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랬더라, 인생은 Birth 와 Death 사이의 Choice로 이루어진댔나,
얼마전 나에게 생각지못한 선택의 순간이 찾아 왔었다.
그래서 내가 한 선택은 과연 잘한것이었을까...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남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옥상에서 담배나 태우는 중이었다.
나에게는 얼마전 만든 내 전용 빵셔틀이 있었는데, 이혁재라고...
고3 새학기가 되고, 내가 찾은 우리반에서 제일 만만하고 찌질한 놈이었다.
첫 조례가 끝나자마자 다가가 뒷통수 한대 치며 빵 사오라고 천원 쥐어주니
별말없이 일어나 빵을 사오던 것이다. 아싸 개이득 역시 내 안목은...키야...
암튼 그 이후로 종종 이혁재를 불러서 빵을 사오라고 시켰고 걘 찌질하게 우물쭈물대긴했어도, 큰 반항 없이
착실하게 빵을 사왔다.
담배를 피는데, 끼이익 옥상문이 열리고 이혁재가 걸어왔다.
빵은 이따가 5교시 끝나고 사오라니까...왜 온 거지?
5월이 되었는데, 덥지도 않은지 제 품보다 큰 것 같은 마이를 아직도 꾸역꾸역입고 다니는게
역시나 빵셔틀 패션이라고 생각하며 물고있던 담배연기를 훅 불었다.
"뭐냐? 너?"
.
.
대답을 얼른 안하고 나름 비장하게 다가와서는 나한테 이런다.
"동해야 나랑 사귀어줄래?"
헐-.대가리에 총 맞았나. 빵셔틀 입에서 나올 대사가 아니었다.
"야...시발 뭐가 불만인데..알았어 오늘 빵 사오지마."
오전에 내가 빵 사오라고 준 천원을 꼭 쥐고, 우물쭈물 땅만 보며 그대로 가만히 있는다.
"내일은 닥치고 사와야 된다? 짤없어. 내일 네 돈으로 딸기꿀딴지도 사와. 괘씸한 새끼 이거
사람을 놀래켜."
처음엔 빵 사오기 싫어서 괜한 헛소리로 객기를 부리는 줄 알았다.
"동해야. 나 진심으로 얘기하는 건데...빵 사오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두껍고 까아만 뿔테 안에서 바닥만 향하던 시선이 나를 본다.
나는 약간 당황했다.
"허....진심이라고?...."
여기서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지난 몇달을 내 전용 빵셔틀로 부려먹던 이녀석의 도발아닌 도발에,
어떻게 반응해줘야 할지...
.
.
"그래. 사귀자. 와- 나 남친 생겼다- 존나 신난다. 남친아 빵 사와."
어깨를 주먹으로 친다거나 정강이를 발끝으로 콱 찍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땐 그냥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빵셔틀 이혁재의 고백이 진심이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장난으로 그 고백을 받아줬던 것이다.
이 선택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 줄도 모르고.
나는 장난이었는데 너는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에.
"동해야, 학교 끝나고 혹시 어디가?..누구 만나러 가? 진짜 미안한데 별일없으면 나랑..."
"어, 나 누구 좀 만나는데?"
빵이나 사오고, 가끔 물끄러미 쳐다보는것밖엔 할 줄 모르던 놈이 요즘 부쩍 간섭에, 말이 많아졌다.
지가 진짜 내 애인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그래서 일부러 퉁명스럽게 딱봐도 데이트 신청하려고 말거는 걸 뚝 끊고 없는 약속을 만들었다.
약속있다니까 묘하게 얼굴빛이 죽었다. 어쩜 저렇게 감정에 충실한 표정을 짓는지...
"누..누구랑!?...만나는..데?"
"조규현. 뭘 꼬치꼬치 캐물어 뒤질래? 네 자리로 가."
또 저 표정. 맘에 안들지만 감히 나한테는 대들 수 없어 속으로 삭히는 저 표정을 짓는다.
입술만 꾹 물고 자기자리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은근 애처롭다. 내가 너무 심했나...
학교가 끝나고, 나는 별로 든 것도 없는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섰다.
솔직히 조금 느리게 움직였다.
이혁재가 끝도 없이 책이 들어가는 가방을 부랴부랴 싸면서 연신 내 눈치를
보고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동해야..."
"왜."
"미안한데...아무래도...나 오늘 너 못 보내겠어..나 그래도 너랑 사귀는 사이고...
또 조규현이라는 애 저번에 보니까, 별로 너랑 안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얼씨구 구구절절. 그리고 은근 저 사귀는 사이라는 걸 강조한다.
조규현은...당연히 싫겠지 내가 맨날 걔 무릎에 앉아서 너한테 빵 심부름 시켰으니까.
전엔 몰랐는데, 사귀자고 하고부터는 엄청 신경쓰는 표정이 보였다.
난 모르는 척 했지만.
"하...진짜 개답답하네. 넌 그렇게 존심이 없냐? 무슨 말끝마다 미안하대"
"어..?"
"넌 왜 이렇게 답답하냐고오. 애인놀이를 해줄래도 존나 재미가 없다고 새끼야."
말이 멋대로 나갔다. 일단, 이혁재의 진심이 자꾸 느껴지는게 묘했다.
장난으로 받아주려했다. 그래서 남친아, 야 남친 이렇게 불렀었다.
그치만 곧 그만뒀다.
내가 그렇게 부를때마다 이혁재는 잔뜩 굳어서 귀를 붉혔고, 안경테만 매만졌다.
이렇게 반응하는 이혁재한테 남친이라고 하는건
꼭 우리가 '진짜'가 된 것 같았기 때문에.
다시 호칭은 이혁재가 되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사귀자며.
근데 왜 내가 조규현 무릎에 앉아있아도 아무말도 못하는데?
데이트 신청도, 미안한데...붙잡는 것도 미안한데... 진짜 지긋지긋해 죽겠다.
그리고 이 답답함을 저렇게 배배꼬인 말로 표현하면서 나는 느꼈다.
'뭐야...나도 진심인가'
찰나의 순간 나는 느낀 것이다. 나는 애써 변해가는 내 감정을 부정하고 있었다는 걸.
처음엔 장난이었는데... 진심인 주제에 나한테 제 맘을 똑바로 표현 못하는 저 녀석이
답답하고 거슬린다는건.....나도 진심이 되었다는 거 아닌가...?
하교 후 한적해진 복도에, 싸가지 없는 내 외침만 울려퍼진 상태였다.
나는 말을 뱉자마자 후회했지만 이미 굴러간 주사위였다.
"동해야...애인놀이. 힘들면 관둬."
"어? 야 나는."
"또 미안하다고 해서 미안해, 답답하게해서 미안했어. 너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싶어서...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지켜만 봤어...그치만 역시 나는 안되나봐."
나는 처음보는 이혁재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 애써 참는 너의 속상한 마음이 또 얼굴에 드러난다.
알고있었겠지. 이혁재 너도. 내가 별생각없이 그 고백을 받아줬다는걸.
그래도 너는 노력한거다. 내가 제 진심을 알아줄때까지...
내가 답답해했던 이혁재의 우유부단한 행동들은 사실, 나를 얽매고 싶지 않은 너의 배려였단것도.
나는 이제야 깨달았는데...
"아 진짜...짜증나..울 것 같애"
착한 이혁재맘도 모르고 애 맘을 가지고 장난치고, 찌질하다고 속으로 씹어댔던 내가 후회스러워졌다.
존나 미안해 이혁재. 가지마
"왜 울어...이제 그만해도 돼..그래도 가끔 빵은 사다줄게 응?"
"아 됐다고 시발놈아! 이제 너 내 빵셔틀 안시킬거라고!... 그냥 계속 해...!"
"빵을...사오지 말라고? 근데 뭘 계속해?.."
"눈치 없는 새끼 진짜...존나 가르쳐야겠네 이거..."
이 와중에도 눈치 밥말아먹은 이혁재가 답답해서 더 눈물이 났다. 흑 역시 개찌질해
"도..동해야 왜 울어..진짜 ..아.."
"그냥 계속 사귀자고.....그리고 이번엔 내가 말할게 미안하다고. 또..그리고 나 오늘 조규현 안만나.
구라야 그거. 우리 데이트 가자."
그래 네가 좀 눈치없고 답답하면 어떠냐, 내가 다 먼저 말하면 되는걸.
"동해야...고마워.... 근데 .....데이트 할 때는 뭘하면 되는거야?.."
이 씨발. 넌 딸기꿀딴지 100개 예약이다.
내가 선택한 이혁재는 이후에도 곧잘 개빡...아니 조금 답답하게^^ 했지만,
역시 교육(이라고 썼지만 그냥 팼다)의 힘은 놀라워서,
이제 이혁재는 나한테 바라는 것도 많아졌고,
우리, 얼마전에...키스도 했다.
물론 내가 볼 붙잡고 들이댄거긴한데 좋았다. 나도 얘 진짜 좋아하게 된거 맞나보다.
"동해야"
"어엉..."
"너 공부는 안해?"
"뒤질래...내가 그걸 왜해..너나 많이 하세요..."
"아니이...우리 대학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서.."
"시발 그럼 니가 내 등급에 맞춰. 감히 누구한테 공부를 하라마라야 새끼...딸꿀1개 추가다."
"우리 엠티도 같이 가면 좋잖아...응?"
"뭐어어어? 엠티이????!!!! 이미친 머릿속에 그딴 생각밖에 없냐? 와 키스도 못하는 척 하더니
존나 색마네 이거, 뭔 생각하고 사냐? 너 안경 벗어봐, 눈 속에 음란마귀가 가득.."
"푸흐...동해야...ㅎ 그거 아닌데..."
"아니면 뭔데!"
"모텔아니고...대학가면 멤버십 트레이닝이라고...
같이 여행도가고 놀고...그러는거 있어..너랑 같이 가고 싶어서.."
"그..그래? 어 뭐 그래 가자..까짓거..."
'대세는 너드남' 마침
'M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년 5월호 ▲ (0) | 2019.04.13 |
---|---|
[MT] 왕게임_에잇 (0) | 2018.11.26 |
[성년의 날] 내일이면 (Blue Tomorrow)_이도내 (0) | 2018.11.26 |
[스승의 날] student teacher_여지 (0) | 2018.11.26 |
[로즈데이] 봄바람 햇살 말고_꿈글 (0) | 2018.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