙큼한 웃음을 지으며 내 얼굴을 매만지는데 웃음이 났다.
- 그러는 우리 동해도, 급했나봐?
- 응.
- 어?
- 아침에 헤어지고 나서부터 보고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
부끄러워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가끔씩 이렇게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게 예뻐죽겠다. 동해가 내 어깨에 두 손을 올리며 씩 웃었다.
- 그럼, 누구 집으로 갈까.
- 굳이 집까지 갈 필요있나.
- 어?
- 여기서 해.
- 뭐? 너 미친거...
말하는 동해를 막고 입을 맞췄다. 종일 너를 안고 싶었어. 한나절 떨어져 있었던 것뿐인데 무슨 몇 년은 못 만난 연인처럼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키스했다.
말캉한 혀가 달고 폭신했다. 동해야, 너도 알지? 나 단거 좋아하잖아. 그래서 너도 좋은 건가봐. 눈을 살짝 뜨고 동해를 보니 그 예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에 내 시야까지 달달해졌다. 살짝 붉어진 두 뺨과 목에서 살짝 나는 비누향이 내 몸까지 달큰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계단실이 동해의 냄새로 가득 찼다. 동해의 달아오른 뺨처럼 분홍빛으로 가득 찼다. 우리가 입 맞추는 소리로, 사랑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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