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울어도 돼
w. 은해나라
모두가 행복한 성탄절. 크리스마스 전 날이라 그런지 들떠있는게 느껴진다. 삼삼오오 모여 행복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 날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동해가 보인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혼자 지내도 괜찮을거라 생각한게 웃으워질정도로 외로웠다. 웃으면 덜 외로울까 얼어붙은 손으로 입 꼬리를 주욱 잡아당겼다. 입술을 건조했고 공기는 차가워 갈라져있던 곳이 터져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모두의 웃음소리가 저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 같아 애꿎은 눈만 즈려밟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티없이 맑은 하늘이 차가워보였다. 눈 오는 날이 좋았었는데. 들려오는 노랫소리도 참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그저 눈물만 난다.
겨울을 좋아했다. 새하얀 눈이 좋았고, 그 날의 분위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함께 흥얼거리던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멤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언제나 아이 다루듯 어릴때 들려주시던 노래를 불러주셨다. 울면안되, 울면안되, 산타할아버지는 우는아이에게 선물을 안주신데. 눈물이 많았던 내게 선물을 받으려면 웃어야한다며 늘 불러주시던 노래.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워 눈을 만졌다. 눈사람을 만들기로했다. 잠시라도 다른곳에 신경을 돌리지 않으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더욱 생생히 추억들이 그려졌다. 꾹꾹 눈을 누르며 애써 참아보았지만. 지나가는 가족의 화목한 모습에, 흐르는 눈물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산타할아버지. 올해 선물은 따뜻함을 주세요.
쓸쓸함을 달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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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공기에 눈을 떴다. 분명 보일러를 켜두고 잠이 들었는데, 창문이라도 열렸나 싶어 졸린눈을 비비며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보일러도 정상적으로 돌아갔지만 따뜻한 침대 속과 다르게 방은 차디찬 겨울의 공기였다. 꿈이구나. 꿈을 꾸고있다면 부모님을 만나고 싶었다. 눈을 감고, 부모님의 손길을 떠올렸다. 포근한 품 안에서 다정히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그리웠다. 그리움에 베개를 꼬옥 잡으니 울며 잠든 탓에 젖어있던 베개가 말라 쭈글쭈글해진 곳이 손에 닿았다. 그 모습이 꼭 제 마음 같아 다시금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울지마, 울지마 동해야.
따뜻한 손길이 머리에 닿자 고개를 돌렸다. 퉁퉁부어버려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자 흐릿하게 형태가 보였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낯설었지만,
" 엄마... "
그리 부르며 허리를 감싸 끌어안았다. 그리운 품이 아니였지만 포근한건 다름없었기에 꿈이라면 깨고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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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꿈을 꿨다고 생각했다. 포근한 품에 정말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고, 그로인해 좋은 꿈을 꾼 것이라 여겼다.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다정히 바라보고있는 낯선아이를 보기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멍하게 바라보고있으니 빙그레 웃음을 지어보인다. 큰 눈이 반달 모양으로 접히는데, 그 모습이 퍽 예뻤다.
" 안녕, 나는 이혁재야. "
혁재가 손을 내밀자 서늘한 기운이 퍼져나왔다. 공기가 차가운 이유는 이 아이때문이였을까? 아니, 아직도 꿈을꾸고있는걸까?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을 찾는 저를 이해하는지 묵묵히 기다리던 혁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어젖혔다. 화이트크리스마스였다. 떨어지는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 너의 쓸쓸함을 달래주기위해 내가 왔어 "
혁재의 말에 눈쌀을 찌푸리자 다정한 눈으로 다시금 저를 보았다.
" ...크리스마스 선물. "
" 아, "
전 날, 따뜻함을 원했던 저의 소원을 이렇게 들어주심에 감사하면서도 헛웃음만 나왔다. 역시 꿈이네.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건 생각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꿈에 나타나 볼 수 있게 해주셨으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혁재가 아닌 부모님이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바보같이.
저의 마음을 알고있는듯 조심스레 다가와 머리를 만저주는 손길이 차가워 흠칫 놀라니 미안하다며 손을 감췄다. 잘생겼다. 가까이에서 본 그는 참 잘생겼다. 하얀피부에 긴 속눈썹, 오똑하면서도 뭉툭한 콧등, 피부와 대조되는 붉은 입술의 조화. 부끄러운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데 길고 가는 손가락 마져 그와 잘 어울렸다.
" 코코아.. 마실래? "
" 아니, 난 따뜻하면 사라져. "
거짓말
" 진짠데? 나는 혁재야. 이혁재. 눈의 나라에서 왔어! "
사라진다는 말에 어이없어 웃었다. 거짓말이라 생각하자 마음을 읽은건지 자신은 눈의 나라에서 왔다소개했다. 겨울이되면 그 나라에서 늘 눈을 준비하는데, 올 해는 산타할아버지의 부탁으로 사람의 형태로 내려왔다했다. 참 어이없게도 그 순간 꿈이아니라고 느껴졌다.
" 그럼.. 녹는거야? "
이상한 질문이였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앞으로 내밀더니 눈을 만들어냈다. 분명 눈이였다. 믿을 수 없었지만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저를 눈의 요정이라 소개하는 그 말을 믿기로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발을 딛자 얼음장 같은 바닥에 발이 시려워 금새 다시 이불속에 넣었다. 그 행동에 깜짝놀란 혁재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웃으며 제게 다가왔다. 다가올수록 차가움을 넘어 아플정도가 되었지만 조금만 참아달라는 부탁에 눈을 질끈감고 견뎠다. 그의 입술이 살며시 이마에 내려앉자 점차 따뜻해지면서 추위가 가셨다. 정말 요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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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재덕분에 크리스마스를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게되자 언제 울었냐는듯 밝게 웃으며 방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항상 혼자였던 집에 누군가와 함께있다는게 즐거운지 떠벌떠벌 잘도 떠들며 집 안을 소개시켜줬다. 웃으니까 예쁘네. 사랑스러운 웃음으로 보는이까지 웃게만드는 동해의 매력에 저도 모르게 푹 빠져버렸다. 조금전까지만해도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망울을 하고 있던 그가 이리도 해맑게 웃으니 다행이라 여겼다. 부모가아닌, 저가 왔음을 원망할거라 생각했는데. 다행이도 함께있어줌에 감사하다했다.
" 혁재 넌 나한테만 보여? "
밖으로 나가고싶었지만 혹여 불편할까 괜스레 눈치를 보다 망설임 끝에 넌지시 물어봤다. 사람이라 생각할껄?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내 장난스런 목소리로,
" 근처에오면 그 사람은 얼어버릴지도 몰라! "
" 뭐?! "
그렇게 몇 번 투닥거리니 몇 년 함께 지내 온 친구사이처럼 저와 잘 맞다는걸 알았다.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혁재와의 시간이 즐거워 외로울 것 같았던 겨울이 행복으로 가득찼다. 부모님 생각이 나지않을 정도로. 늘 함께했으면.. 하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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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이 끝나갈 무렵, 혁재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만 있는 저가 가여워 그 앞에선 애써 밝게 웃었다. 앞에선 웃고 뒤에선 숨죽여 우는 날들이 늘어났다. 겨울이 끝나면, 눈이 녹으면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있었기에 또 다시 혼자 남을 그가 신경쓰였다.
동해야, 나는 네가 걱정되.
웃는게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또 다시 그 미소를 잃을까 겁나.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게 너무 속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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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재야 나 물 "
눈을 비비며 비몽사몽 혁재를 찾았지만 아무 대답없었다. 분명 이리 말하면 빈 컵을 쥐어준채 잔뜩 기합을 넣어 물이 생기도록 해주었는데, 그럼 또 그게 신기하다며 박수치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에헴. 하던 그가 어쩐지 오늘은 조용했다. 불길한 마음에 벌떡 일어나 집 안 구석구석. 그동안 돌아다녔던 장소를 모두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 눈.. 눈이 없어.. "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아다니면서 이미 녹아버린 눈을 이리저리 찾아다녔지만 있을리 만무했다눈이 녹았기에 혁재가 사라졌다는 생각이들자 무작정 강원도로 향했다. 눈이 가장 늦게까지 쌓여있는 곳. 그 곳이라면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예상대로 아직까지 소복히 쌓여있는 눈에 코 끝이 찡해졌다. 희망이 있었다. 소중한 그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혁재는 보이지 않았다. 속상함에 주저앉아 펑펑울자 주위사람들이 실연당한게 분명하다며 혀를 찼다.
" 나쁜놈, 이혁재 이 나쁜놈아!!!! "
분명 사라진다는걸 알고있었을텐데, 저에게 한 마디 말도 하지않았다는게 분하고 억울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알 수 있었을텐데 알아주지 못함이 속을 쓰리게했다.
동해야 울지마.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혁재가 환한 미소를 보이며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반가움에 허둥지둥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다. 중간에 삐끗한 저를 나무라며 덜렁댄다는 그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눈이 녹지 않기를 바랄뿐이였다.
" 동해야, 울지마. 내가 닦아줄 수 없잖아... "
등을 토닥이며 울지말라고 애원하는데, 그 말이 너무 속상해 ' 내맘이야 이새끼야! ' 소리내어 펑펑 울었다. 눈물과 콧물이 섞여 혁재의 어깨를 적시자 그의 모습이 점점 사라졌다. 울지말라는 의미가 이것 때문이였을까. 늘상 차가움을 유지해야했지만 울고있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마음이 짖이겨지는 것 같아 냉기를 버리고 그의 온기로 자신을 덮었다. 사라지고있음을 알아챘지만 저를 붙잡고 우는아이에게 차마 놓으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상태로,
" 동해야, 네가 원하면 난 언제든지 올 수 있어 "
" 그럼 사라지지마. 응? "
" ....언제나 마음속에 있을거야.. "
" 뭐야아.. 언제든지 온다며.. 가지말고 그냥 옆에 있어주라...... "
ㅎ흐릿해져가는 손을 바라보며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게 속상하여 눈물이 났다. 그의 눈물이 얼음이되어 동해의 뺨에 닿았고,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흐릿한 모습에서 씁쓸한 미소가 보였다.
겨울이오면 다시올게..
혁재가 서 있던 곳에 소복히 쌓여있는 눈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목놓아 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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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 겨울이 찾아왔다.
비는 눈이 내리다가 녹아 만들어진다는 얘기들 들은 후, 동해는 비가오는 날이면 항상 밖을 바라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를 기다리다보니 특유의 비 내음이, 눅눅한 그 공기가 왠지 저와 닮아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분위기를 전환시킬겸 라디오를 틀자, 이상기후때문에 올해는 따뜻한 겨울이 될 것 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설마하는 마음에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자 전국 어디에서도 눈을 볼 수 없을거라는 기사가 줄줄이 있었다. 울고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울지말라는 그 말이 생각났기도 했고, 울면 크리스마스 소원을 빌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꾹 참았다.
12월, 정말 단 하루도 날이 춥지 않았다. 비는 내렸지만 정작 기다리던 눈은 오지않았다. 화이트크리스마스를 노래하던 이들이 그저그런 날씨에도 행복한듯 웃고있는게 탐탁지 않았다.
" 씨발 "
집으로 들어와 거칠게 목도리를 풀어헤치고 바닥에 던졌다. 크리스마스는 그와 함께 보내리라 생각했는데, 겨울이면 오겠다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눈이내리면 올 것 같았는데 이상기후라니. 속상함에 찬장에 놓여있던 와인을 꺼냈다. 술을 좋아하지도, 마실줄도 몰랐지만 와인을 좋아하던 그가 생각나 미리 사 둔 것이였다. 제일 맛있는걸로 부탁했는데, 달달하리라 생각했던것과는 달리 쓴 맛에 절로 얼굴이 찡그러졌다. 가만히 와인잔을 보고있자니 퍽 눈물이 났다. 속이쓰려 다시 한 번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눈물을 참기위해, 쓰디 쓴 아픔을 다른곳으로 돌리기위해. 다들 이래서 술을 마시는게 아닐까 싶었다.
산타할아버지, 혁재가 언제나 제 곁에 있을 수 있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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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해... 취했어?
" 으,음.. 안취해써.. "
술에취해 풀린 눈으로 슬쩍 바라보자 흐릿하게 혁재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움에 헤헤, 웃자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좋아 가만히 그를 느꼈다. 작년에도 이렇게 곁을 내어준게 너라는걸 알았다.
" 혁재야... 그냥 내 옆에 이써주면.. 그러면 안대까.... "
울지말자 다짐했는데, 말을하면 할 수록 울컥해져 목이 메였다. 제 손을 따스히 잡아주는 행동이 다정해 자꾸만 눈물이 나 눈을 꼭 감으며 흘리지않으려 애썼다. 꿈이라면 깨지않기를 바랐다. 추웠던 첫 만남과 달리 따뜻함만 멤돌았지만, 그것까지 신경쓰기에는 많이 취해있었고 그저 이대로 영원하기만을 기도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 보니 커튼 사이로 까만 밤하늘이 보였다. 여전히 내리지 않는 눈을 원망하며 역시 꿈이였구나 싶어 씁쓸한 마음에 헛움을을 지었다. 울렁거림과 답답함에 가슴을 퍽퍽 치며 다른 한 손으로는 물을 찾았다.
" 목마르지? "
제 손에 물 컵을 쥐어주는 혁재의 모습에 깜짝놀라 다시 밖을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눈은 내리지 않았다.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뺨을 타고흐르는 눈물에 고개를 돌려 훔쳐내기 바빴다. 울면안되, 울면 혁재가 사라질거야.
" 동해야.. 이동해.. "
혁재의 부름에도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닦기 바빠 대꾸하지 않았더니 제 손을 잡고는, 앞으로 다가와 얼굴을 맞대어 웃어보였다.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 눈이 너무 예뻐 굳어버린 입고리를 올려 웃어보이자 더욱 가까이 다가와 눈가에 가볍게 입을맞췄다.
" 괜찮아, 울어도 되 "
이제는 곁을 떠나지 않겠다 약속했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저 눈 앞에있는 모습이 꿈일까싶어 만지고 또 만졌다. 서늘하던 그의 몸이 따뜻하다는 것 외에는 알고있던 혁재가 맞았다. 그의 손길, 눈빛, 다정한 목소리, 그리웠던 혁재가 앞에 있었다. 기쁨에 그를 껴안자, 언제나 그렇듯 다정하게 쓰다듬어 준다.
" 네 소원을 이뤄주기위해 내가 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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