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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성년의 날] 내일이면 (Blue Tomorrow)_이도내

 

 

 

 

 

[······서울부근에서는 약 3시간 째 강한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퇴근길을 다소 불편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기 역시 차차 흐려져 10mm에서 50mm 정도의······]


고요한 집 안을 울리는 라디오 소리.
톡,톡, 창문에 부딪히며 방울방울 처참하게 부서지는 빗소리에 맞춰 손톱으로 창문을 톡, 톡 작게 두들기다가 이내 무료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거두었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무릎을 당겨 끌어안자 온몸을 감싸던 한기가 조금은 가시는 듯 싶어 그 자세를 유지한 채 창밖을 내다보던 고개를 정면을 향해 돌렸다.


"비 많이 오네"

"난 비 싫어해"

"난 좋아해"

"....."


비도, 너도. 내가 입을 꾹 다물자 말갛게 웃으며 대꾸하는 동해가 괜스레 얄미워 다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문에 비치는 내 얼굴. 그 위로 주룩주룩 흘러 내리는 빗방울, 아니 물방울. 가뜩이나 우중충한 표정에 물기가 가득 번지자 마치 내가 울고있나 하는 착각이 들어 손을 들어 내 얼굴을 쓸어보고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역시 비는 싫다.

내 행동 하나하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동해가 맞은편에서 가만히 웃는다. 찡그린 내 표정과 상반된, 이동해의 해맑은 표정.

나는 손을 뻗어 그 흰 얼굴을 쓸어보려다, 코앞까지 갖다댄 손을 다시금 거두었다. 동해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저 가만히 웃어보였다. 늘 그래왔듯이.


-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배가 고파진 참이었다. 여섯평 남짓한 공간에 딱히 구분이라 할 것도 없지만. 냉장고를 뒤적거려도 나오는 거라곤 물병과 술병 말고는 없었다.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위로 뻗어 찬장을 열자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라면 몇봉지가 손가락 끝에 걸렸다.


"먹을래?"

"뭘?"

"라면"

"...생각 없어"


어느새 내 뒤를 졸졸 쫓아 따라들어온 동해가 물끄러미 내 하는 양을 올려다 보길래 무뚝뚝하게 묻자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고개를 젓는다. 싱겁기는.

라면 냄새가 집 안을 가득 메울 때쯤, 허리를 숙여 바닥에 낮은 상을 펴자 동해는 쪼르르 다가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안 먹는다면서"

"응, 너 먹는거 구경할거야"


일부러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을 해도 개의치 않고 빙긋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착해빠진 이동해.

뚜껑을 열고 면을 한 움큼 젓가락으로 집어들었다. 오랜만에 받아들이는 음식물에 위가 거부반응을 보이는지 잘게 요동을 쳤다. 아랑곳 않고 입 안에 꾸역꾸역 밀어넣듯이 면을 우겨넣었다. 볼이 불룩해질 정도로 가득 들어찬 면이 버거웠지만 기계적으로 턱을 크게 움직여 잘게 씹어내자. 이번엔 동해가 인상을 찌푸린다.


"천천히 먹어"

"무슨 상관"

"물도 좀 먹고"

"....."

"그리고 제대로 된 것 좀 챙겨 먹어, 맨날 라면이 뭐냐 라면이"

"...왜 그러는데 갑자,"

"속상하게"


냄비에 쳐박은 고개 위로 자꾸 말을 걸길래 고개도 안 들고 대충 대꾸했더니 말까지 끊고는 일방적으로 쏘아붙인다. 그제서야 고개를 들자 눈에 눈물이 한가득이다.


"울지마"

"..개새끼야"

"미안해"


나는 비가 싫다. 빗방울도, 지금 내앞에 앉은 이동해 눈에 고롱고롱 맺히는 눈물방울도. 다.


-


결국 비우지 못한 냄비를 싱크대에 팽개쳐 두고, 이동해와 나는 좁다란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내쪽으로 푹 꺼진 매트리스. 이어지는 침묵에 동해는 제 손톱을 잘게 물어뜯었다.


"하지마 그거"

"무슨 상관"


아까의 내 말투를 고스란히 따라하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져 바람소리를 내며 작게 웃자 그제서야 표정을 풀고 나를 바라본다. 다시 그 말간 얼굴로.

날씨 탓인지 가만히 있어도 힘이 쭉 빠지는 느낌에 나는 침대 위로 몸을 뉘였다. 동해 역시 나를 따라 눕는다. 내가 아무런 반응 없이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자 꼬물꼬물 몸을 움직여 내 옆으로 바싹 붙어 눕는다.


"혁재야"

"왜"

"나 좀 봐줘"


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몸을 돌려 옆으로 누운 자세로 동해의 눈을 마주하자 물먹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찬다. 한참동안 우린 그렇게 소리없이 서로의 눈을 마주했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와 시곗바늘의 일정한 소음을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러자 그 물기가 나에게도 옮겨오는지 어느새 시큰해진 눈가를 한 손으로 비비자 감은 눈 위로 동해의 천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이겼지-"

"뭐가"

"눈싸움 한거 아니였어?"


장난기가 가득한 목소리에 눈을 흘기자 다시 입꼬리만 당겨 웃는다. 나는 역시 저 얼굴에 못 당한다. 이동해도 그걸 안다. 얄미운 이동해.


"혁재야"

"왜"

"나 너랑 자고싶어"


한결 유해진 분위기에 안심했더니 이번엔 또 무슨 속셈인지 뜬금없는 말을 내뱉는다. 나는 조금 일렁인 가슴을 애써 누르고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자 그럼, 재워줄게"

"그거 말고,"

"....."

"섹스하고 싶다고"


더이상 가슴이 일렁이지 않았다. 나는 어쩐지 조금은 분해진 기분으로 이동해를 마주했다. 동해의 표정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변함이 없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말간 그 얼굴.


"...나는"

"응 혁재야"

"나는 너 만지고 싶어"


입을 꾹 다물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생각보다 담담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내 말에 일일히 대꾸를 하면서도 헤실헤실 웃던 동해가 이번엔 내 말에 입술을 다물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더니, 이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문다.

이어지는 말도 없이, 나는 등을 돌렸다. 뒤에서는 들릴듯 말듯 할 정도로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눈물이 많은 이동해.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넘어가는지 창틈으로 스며드는 발간 햇살이 눈을 따갑게 만들었다.


"혁재야"

"...."

"이혁재"

"....."

"혁아"


이상하다.

영문을 알 수 없이, 나는 이동해의 목소리에 몸이 굳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동해는 아랑곳 하지않고 계속해서 내 등 뒤에서 나를 불러왔다. 조급하지 않게, 나른한 그 목소리로.

손이라도 뻗어 내 몸을 돌리면 될 것을, 동해는 끝끝내 내 이름만 하염없이 불렀다. 내가 스스로 돌아봐주길 바라는건지.


"혁재야 나.."


그만,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가까스로 움직여 동해의 말을 가로막았다.


"동해, 그만해"

"안돼 혁재야"

"그만하라고!!!"


몸을 벌떡 일으키며 고함을 치자 동해가 입을 멈추었다.  적막이 감도는 방 안은 씩씩대는 내 숨소리와 빗소리가 섞여 어지럽게 내 귓전을 때렸다.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 나는 귀를 세게 틀어막았다. 좆같은 빗소리가 조금은 잦아들기를 바라며.


"혁아 나 부탁이 있는데"

"씨발, 그만하라고 했어,"

"나 없어도 밥 잘 먹고"

"닥치라고!!!"

"이제 친구들도 좀 만나고, 밖에도 나가고"

"흐윽,그만.."

"학교도 다니고 이제, 응?"


목구멍을 턱턱 막으며 차오르는 눈물에 더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동해의 얼굴을 올려다보기가 두려워 침대 시트를 꽉 쥐어 핏줄이 불거진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주먹 쥔 두 손은 걷잡을 수 없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우리 다음생에는,"

"제발 동해야..흐,"


너는 결국 날 무너지게 만드는구나.
나는 아이처럼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리며 동해의 앞으로 무너져내렸다. 얼굴에 닿아오는 이불에 얼굴을 파묻으며 감히 너에게 손도 뻗지 못한 채 온 몸을 덜덜 떨며 울음을 토해냈다. 무서워, 나 무서워 동해야.


아,


그 순간 따뜻한 무언가가 내 머리 위에 얹어졌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 숨을 들이키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눈동자로 너를 마주하자 웃고 있는 네가 눈에 가득 들어찼다.


"동,해?"


4년만에 느껴보는 따스한 손길에 나도 모르게 다급하게 그 작은 손을 움켜쥐었다. 말도 안돼. 온 몸을 떨며 그 손 위로 얼굴을 파묻고 다시금 흐느끼자 동해가 손을 들어 눈물로 범벅이 된 내 얼굴을 쓸어내린다. 누구보다 온화한 표정으로, 소중하게, 내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천천히 보다듬는다.


"혁재야"

"흐윽,흐으,안돼, 으..안돼"

"우리 혁이 내일이면 이제 진짜 어른이네"

"흐,아,동해 제발..."


팔을 뻗어 동해의 허리춤을 끌어안았다. 비참하게 매달리는 내가 안쓰러운지 내 머리로 옮겨간 동해의 손도 함께 덜덜 떨려온다.


"사랑해"

"흐으,나도,나도..동해야,가지마,"

"사랑해 이혁재"

"으,하으..으윽,흑..."

"죽어서도,"

"응,응,동해,흐윽.."

"비록 내가 옆에 없더라도"

"동해야..으,"

"시간이 많이 흘러서 니가 날 잊는다고 해도"

"흐으.."

"나는 언제나 널 사랑하고 있어"


말을 마친 동해가 웃는다. 아스라히 부서지는 달빛 아래 동해의 말간 얼굴이 다가왔다. 내 젖은 입술 위로 내리는 녹을듯 부드러운 감촉. 나는 허겁지겁 동해의 머리를 감싸안고 그 입술에 매달렸다. 사랑스러운 그를 하나라도 더 담기 위해 힘겹게 눈을 뜨고 눈물에 잠겨 흐릿한 시야 사이로 동해를 가득 담았다.

 


  이동해의 얼굴은 창에 비치지 않았다.

  이동해의 얼굴은 만질 수 없었다.

  이동해는 나처럼 라면을 씹고 삼킬 수 없었다.

  이동해가 앉은 자리는 꺼지지 않았다.

 


  이동해는, 결국 나와 함께할 수 없다.

 


사랑해, 사랑해, 맞닿은 입술 새로 끊임없이 내뱉었다.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얼핏, 동해가 웃어 보였던 것도 같다. 늘 그랬듯, 말간 얼굴로.


[······할 전망입니다.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빗길에 미끄러진 차량 한대가 통학중이던 버스를 들이받아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버스에 타 있던 인근 고등학교 학생 한명이 사망하고······]


   동해야. 네가 좋아하던 비가 나는 참 싫었다.


'혁재야, 동해가..."


   너를 앗아간 그 비가, 나는 참 싫었는데


'나는 널 언제나 사랑하고 있어'


   이번에도 역시 널 앗아가는구나.


[······2018년 5월 21일 날씨입니다. 성년의 날입니다,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측과는 달리, 화창한 날씨가 지속될 전망입니다. 오늘 오전 서울의 기온은 영상 23도······]

 


영원히 소년으로 남은 너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떠났고,

 

 


더이상 비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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